어제(6월 11일) 롯데가 마산에 와서 2년 1개월만에 드디어 승리를 챙기고 갔습니다. 2008년 5월 13일 삼성 경기 이후 단 한번도 마산에서 이겨보지 못한 롯데를 그래도 마산 팬들은 지극한 애정으로, 1만 9000여 명이라는 거의 만원에 육박하는 이들이 경기장에 와서 응원을 하더군요.

저도 직접 야구장 가서 봤는데, 솔직히 박진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경기였죠. 한화가 조금만 따라오려고 하면 홈런포 펑펑 때리고, 아기자기한 안타로 긴장감이 넘치거나 하는 장면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도 롯데 팬이라 승리가 싫지는 않았지만 박진감이 너무 없으니 야구관람하는 맛은 나지 않더군요.  3루석에 앉아 치어리더들의 화려한 응원 리드도 느낄 수 없어서 정말 아쉽더군요. ^..^
 
물론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만약 1루석 치어리더 석 앞에 앉았다면 아마 3회까지는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의 저질 체력으로 그 이상 열정적인 응원을 할 수 있었을지...체력이 달려 응원을 안하고 있다가, 옆사람들 눈치 보여 4회부터는 다른 곳에 가려하지 않았을지...^^

거기에다 1회초부터 치킨, 김밥, 라면, 만두 등을 입에 마구 쑤셔넣었더니 경기장을 빠져나올 때는 그렇잖아도 튀어나온 배가 더 도드라져보이고, 숨쉬기도 힘들더군요. 역시 과식은 금물이라는. ^^ 


근데, 롯데가 이날 경기를 마치고 오늘.내일은 부산 사직구장에서 경기를 한다네요. 이유를 알아보니 어제는 사직구장에서 전국생활체육대축전이 잡혀 있어 고육지책으로 갑작스레 마산구장으로 장소를 바꿔 경기를 했다네요. 예정에 없던 경기랍니다. 경남 팬들은 씁쓸하게 야구를 즐길 수밖에 없는가라는 아쉬움을 또한번 느끼게 되겠군요.

이래서 적잖은 경남 야구팬들이 통합 창원시(마산)를 연고지로 한 새 구단 창단을 바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김두관 도지사 당선자가 민간에서 프로야구단을 창단하면 최대한 지원을 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으니 조만간 롯데에 무시 당하며 보는 이른바 '동냥 응원'(?)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날이 올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롯데는 이날 승리로 마산 혹은 경남 팬들로부터 "마산하고 무슨 원수졌느냐", "마산에서 야구 하기 싫어 일부러 지는 거 아닌가"라는 원성과 음모론으로부터 탈출하게 된 것 같습니다. 아래는 경남도민일보 스포츠 담당 남석형 기자가 현장에서 바로 작성한 따끈따끈한 경기 기사입니다.

 

롯데, 마산구장 10연패 탈출
홈런 3개 앞세워 7-2로 눌러...공동 3위와 0.5게임차 5위


롯데가 지긋지긋한 마산전 10연패 사슬을 끊었다.

11일 마산구장에서 열린 '2010 프로야구' 한화와의 경기에서 롯데는 3개의 홈런포를 앞세워 7-2로 승리했다. 이로써 롯데는 지난 2008년 5월 13일 삼성전 승리 이후 11경기 만에 마산 팬들에게 승리 기쁨을 맛보게 했다. 
전날 넥센전에서 5개의 홈런을 터트린 롯데는 이날 경기에서도 초반부터 홈런포를 가동했다.
1회초 한화 선두 타자 정원석에 솔로홈런을 허용한 롯데는 1회말 1사 1·2루에서 이대호가 대형 3점 홈런을 작렬했다. 비거리 130m의 장외 홈런이었다.
2회말에는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전준우가 좌월 솔로 홈런을 날렸다. 지난해 7월 8일 마산에서 열린 삼성전에서 프로 데뷔 첫 홈런 기쁨을 맛본 전준우는 또다시 홈런을 기록, 마산구장만 찾으면 펄펄 날았다.


6회말에는 4-2로 앞선 상황에서 가르시아가 우중간 담장을 넘기는 솔로포를 터트렸다. 홈런을 치고 더그아웃으로 향하던 가르시아는 이날 경기장을 찾은 가족을 향해 사랑의 손짓을 했다. 16호 포를 기록한 가르시아는 이날 역시 홈런을 터트린 한화 최진행(17개)에 이어 홈런 부문 단독 2위를 기록했다. 이대호는 15개로 홍성흔과 함께 공동 3위를 기록했다.
이날 선발로 나선 장원준은 7이닝 동안 7피안타·2실점으로 7승(4패) 째를 챙겼다.
이날 승리한 롯데는 30승(1무 30패) 고지를 밟으며 이날 나란히 패한 공동 3위 KIA·삼성에 0.5경기 차까지 추격했다.
한편 이날 마산구장은 1만 9184명의 팬으로 가득 찼다. 롯데는 오는 22~24일 마산에서 한화 3연전을 치른다. /경남도민일보 남석형 기자 nam@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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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진화한 김두관 도지사를 기대하며 3]

(narration insert)
2번의 도지사 낙선, 한 번의 국회의원 낙선, 그리고 세 번째 도전만에 도지사 당선. 2002년 이후 그의 이력은 민주당, 열린우리당, 혹은 친노계열 무소속으로 기록된다. 대중에게 알려진 정치인으로서 그의 모습도 이 이력과 궤를 같이 한다. 국외자는 좀더 시간을 거슬러올라가고 싶어한다. 대중에게 잊히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또다른 그의 모습을 더듬어보고자.

무소속 김두관 경남도지사 당선자가 지난 3일 오전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박석묘를 찾았다. 이날 김 당선자가 노 전 대통령의 작은비석을 어루만지며 당선 소식을 전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S#2-2)

이쯤해서 제가 밥벌이를 하는 신문사(경남도민일보 6월 3일자 2면)에 실린 기사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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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김 당선자의 인생역정에서도 나타난다. 1954년 4월 10일 남해군에서 가난한 농어민의 아이로 태어나 그곳에서 청년까지 자랐다. 남해종합고등학교를 거쳐 1987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그러나 대통령 직선제 개헌쟁취로 이어지는 1986년 청주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된다.
김 당선자는 교도소에서 '진정 이 사회를 사람다운 사회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라는 고민 끝에 '지역의 뿌리가 튼튼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어 출옥 후 귀향한다. 고향에서 남해농민회를 조직하고, 1988년 '민중의 당' 후보로 13대 총선에 출마했지만 4명 중 3위로 낙선한다.
그러나 그는 1988년 남해 고현면 이어리 이장을 시작으로 꿈을 키운다. '군민주'로 <남해신문>을 창간했고, 사장인 자신이 직접 배달을 하면서 주민들을 살핀 끝에 군민 절반 이상이 구독하는 성공을 거둔다.
그 후 김 당선자는 1995년 당시 37세의 나이로 남해군수에 당선된다. 지방자치의 모범으로 남해 혁명이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군수관사를 헐어 민원인 주차장과 느티나무쉼터를 만들고 군수실 한쪽 벽면을 투명유리로 바꾸는 열린 군정을 펼친다.
또 민원인 공개 법정 제도, 주민공사 감독관제, 주민 220명 이상 요구 시 감사 청원제도 등을 도입한다. 독일 파견 광부와 간호사들이 조국에서 살 수 있도록 독일인 마을과 남해 스포츠 파크 등 남해군 관광도시 발판을 마련한다.
김 당선자는 2002년 4월 남해군수 7년의 생활을 접고 경남도지사 선거에 처음 출마하지만 낙선한다.
....................................................................................../김정훈 기자

이 기사에서 관심을 끄는 부분은 동아대학생 시절 대통령 직선제 쟁취 투쟁을 하면서 교도소에 수감된 점, 지금은 민주노총과 함께 민주노동당의 양대 정치적 기반이 된 전국농민회, 그중 남해군지부를 조직했다는 점입니다. 1988년 '민중의 당'후보로 이미 총선에 나선 점도 눈에 띕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로 노동현장을 많이 누볐다곤 하나 김두관 경남도지사 당선자가 농민회에 몸 담으며 직접 근로현장을 경험하고, 그 토대로 진보적 성향의 농민단체 조직을 일군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민중의 당 후보로 총선에 나선 점은 (진보정당 자체가 없는)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선택이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보수정당 간판을 달고 국회에 입성한 점에서 정치인으로서의 시작이 다르죠.

더욱이 노무현 대통령이 수도권/비수도권의 권력 분점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는 지역분권과 국토의 균형발전에 무게를 뒀다면 김두관 당선자는 이장, 군수를 경험하면서 지역분권보다 더 근본적인 풀뿌리 지역자치에 방점을 두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물론 행자부 장관 시절 프랑스 데파르트망(department)과 레지옹(Region)의 중간 규모로 상정한 50여 개의 중광역시로 기존 광역 시.도를 재편하는 행정구역 개편 논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참여정부의 행정총책임자로서 새로운 형태의 지역분권체계를 따르는 데 무게를 뒀다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참고로 프랑스의 행정단위는 우리나라의 광역시.도와 유사하지만 지역의 역사성을 어느 정도 결합한 레지옹(region)과 코뮨(commune)을 기본으로 하고, 레지옹과 코뮨의 중간인 데파르트망을 두고 있습니다.

프랑스 행정조직 및 자치제도 관련 글을 보려면 아래를 클릭.
(영국.프랑스 자치제도가 제주행정계층구조 개편에 주는 시사점)

어떻든 김두관 당선자는 지방분권보다 풀뿌리 지역자치에 보다 근본적인 이해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 김두관 당선자는 선거를 일주일여 앞둔 마산MBC 초청 도지사 후보 토론회에서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을 닮고 싶다고 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브라질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노동당 출신으로, 브라질 최대 노조인 철강노조 위원장(우리나라로 치면 금속노조 위원장)을 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1986년 드디어 하원의원이 됩니다. 하지만 그 뒤 대선에서 세 번이나 고배를 맛보고, 2002년 드디어 브라질 대통령이 됩니다. 2006년에는 재선에 성공하죠.

김두관 당선자는 그를 닮고 싶은 모델로 꼽은 이유 중 하나로 각종 빈민 정책을 시행하는 진보적 사고를 함과 동시에 경제 분야에서 유연성을 가지면서 복지와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아 브라질 국민들은 역대 최고의 대통령으로 뽑힌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최근 국정수행 지지율이 75-81%에 이릅니다.


김두관 경남도지사 당선자가 본받고 싶은 인물로 거론한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오른쪽). 왼쪽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오마이뉴스


1980년 창당한 사회주의 정당인 브라질노동당은 한국의 진보정당들처럼 전국정당화를 우선 시도하기보다는 각 지역에서부터 꾸준하게 정치적 힘을 길러 집권에 이른 정당입니다. 참여자치예산제 도입으로 유명한 포르투알레그레, 전세계 환경수도라고 일컬어지는 쿠리치바 등 브라질의 유명 도시 상당수는 브라질노동당이 장기 집권한 곳들입니다.

덧붙이자면 포르투알레그레시는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선진국+자본) 중심의 세계경제포럼에 대항해 '또다른 세계'를 지향하는 세계사회포럼이 2001년부터 해마다 열리는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아무튼 진보정당 초기 한국에서도 섣부른 전국정당을 1차 목표로 하기보다는 지방자치에서 운영의 힘을 길러 전국화로 가야한다고 적잖은 이들이 전략을 제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친노 간판으로 나온 민주당의 이광재, 안희정, 한명숙,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등 광역자치단체장 후보 4명과 비교하더라도 김두관 당선자는 가장 진보적 성향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보가 절대선이냐? 그건, 관점에 따라 저마다 다르겠죠. 아니 그것이 도정 수행에서 약점으로 작용할 여지도 없지 않습니다. 한국, 아니 경남만 하더라도 도의원 대다수가 한나라당 소속입니다. 여야간 43(한나라 38, 한나라 성향 무소속 5):11 정도 되니까요. 그가 얼마나 이견에 대한 소통을 잘 해낼지는 과제겠지요.

하지만 한나라당 일색이던 남해군수 시절 무난한 군정 운영을 한 점은 차치하고, 2004년 밥벌이하는 신문사 기자회 사무국장으로 있으면서 각 당 도지부장 초청으로 선거전략 공청회를 했을 때 만난 그에 대한 제 기억으로는 여러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보다는 잘 해낼 것으로 믿습니다.  2004년 만난 그는 여러 의제에 대해 정말 차분하면서도 진지하게 상대방을 설득하려 했습니다. 우직.진지 모드, 그러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고, 또 한편으로는 단호함을 갖췄다고 느꼈거든요. 노 전 대통령이 정면승부를 즐기는 승부사 기질이 있었다면 김두관 도지사는 또다른 소통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이후 출간된 두 번째 유고집 <진보의 미래>를 저는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여러 매체의 소개글 정도를 읽은 수준이죠.

친노라고 일컬어지는 이들 중 제 생각으로는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시 실천하지 못하고 미완으로 남겨둔 '한국적 진보가치의 미래'에 대해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행할 수 있는 이가 김두관 당선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더라도 그에게 녹록치 않은 과제들이 그의 도정 운영 과정에서 던져질 것입니다. 그 과제와 실험은 기대감과 걱정도 함께 던져줍니다.

(narration insert)
창원 경남도청 앞에 선 국외자는 생각에 잠긴다. 곧 비행기를 타러 김해공항으로 가야할 시간인데... 아직 정리하지 못한 생각의 줄기가 그를 짓누른다. 김두관, 그에게 어떤 과제가 던져질까?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민했던 '진보의 미래'가 노회찬에 대한 삿대질로 귀결하는 것일까? 한국을 배회하는 것이 일상이던 그는 짐짓, 아직 그의 가슴에 반도 남녁에 대한 애정이 완전히 식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그 직감이 출국을 머뭇거리게 한다.

(내일 4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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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진화한 김두관 도지사를 기대하며 2]

(narration insert)

그가 김해공항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창원과 마산에 다다르자 거의 모든 신문이 김두관이라는 도지사 당선자를 '리틀 노무현'이라고 칭하는 것을 보게 된다. 김두관의 이력을 생각해본 국외자는 조금 의아스럽다.

(S#2-1)
2002년 4월 남해군수를 그만두고 6.13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한 김두관 후보는 김혁규 당시 한나라당 후보에 7:1이라는 스코어(10.8% 득표)로 집니다. 그리고 그해 12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밤 기적같은 역전승으로 대통령으로 당선됩니다.
2003년 참여정부 초대 행정자치부(현재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이장 출신 남해군수를 지낸 김두관 당선자가 발탁됩니다. 이장 출신이 행정부 수장으로 발탁된 것도 눈엣가시인데 거기에 김 당선자는 초대 장관 업무수행평가에서 당당히 1위를 합니다. 이장 출신이 장관을 하는데, 거기에다가 일도 잘한다? 국민 사이에서 기존 사회 엘리트를 보는 시각이 조금씩 달라지려는 조짐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2002년 5월 13일 김두관 후보가 도지사 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위). 아래는 4월말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돼 5월 16일 경남을 찾아 김두관 지원을 당부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경남도민일보 자료사진



 그런 그 파장에 한나라당, 그리고 우리 사회를 이끌고 간다고 생각한 기득권 세력의 심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나봅니다. 남해 지역구의 박희태 의원은 당시 공공연하게 "이장 출신 주제에..."라는 말을 종종 했죠.  존재 자체가 기득권 세력의 심기를 극도로 불편하게 만든 그는 그해(2003년) 9월 3일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장관 해임안을 단독으로 처리하면서 장관직을 그만두게 됩니다.                                                       

한나라당은 당시 해임안 통과의 표면적인 이유로 화물연대 파업 등 진보와 보수간 극한의 갈등을 조정하는데 실패, 한총련의 미군 부대 난입.탱크 점거 사건 대처 미흡, 야당 당사 점거 방치 등 치안 처리 미흡 등을 내세웠지만 이장 출신 주제에 라는 기득권의 참기 어려움 심기표출과 노무현 정권에 대한 정치적 타격을 주려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이 그가 서민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심는 계기가 되죠.                                                   
 

지난 2003년 1월 3일 당원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남운수연수원 대강당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도지부 결성대회에서 김두관 도지부장과 이태일 공동의장, 정동영·이미경·신기남 의원 등이 손을 맞잡고 총선 필승을 다짐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유은상 기자 yes@dominilbo.com


이 시기에 '김두관 = 리틀 노무현'이 확고해집니다. 그런 덕분인지 그의 팬클럽인 두드림뿐만 아니라 노사모의 지지도 끌어냅니다. 그 결과가 2006년 2월 18일 있었던 열린우리당 당의장 및 최고위원 선거에서 3위를 하는 기염을 토하며, 열린우리당 최고위원으로 지도부에 입성합니다. 하지만 그해 5.31지방선거에서 경남도지사로 출마해 다시 낙마합니다. 그리고 4년 뒤인 2010년 이번 지방선거에서 도지사로 당선됩니다.

2006년 5월 10일 오전 창원컨벤션센터 대회의실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경남도지사후보 출정식에서 김두관 후보, 정동영 의장, 김근태 최고위원, 오거돈 부산시장 후보 등이 함께 손을 맞잡고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경남도민일보 유은상 기자


알만한 이는 다 아는 이 이력을 왜 정리해봤을까요? 김두관 도지사 당선자의 팬은 아니지만 이 이력은 오히려 김두관 도지사 당선자는 리틀 노무현이다라는 등식을 더욱 확고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저는 왜 아니라고 생각할까요. 그건 남해군수 시절과 그 이전으로 거슬러올라가면 알게 될 것 같네요.

(narration insert)
2번의 도지사 낙선, 한 번의 국회의원 낙선, 그리고 세 번째 도전만에 도지사 당선. 2002년 4월 남해군수 퇴임 이후 그의 이력은 민주당, 열린우리당, 혹은 친노계열 무소속으로 기록된다. 대중에게 알려진 정치인으로서 그의 모습도 이 이력과 궤를 같이 한다. 국외자는 좀더 시간을 거슬러올라가고 싶어한다. 대중에게 잊히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또다른 그의 모습을 더듬어보고자.

(3.4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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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진화한 김두관 도지사를 기대하며1]

(openning)- narration insert
국외자는 어느 한 나라에서 한반도, 한반도 중 남녁인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비행기를 타고 온다. 인천 영종도 신공항이다. 영종도에서 버스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향한다. 김포공항 TV에서 나오는 뉴스는 온통 대한민국의 지방선거에 관한 얘기다.
다시 김해공항행 비행기를 타고 경남으로 온다. 공항버스를 갈아타고 창원으로 온 한 국외자는 잠시 머뭇거린다. 지인으로부터 절망적 축제가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들었던 터라 선거가 적잖은 희망의 메시지로 변해 대한민국, 그 속의 경남도민들은 한눈에 봐도 들떠있다. 그 들뜸이 기쁘면서도 웬지 불안하다.
국외자는 그 불안의 이유를 몰라 다시 김포공항을 향해 이륙한다. 이 글은 한 국외자가 경남 착륙과 이륙 동안 느낀 복잡한 심경을 네 차례로 나눠 정리한 것이다. 시기는 6.2지방선거 직후. 

김해공항./경남도민일보 자료사진


(S#1)
최근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의 낙마 소식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에게 '노회찬.진보신당'은 거의 희생양 의식을 치러야했습니다.

저조차 한명숙 시장 후보의 낙마에 참 속이 쓰립니다. 신문 제작을 마치고 씻고 잠들기 직전이던 3일 오전 5시까지 TV를 보다가 몇 시간 눈 부치고 일어나니 결국 강남3구(부르주아)의 철저한 계급투표가 사단을 냈더군요.
하지만 한 후보의 낙마 탓에 자신의 이념적 지평과 계급.계층적 지지를 기반해 정당정치를 하려는 이들에게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강제된 선거연합 혹은 선거연대만이 민주의의를 회복하고 확장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하지 않은 이들에게 전적인 선거 책임을 묻는다면... 저는 여기서 잠시 다수 '시민'은 어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지 그 내용을 곱씹어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촛불이 남긴, 이제는 거의 보편화한 '시민'(이 개념에는 아마도 '대한민국 = 민주공화국', '주권은 국민. 혹은 시민에게 있다'를 깨달은 시민이라는 뜻이 속살에 있는 듯 합니다) 속에는 새로운 헤게모니 탄생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젠 체하는 말로 또다른 미시권력의 출현 가능성이 엿보였다고 할까요? 그래서 촛불시민이라는 이름 속에 희미하나마 자기 배타성이 문득 문득 드러나기도 했죠. 그 배타성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느냐도 눈여겨볼 대목이었습니다. 진보신당을 제외한 야4당의 지방선거 야권연대 성사는 이명박 정권의 일방주의, 형식적.내용적 민주주의의 커다란 후퇴 등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촛불시민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야권연대는 또다른 의미의 독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사회에 이른바 좌파정치를 하고자 하는 이들은 아직도 정치적 소수자입니다. 전국단위 선거에서 야권연대를 한다면 아무래도 덩치가 큰 정당인 민주당에게 일방적 수혜가 갈 가능성이 높고, 덩치 큰 정당이 헤게모니를 얻은 채 연대가 이뤄지기 쉽죠. 이번 야권연대 과정에서 광주시의회의 선거구 조정 파동으로 연대 자체가 깨질 뻔하지도 않았습니까? 이번 선거는 그나마 시민들의 야권연대 요구가 워낙 거세 민주당이 겨우 좀더 양보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매번 그렇지 않겠지요. 민주당은 조금만 판이 유리할 것 같으면 야3당의 손을 쉽게 버릴테지요. 태생과 정치기반의 차이가 확연하니까...

체질 개선을 하고 있다지만 민주당은 중도 우파정치연합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결국 중도 우파 연합이 극우 혹은 우파 연합인 한나라당을 이기기 위해 중도 연합(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과 넓은 의미의 좌파 연합(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아직 의회정치에 기반하는 정당으로 성장하지 않은 사회당은 논의에서 제외한다)에게 보다 많은 양보를 요구한 것이지요.

이번 지방선거 야권연대의 정치공학적 핵심은 이것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야권연대를 통해 이룬 성과를 무시하거나 간과해서 이런 지적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내용은 이미 여러 보도매체, 블로그들께서 분석을 쏟아내셔서 굳이 제가 여기에 다룰 필요가 없겠다 싶더군요.

6·2 동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마지막 휴일을 맞은 후보들은 유세 총력전을 펼치며 표심잡기에 온힘을 기울였다. 야권단일화 무소속 김두관 경남도지사 후보가 지난달 29일 오전 진해 중앙시장앞에서 거리 연설을 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 이후 선거권을 가진 뒤 처음으로 한국사회에서 야권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논의를 좀 더 일찍 시작해 정책적 연대 수준으로 갔으면 했습니다. 물론 인천, 강원, 경남은 사실상 지방공동정부가 들어설 예정이어서 그 운영 방향에 기대합니다만, 전체 선거판에서 야권연대의 정치적 모양새가 변한 것은 아니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김두관 당선자에 대한 얘기가 중심이지만, 한편으로는 의도하지 않게 노회찬에 대한 변명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narration insert)
그가 김해공항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창원과 마산에 다다르자 거의 모든 신문이 김두관이라는 도지사 당선자를 '리틀 노무현'이라고 칭하는 것을 보게 된다. 김두관의 이력을 생각해본 국외자는 조금 의아스럽다.

(내일.모레 2.3.4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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