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간만에 '깜빡 잊은 그 이름' 블로그에 포스팅해봅니다. 거의 2년 만이네요. ^^

민권 변호사 이광철이 논하는 '이석기 사태' 

이 글 맨 아래에 있는 <오마이뉴스> 기사는 이른바 '이석기 광풍'에 대한 또 다른 시선입니다.
민변 소속 이광철 변호사는 이전 다양한 시국사건을 담당한 변호사로, 특히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을 많이 맡아 변론했습니다. 아마도 이번 사건 변론도 맡은 것 같습니다. 이광철 변호사는 늘 '입에 거품을 물고'(표현이 좀 ^^) '국가보안법 철폐'를 입에 달고 사는 이라고도 들었습니다.

 

'사상의 시장 형성'이 자꾸 지연되는 대한민국
저는 이번 사건이 이른바 '대한민국 사상의 시장' 형성이 제대로 되지 않은 탓에 북한 문제에 대해 진보진영이 담론조차 거의 형성해오지 못한 30년 넘는 불행한 역사에서 비롯된 점도 있다고 봅니다. 분단과 한국전쟁 이후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새로운 진보진영(조지 카치아피카스는 <신좌파의 상상력>에서 이들을 통칭해 한국의 신좌파-New left-라고 하더군요)이 형성된 시점부터 지금까지도 말이죠.
<한겨레> 등에서는 이른바 (공안당국과 한국의 북한 지향의 정치(운동) 세력)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 적대적 공생관계가 끊어지지 않으면 사회복지 확장이나 한국사회의 미래를 향한 담론은 계속 '레드 콤플렉스' 안에서 허우적거리고 말 것입니다. '사상의 시장'이 형성되지 않고, 이 '적대적 공생관계'가 지속된 이유 중 하나가 실정법인 국가보안법인 것만은 분명해보입니다. 지난해 통합진보당 사태에서 보듯 세계 어느 진보정당이 자기 가치 중 일부를 판단 유보합니까? 공당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와 그 가치를 정책으로 정리해 국민에게 공표하고, 선택을 받습니다. 일반적인 정당의 기본이 그러한데, 자신의 전체를 내비쳐 더 신뢰를 쌓아야하는 역사가 짧은 진보정당은 더 그러해야 하겠죠...그런 면에서 판단 유보는 국민이 보기에 답답했을 겁니다....

그러나 엄연히 살아있는 실정법이다. 국가보안법은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엄연히 살아있는 실정법인 국가보안법이 '사상의 시장 형성'을 가로막고 있고, 실제 형사처벌까지 하는 현실에서 '내 생각은 이래요'라고 말하는 자체가 일부에게는 어려운 것 또한 분명한 사실입니다. 개인의 사상을 국가와 공안당국이 검증하겠다는 법률이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한국에 계속 있어야하는지, 헌법에서 보장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법률이 규제하는 상위법 우선 원칙이 철저히 무시된 이 법이 누구를 위해 있는지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공론의 장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국정원은 어쩌면 그런 좋은 기회를 준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상 검증이 개인에게 강요될 수는 없지만 국민적 검증과 선택을 받는 공당이라면 말이 다릅니다. 이번 사태와 사태 이후 통합진보당 대응 양식을 두고 누군가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언제까지 할 것이냐고 격분하기도 하던데요,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그렇게 거칠게까지 말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물론 공당이 자기 가치 일부를 판단 유보하겠다는 표현도 일반 국민 입장에서 보면 '뭥미'라고 할 수밖에 없겠지만요.
암튼 이번 사태에 적용된 혐의는 형법상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상 찬양 고무죄이며, 최근에는 여적죄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국정원이 반국가행위의 최고 수준인 형법상 내란 (음모) 혐의를 적용하고, 최근에는 여적(예비.음모)죄까지 만지작거리는 이유는 수사 주도권을 검찰이 아닌 국정원이 쥐겠다는 의도로 읽힙니다. 검찰이 해도 될 수사를 국정원까지 나서서하느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고, 조직 명운을 걸기는 상대적으로 국가보안법이 좀 약해 상당히 충격적인 형법상 내란음모 혐의가 나왔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 국가보안법은 형법상 내란음모를 적용하지 못하더라도 퇴로로 활용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석기 의원 옹호하냐? 천만의 말씀.

이 글은 이석기 의원 옹호 글이 결코 아닙니다. 이광철 변호사 말처럼 북한의 '3대 세습', '핵무장' 등을 두고 '한국 민주주의가 그렇게 가야한다'고 할 시민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아니 '3대 세습', '북한 핵무장'을 옹호하는 이들이 '사상의 시장'에 나오면 누가 얼마나 그것을 고르겠습니까? 그래서 국가보안법 문제는 한편으로는 한국민이 그간 싸워서 이룬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감의 표출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사태에서 한 번은 짚어야할 문제라고 판단하기에 아래 글을 소개합니다.

참여정부 시절 대폭 수정이나 철폐를 좀 했더라면

노무현 정권 시절 이 법률이라도 좀 손을 보거나 아예 없앴다면 이런 지리멸렬한 상황은 없었을텐데요. 노 전 대통령을 아끼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저는 당시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이 형식 논리에 갇혀 시대적 책무를 이 부분만큼은 제대로 못했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친북.종북 성향인 이도 사상의 시장서 선택의 자유를 얻었다면...

제대로 했다면 '친북성향의 이들'도 '사상의 시장'에서 시민에게 민낯으로 제대로 검증을 받았을 겁니다. 그랬다면 오히려 논란이 된 모임에서 오간 '전쟁놀이' 같은 얘기들을 국민이 '레드 콤플렉스'를 벗은 상태에서 더 정확하고, 엄중하게 보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이 듭니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큰 국민적 비판 아래 놓일지도 모를 일이죠.

또한, 국가보안법이 없더라도 형법상 간첩죄나 지금 혐의를 받는 내란죄.내란음모 등이 있어 실제 이 법률을 위반한 이는 당연히 처벌 받겠죠. 대신 반복되는 이른바 '적대적 공생관계'도 사라졌을텐데...참, 답답하죠...대한민국...복지국가 등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진전은 없고, 이렇듯 다람쥐 쳇바퀴 돌듯 다시 제자리 수준이니...

더 많은 철학과 담론이 한국 정치권으로 흡수됐으면...
한국 진보진영을 포함한 한국의 광범위한 정치세력은 그 철학과 담론 수준이 지금보다 더 풍부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사상의 시장'에서 시민에게 검증 받은 철학과 이념이 정치 영역으로 수렴돼 더 풍성한 정치적 수확을 거두고, 그게 국민들에게 골고루 나눠지면 지금보다 행복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사상의 자유시장에 이석기를 내놓기 위하여

[주장] 이른바 'RO 내란음모 사건'을 바라보는 한 변호사의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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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와 만나 그 친구와 사진, 영화 등을 갖고 이런저런 얘기를 했습니다. 회한 같은 단어가 떠오르더군요.
제가 집에서는(물론 혼자 살지만) 거의 술을 마시지 않지만(물론 아주 가끔 맥주 한 캔 정도는 하지만 그 정도는 술이 아니잖아요 ^^) 혼자 좋은데이(저도주의 대명사죠)를 반 병 정도 들이켰습니다.
크게 후회는 하지 않지만 저도 한 때 창작을 하고 싶었고, 참 노력하고 살았는데, 그냥 막연한 서러움이 느껴지더군요. 이젠...이젠... 이젠...
제가 있는 공간이 아프지 않으면 모르겠지만 참 일상이 아프네요. 좀 더 좀 더에서 이제는 과연 한 치 앞이나 갈 수 있을지라는 공포부터 느껴지니....
과거에 얽매인 삶처럼 바보같은 삶은 없다지만 참, 가끔은 진짜 떠나고 싶네요.
근데, 그런 용기가 제게 있을까요. 그게 참, 서럽습니다.
이제 그런 용기도 이래저래 생각하며 사는 제 자신이...
예전에는 최소한 그런 이유에서는 깔끔했는데... 샐러리맨이 된 기자가 기자일까요.
아님 샐러리맨의 기본도 되지 않는 페이를 주는 이 공간이 저를 착취하는 것일까요.
요즘은 다시 꿈을 꿔보고 싶은데...제 나이가 그 꿈을 종종 패스 합니다. ㅋㅋ
저란 놈은....
술 주정입니다. 진짜...
Posted by 늘 축제였음..

중1 때 혹은 중2 때 지금은 사라진 마산지역의 민간도서관 '책사랑'에서 한 권의 책을 빌려 봤었죠. 누가 소개한 것도 아니었는데, 우연히 알게 된 이 '책사랑' 회원을 중1부터 고3까지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학을 마산이 아닌 창원에서 다니게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곳을 잊었죠.

생택쥐페리의 '어린 왕자'-문예출판사. 전성자 옮김. 제4판 5쇄 2010년 2월10일-


그때 읽은 책이 바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Le Petit Prince>였습니다. 너무 감동적으로 읽어 혼자서 눈물 찍 흘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와 함께 제 중학 시절을 감동으로 몰아갔던 그 책. 그래서 이 책을 '책사랑'에서 구매해 간직했었습니다.

물론 고등학교 때도 이 책을 종종 읽기도 했었죠. 감성이 메말라질 때면요.

대학교 3학년 때 제가 있었던(사실은 제가 후배들 모아 만들었음다) 인문대 문화비평 소모임 교재로도 활용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어떤 이들이 판단하기에는 피식 웃을지도 모르겠지만 ) 자본주의 사회인 당시 대한민국을 비판하는 텍스트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입대. 대학 시절 썼던 학과 캐비닛에 책을 고스란히 놓아둔 채 군대에 갔는데, 그 사이 학과에서 학기 초 캐비닛 정리를 하면서 대학 시절 읽었던 책 대부분을 잃어버리게 됐습니다. 그 중 한 권의 책이 제 손때 묻은 <어린 왕자>였습니다.

근 14년 만에 마산 영풍문고에서 이 책을 다시 샀습니다. 책을 구매했다는 표현보다는 14년 만에 잃어버린 책을 되찾았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의 기분이었습니다. 21장에 나오는 여우와 어린 왕자의 일화를 다시 읽고 싶었기 때문이죠.
이 책 가운데 그 둘의 일화에 가장 감동했었습니다. 특히 '길들여진다는 것.'에 대해.
(사실 이 표현도 이중피동으로 비문에 가깝다는. 길들여진다는 것 -> 길든다는 것)

어떤 감동이냐고요? 어릴 적 이 책을 읽지 않은 분들이 드물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냥 정리해보겠습니다.

"난 너와 함께 할 수 없어." 여우가 말했다. "나는 길들여져 있지 않으니까"

(중략)
(어린 왕자의 말)

"'길들인다'는 게 뭐지?"

(중략)
(여우의 말)

"그건 너무나 잊히고(본문에는 잊혀지고. 잊혀지고는 영어식 이중피동 어구라서 비문에 가깝습니다) 있는 거지. 그건 '관계를 만든다......"는 뜻이야." 여우가 말했습니다.

(중략)

(여우의 말)
"------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환히 밝아질 것이야. 다른 모든 발자국 소리와 구별되는 발자국 소리를 나는 알게 되겠지. 다른 발자국 소리들은 나를 땅 밑으로 기어들어가게 만들 테지만 너의 발자국 소리는 땅 밑 굴에서 나를 밖으로 불러 낼거야! --------------그런데 너는 금빛 머리칼을 가졌어. 그러니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정말 근사할 거야! 밀은 금빛이니까 나에게 너를 생각나게 할 거거든. 그럼 난 밀밭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 소리를 사랑하게 될 거야....."

(중략)

(여우의 말)
"사람들은 이제 아무것도 알 시간이 없어졌어. 그들은 상점에서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들을 사거든. 그런데 친구를 파는 상점은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는 거지. 친구를 가지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줘"

(중략)

다음날 다시 어린 왕자는 그리로 갔다.
"언제나 같은 시각에 오는 게 더 좋을 거야." 여우가 말했다.
"이를테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것이야. 시간이 갈수록 난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아무 때나 오면 몇 시에 마음을 곱게 단장해야 하는지 모르잖아. 의식이 필요하거든."

(중략)

여우가 말했다.
"내 비밀은 이런 거야. 그것은 아주 단순하지. 오로지 마음으로만 보아야 잘 보인다는 것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중략)
(여우의 말)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그 시간 때문이란다"

(중략)

"사람들은 그 진리를 잊어버렸어." 여우가 말했다. "하지만 넌 그걸 잊으면 안 돼.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지. 너는 네 장미꽃에 책임이 있어....."
..............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 왕자는 되뇌었다.


그리고는 고 1때 혼자 이 책, 특히 이 21장을 생각하면서 넋두리 한 편을 긁적여본 적도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 시화전에 넋두리  수준의 시를 출품했는데, 그때 몹시 부끄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이 책은 제 초기 청소년기 감수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줬던 것 같습니다.

Posted by 늘 축제였음..
어제(17일) 영풍문고에 들러 책을 산 뒤 후배랑 마산 창동의 한 분식집을 들렀습니다.

노조 사무국장 맡아 하다 갑작스럽게 4개월간 노조 전임자 신세가 돼 그 해(2007년) 여름휴가 못 가고, 대학원 수업으로 2년간 평소 휴가에 연차까지 몽땅 쓴 탓에 지난 3년간 여름휴가계를 낼 수 없었음다. 올해 만 4년 만에 여름휴가계를 낸 것이죠.

4년 만에 찾아온 달콤한 여름휴가라서, 혼자 여행이라도 갈까 하다가 차라리 집에서 푹 쉬고 보고 싶었던 책도 실컷 보기로 했습니다. 물론 다소 모자라는 '쩐'의 문제도 있었지만요. ^^

아무튼 갑자기 쫄면이 먹고 싶다 했더니 함께 있던 후배가 이 분식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분식집 입구에는 이곳이 40년의 역사를 지녔다는 입간판이 있더군요.

한 분식집이 40년이라...
창원시로 행정통합이 됐어도 손맛 오래된 밥집은 여전히 마산지역에 있다는 사실 다시 확인.

요즘 조금씩 시작한 트위터에 인증샷 한 번 올려볼까 해서 이 분식집의 입간판을 찍었죠.
그리곤 제 눈에 입간판 위로 그물을 친 거미가 한 마리 보였습니다.

40년 전통이라는 입간판 위에 그물을 친 거미. 사진을 보시면 마산사람이면 대략 어디인지 아실 것입니다.


실례를 무릅쓰고(?) 그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얼마나 여기 있었니"라고요.

그런데 그 친구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좀 거친 표현을 하자면 쌩까였습니다.
이론 거미에게조차 쌩까이다니....쩝.
말 없는 거미를 원망하며 혼자 휴대전화 카메라로 인증샷 찍는 것으로 섭섭함을 달랬습니다.
혹여 이 친구가 내게 초상권으로 소송은 걸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하며.

거미 수명은 종류 따라 무척 다르다고 하는데요. 보통 1-2년 살지만 어떤 거미는 20년 이상도 산다고 네이버에 담긴 두산동아 백과사전이 친절하게 가르쳐줬습니다.
그리고 이 분(블로거 jtleekor님) 의 글을 보니 암컷은 최대 25년까지도 산다고 하네요.

궁금하시면 아래를 꾹.

세계에서 가장 큰 골리앗 거미(biggest spider goliath tarantula)

거미 수명. 최장 25년.
이 친구는 40년 된 이 분식집 역사와 얼마나 함께 했을까요?

아님 이 친구도 대를 이어서 이 분식집의 문지기 노릇을 한  것은 아닐지....

혹, 창동에 있는 이 분식집을 들르면 입구에 있을 이 거미친구에게 꼭 인사하세요.

저는 튕겼지만 다른 분께는 이 친구가 말을 건넬지도 모르니까요. ^^

혹 대화를 나누신 분은 꼭 저희 신문사나 제게 제보해 주세요. 저희 신문에 전세계적인 특종을 안겨 주시는 겁니다, 그건. 블로그 댓글로도 환영이라는...
캬, 기사 제목도 바로 나온다는.

"너희가 말하는 거미를 아느냐?"
"알 수 없는 것이 인생, 거미가 내게 말을 걸다." 정도. ^^
Posted by 늘 축제였음..

얼마 전 옛 마산지역에 있는 가곡전수관에서 타악을 치는 한 분을 알게 됐습니다.

그 사람을 보면서 문득 든 속담 비슷한 어구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네.'


그럼 뭐가 남을까 생각해봤음다. 혹여 사람들이 이 속담 때문에 북도 뺏고 장구도 뺏으면 그에게는 뭐가 남을까... 황당한 생각....

생각해보니 그에게 여전히 남는 것은 장구와 북을 친 손맛이 아닐까합니다.

그 손맛은 그가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남아 있지 않을까라는...

좀 생뚱맞은 얘기지만 MB의 이번 개각을 보면서 이 속담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정자, '왕차관'이라 불리는 박준영까지 다 자진사퇴하면 MB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런데, 이 물음에는 곧바로 단답형 정답이 나오더라고요.

천만 관객을 휩쓴 그 영화와 마니아 층을 중심으로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그 영화.
<왕의 남자> 이..재...오, <영일대군> 이...상...득.

우린 모두 여기 살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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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여기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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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기 평화롭게 살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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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땅

정태춘 아재의 구슬픈 목소리로 부르는 <아, 대한민국>이 통기타 소리에 맞춰 들려오는 듯 합니다. 사실상 국정 2기를 맞는 MB내각의 청문회를 앞두고 남은 2년여 임기도....답답하네요.
Posted by 늘 축제였음..

어제(24일) 저녁 함안보 타워크레인 점거농성 현장을 찾아갔습니다. 저도 회원으로 있는 부산.경남 아고라 분들과 모처럼 함께 가 봤습니다. 아이를 포함해 경남아고라에서 10명, 부산아고라에서 10여 명이 왔고, 밀양촛불모임, 대구환경운동연합 상근자와 회원들, 옛 마산지역 에 기반한 시민단체인 열린사회 희망연대 회원 등이 이날 저녁 함안보에 모였습니다.

2006년 GM대우 창원공장 비정규직 굴뚝 농성 기억이...
사회면 편집 기자로, 함안보 관련 기사가 제가 짜는 면으로 많이 배치돼 고공농성 현장을 보고 싶거든요. 또, 2006년 GM대우 창원공장 비정규직 굴뚝 장기 농성을 취재하기도 해 그 기억이 저를 현장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더군요.

 
현장에 가니 민중의 소리 구자환 기자와 저희 신문사(경남도민일보) 이동욱 기자 2명이 열심히 현장을 취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취재는 방문객 반응을 살펴보거나 이들의 얘기를 전하는 것 외는 일체 할 수 없겠더군요. 굳게 닫힌 정문, 크레인 점거에 들어간 환경운동 활동가 2명의 꺼져버린 휴대전화는 그 이상의 취재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현장 취재는 딱 거기까지 겠구나 싶더라고요.

맞은편 타워트레인에 있는 점거 농성자 2명에게 힘내라고 외치는 촛불문화제 참가들. /경남도민일보 김구연 기자



외침 "최수영 이환문 우리가 있다"
오후 7시 30분이 가까워지자 모인 컨테이너 농성장에 모인 이들은 전망대로 촛불을 들고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전망대 옆 잔디밭에서 촛불을 든 이들은 "최수영 이환문 우리가 있다!" "이환문 최수영 우리가 함께한다!"를 줄곧 외치고, 몇몇 사람의 고공농성 지지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가끔 크레인에서는 불빛으로 그들의 안전과 투쟁의지를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24일 타워크레인 고공농성장을 향한 촛불들. 휴대전화 사진으로 찍어 사진 좀 허접하네요.


하늘의 저주일까? 새까맣게 몰려든 구름

'아침이슬'을 함께 부르고 촛불문화제를 끝내려 하자 까마귀떼가 하늘을 뒤덮은 듯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새까만 구름(CMYK 감산혼합으로 친다면 K값이 거의 90% 정도)이 몰려왔습니다. 그리곤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장대같은 비가 내렸습니다.
드라큘라의 고향이라는 루마니아 한 고성이 옮겨온 듯한 느낌, 혹은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의 싸움을 다룬 영화 <언더월드>의 색감을 보는 듯한 기분 나쁨.
하늘의 저주가 퍼붓는 듯 했다면 지나친 망상일까요?

정문 맞은편 컨테이너에 잠시 있다가 창원으로 발걸음을 옮겨 부산 아고라 분들과 함께 식사하며 함안보 방문 일정을 마쳤습니다.

그들은 무사할까? 그들은 강을 살리는 밀알이 될까?
저는 거기에 개인 소망을 넣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바라봐 주는 것, 혹여 필요하다면 자그마한 마음을 드리는 것, 저는 아직 그 이상 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 했습니다.
Posted by 늘 축제였음..
어제(6월 11일) 롯데가 마산에 와서 2년 1개월만에 드디어 승리를 챙기고 갔습니다. 2008년 5월 13일 삼성 경기 이후 단 한번도 마산에서 이겨보지 못한 롯데를 그래도 마산 팬들은 지극한 애정으로, 1만 9000여 명이라는 거의 만원에 육박하는 이들이 경기장에 와서 응원을 하더군요.

저도 직접 야구장 가서 봤는데, 솔직히 박진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경기였죠. 한화가 조금만 따라오려고 하면 홈런포 펑펑 때리고, 아기자기한 안타로 긴장감이 넘치거나 하는 장면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도 롯데 팬이라 승리가 싫지는 않았지만 박진감이 너무 없으니 야구관람하는 맛은 나지 않더군요.  3루석에 앉아 치어리더들의 화려한 응원 리드도 느낄 수 없어서 정말 아쉽더군요. ^..^
 
물론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만약 1루석 치어리더 석 앞에 앉았다면 아마 3회까지는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의 저질 체력으로 그 이상 열정적인 응원을 할 수 있었을지...체력이 달려 응원을 안하고 있다가, 옆사람들 눈치 보여 4회부터는 다른 곳에 가려하지 않았을지...^^

거기에다 1회초부터 치킨, 김밥, 라면, 만두 등을 입에 마구 쑤셔넣었더니 경기장을 빠져나올 때는 그렇잖아도 튀어나온 배가 더 도드라져보이고, 숨쉬기도 힘들더군요. 역시 과식은 금물이라는. ^^ 


근데, 롯데가 이날 경기를 마치고 오늘.내일은 부산 사직구장에서 경기를 한다네요. 이유를 알아보니 어제는 사직구장에서 전국생활체육대축전이 잡혀 있어 고육지책으로 갑작스레 마산구장으로 장소를 바꿔 경기를 했다네요. 예정에 없던 경기랍니다. 경남 팬들은 씁쓸하게 야구를 즐길 수밖에 없는가라는 아쉬움을 또한번 느끼게 되겠군요.

이래서 적잖은 경남 야구팬들이 통합 창원시(마산)를 연고지로 한 새 구단 창단을 바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김두관 도지사 당선자가 민간에서 프로야구단을 창단하면 최대한 지원을 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으니 조만간 롯데에 무시 당하며 보는 이른바 '동냥 응원'(?)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날이 올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롯데는 이날 승리로 마산 혹은 경남 팬들로부터 "마산하고 무슨 원수졌느냐", "마산에서 야구 하기 싫어 일부러 지는 거 아닌가"라는 원성과 음모론으로부터 탈출하게 된 것 같습니다. 아래는 경남도민일보 스포츠 담당 남석형 기자가 현장에서 바로 작성한 따끈따끈한 경기 기사입니다.

 

롯데, 마산구장 10연패 탈출
홈런 3개 앞세워 7-2로 눌러...공동 3위와 0.5게임차 5위


롯데가 지긋지긋한 마산전 10연패 사슬을 끊었다.

11일 마산구장에서 열린 '2010 프로야구' 한화와의 경기에서 롯데는 3개의 홈런포를 앞세워 7-2로 승리했다. 이로써 롯데는 지난 2008년 5월 13일 삼성전 승리 이후 11경기 만에 마산 팬들에게 승리 기쁨을 맛보게 했다. 
전날 넥센전에서 5개의 홈런을 터트린 롯데는 이날 경기에서도 초반부터 홈런포를 가동했다.
1회초 한화 선두 타자 정원석에 솔로홈런을 허용한 롯데는 1회말 1사 1·2루에서 이대호가 대형 3점 홈런을 작렬했다. 비거리 130m의 장외 홈런이었다.
2회말에는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전준우가 좌월 솔로 홈런을 날렸다. 지난해 7월 8일 마산에서 열린 삼성전에서 프로 데뷔 첫 홈런 기쁨을 맛본 전준우는 또다시 홈런을 기록, 마산구장만 찾으면 펄펄 날았다.


6회말에는 4-2로 앞선 상황에서 가르시아가 우중간 담장을 넘기는 솔로포를 터트렸다. 홈런을 치고 더그아웃으로 향하던 가르시아는 이날 경기장을 찾은 가족을 향해 사랑의 손짓을 했다. 16호 포를 기록한 가르시아는 이날 역시 홈런을 터트린 한화 최진행(17개)에 이어 홈런 부문 단독 2위를 기록했다. 이대호는 15개로 홍성흔과 함께 공동 3위를 기록했다.
이날 선발로 나선 장원준은 7이닝 동안 7피안타·2실점으로 7승(4패) 째를 챙겼다.
이날 승리한 롯데는 30승(1무 30패) 고지를 밟으며 이날 나란히 패한 공동 3위 KIA·삼성에 0.5경기 차까지 추격했다.
한편 이날 마산구장은 1만 9184명의 팬으로 가득 찼다. 롯데는 오는 22~24일 마산에서 한화 3연전을 치른다. /경남도민일보 남석형 기자 nam@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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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진화한 김두관 도지사를 기대하며 3]

(narration insert)
2번의 도지사 낙선, 한 번의 국회의원 낙선, 그리고 세 번째 도전만에 도지사 당선. 2002년 이후 그의 이력은 민주당, 열린우리당, 혹은 친노계열 무소속으로 기록된다. 대중에게 알려진 정치인으로서 그의 모습도 이 이력과 궤를 같이 한다. 국외자는 좀더 시간을 거슬러올라가고 싶어한다. 대중에게 잊히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또다른 그의 모습을 더듬어보고자.

무소속 김두관 경남도지사 당선자가 지난 3일 오전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박석묘를 찾았다. 이날 김 당선자가 노 전 대통령의 작은비석을 어루만지며 당선 소식을 전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S#2-2)

이쯤해서 제가 밥벌이를 하는 신문사(경남도민일보 6월 3일자 2면)에 실린 기사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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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김 당선자의 인생역정에서도 나타난다. 1954년 4월 10일 남해군에서 가난한 농어민의 아이로 태어나 그곳에서 청년까지 자랐다. 남해종합고등학교를 거쳐 1987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그러나 대통령 직선제 개헌쟁취로 이어지는 1986년 청주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된다.
김 당선자는 교도소에서 '진정 이 사회를 사람다운 사회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라는 고민 끝에 '지역의 뿌리가 튼튼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어 출옥 후 귀향한다. 고향에서 남해농민회를 조직하고, 1988년 '민중의 당' 후보로 13대 총선에 출마했지만 4명 중 3위로 낙선한다.
그러나 그는 1988년 남해 고현면 이어리 이장을 시작으로 꿈을 키운다. '군민주'로 <남해신문>을 창간했고, 사장인 자신이 직접 배달을 하면서 주민들을 살핀 끝에 군민 절반 이상이 구독하는 성공을 거둔다.
그 후 김 당선자는 1995년 당시 37세의 나이로 남해군수에 당선된다. 지방자치의 모범으로 남해 혁명이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군수관사를 헐어 민원인 주차장과 느티나무쉼터를 만들고 군수실 한쪽 벽면을 투명유리로 바꾸는 열린 군정을 펼친다.
또 민원인 공개 법정 제도, 주민공사 감독관제, 주민 220명 이상 요구 시 감사 청원제도 등을 도입한다. 독일 파견 광부와 간호사들이 조국에서 살 수 있도록 독일인 마을과 남해 스포츠 파크 등 남해군 관광도시 발판을 마련한다.
김 당선자는 2002년 4월 남해군수 7년의 생활을 접고 경남도지사 선거에 처음 출마하지만 낙선한다.
....................................................................................../김정훈 기자

이 기사에서 관심을 끄는 부분은 동아대학생 시절 대통령 직선제 쟁취 투쟁을 하면서 교도소에 수감된 점, 지금은 민주노총과 함께 민주노동당의 양대 정치적 기반이 된 전국농민회, 그중 남해군지부를 조직했다는 점입니다. 1988년 '민중의 당'후보로 이미 총선에 나선 점도 눈에 띕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로 노동현장을 많이 누볐다곤 하나 김두관 경남도지사 당선자가 농민회에 몸 담으며 직접 근로현장을 경험하고, 그 토대로 진보적 성향의 농민단체 조직을 일군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민중의 당 후보로 총선에 나선 점은 (진보정당 자체가 없는)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선택이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보수정당 간판을 달고 국회에 입성한 점에서 정치인으로서의 시작이 다르죠.

더욱이 노무현 대통령이 수도권/비수도권의 권력 분점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는 지역분권과 국토의 균형발전에 무게를 뒀다면 김두관 당선자는 이장, 군수를 경험하면서 지역분권보다 더 근본적인 풀뿌리 지역자치에 방점을 두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물론 행자부 장관 시절 프랑스 데파르트망(department)과 레지옹(Region)의 중간 규모로 상정한 50여 개의 중광역시로 기존 광역 시.도를 재편하는 행정구역 개편 논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참여정부의 행정총책임자로서 새로운 형태의 지역분권체계를 따르는 데 무게를 뒀다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참고로 프랑스의 행정단위는 우리나라의 광역시.도와 유사하지만 지역의 역사성을 어느 정도 결합한 레지옹(region)과 코뮨(commune)을 기본으로 하고, 레지옹과 코뮨의 중간인 데파르트망을 두고 있습니다.

프랑스 행정조직 및 자치제도 관련 글을 보려면 아래를 클릭.
(영국.프랑스 자치제도가 제주행정계층구조 개편에 주는 시사점)

어떻든 김두관 당선자는 지방분권보다 풀뿌리 지역자치에 보다 근본적인 이해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 김두관 당선자는 선거를 일주일여 앞둔 마산MBC 초청 도지사 후보 토론회에서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을 닮고 싶다고 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브라질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노동당 출신으로, 브라질 최대 노조인 철강노조 위원장(우리나라로 치면 금속노조 위원장)을 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1986년 드디어 하원의원이 됩니다. 하지만 그 뒤 대선에서 세 번이나 고배를 맛보고, 2002년 드디어 브라질 대통령이 됩니다. 2006년에는 재선에 성공하죠.

김두관 당선자는 그를 닮고 싶은 모델로 꼽은 이유 중 하나로 각종 빈민 정책을 시행하는 진보적 사고를 함과 동시에 경제 분야에서 유연성을 가지면서 복지와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아 브라질 국민들은 역대 최고의 대통령으로 뽑힌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최근 국정수행 지지율이 75-81%에 이릅니다.


김두관 경남도지사 당선자가 본받고 싶은 인물로 거론한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오른쪽). 왼쪽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오마이뉴스


1980년 창당한 사회주의 정당인 브라질노동당은 한국의 진보정당들처럼 전국정당화를 우선 시도하기보다는 각 지역에서부터 꾸준하게 정치적 힘을 길러 집권에 이른 정당입니다. 참여자치예산제 도입으로 유명한 포르투알레그레, 전세계 환경수도라고 일컬어지는 쿠리치바 등 브라질의 유명 도시 상당수는 브라질노동당이 장기 집권한 곳들입니다.

덧붙이자면 포르투알레그레시는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선진국+자본) 중심의 세계경제포럼에 대항해 '또다른 세계'를 지향하는 세계사회포럼이 2001년부터 해마다 열리는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아무튼 진보정당 초기 한국에서도 섣부른 전국정당을 1차 목표로 하기보다는 지방자치에서 운영의 힘을 길러 전국화로 가야한다고 적잖은 이들이 전략을 제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친노 간판으로 나온 민주당의 이광재, 안희정, 한명숙,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등 광역자치단체장 후보 4명과 비교하더라도 김두관 당선자는 가장 진보적 성향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보가 절대선이냐? 그건, 관점에 따라 저마다 다르겠죠. 아니 그것이 도정 수행에서 약점으로 작용할 여지도 없지 않습니다. 한국, 아니 경남만 하더라도 도의원 대다수가 한나라당 소속입니다. 여야간 43(한나라 38, 한나라 성향 무소속 5):11 정도 되니까요. 그가 얼마나 이견에 대한 소통을 잘 해낼지는 과제겠지요.

하지만 한나라당 일색이던 남해군수 시절 무난한 군정 운영을 한 점은 차치하고, 2004년 밥벌이하는 신문사 기자회 사무국장으로 있으면서 각 당 도지부장 초청으로 선거전략 공청회를 했을 때 만난 그에 대한 제 기억으로는 여러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보다는 잘 해낼 것으로 믿습니다.  2004년 만난 그는 여러 의제에 대해 정말 차분하면서도 진지하게 상대방을 설득하려 했습니다. 우직.진지 모드, 그러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고, 또 한편으로는 단호함을 갖췄다고 느꼈거든요. 노 전 대통령이 정면승부를 즐기는 승부사 기질이 있었다면 김두관 도지사는 또다른 소통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이후 출간된 두 번째 유고집 <진보의 미래>를 저는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여러 매체의 소개글 정도를 읽은 수준이죠.

친노라고 일컬어지는 이들 중 제 생각으로는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시 실천하지 못하고 미완으로 남겨둔 '한국적 진보가치의 미래'에 대해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행할 수 있는 이가 김두관 당선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더라도 그에게 녹록치 않은 과제들이 그의 도정 운영 과정에서 던져질 것입니다. 그 과제와 실험은 기대감과 걱정도 함께 던져줍니다.

(narration insert)
창원 경남도청 앞에 선 국외자는 생각에 잠긴다. 곧 비행기를 타러 김해공항으로 가야할 시간인데... 아직 정리하지 못한 생각의 줄기가 그를 짓누른다. 김두관, 그에게 어떤 과제가 던져질까?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민했던 '진보의 미래'가 노회찬에 대한 삿대질로 귀결하는 것일까? 한국을 배회하는 것이 일상이던 그는 짐짓, 아직 그의 가슴에 반도 남녁에 대한 애정이 완전히 식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그 직감이 출국을 머뭇거리게 한다.

(내일 4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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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진화한 김두관 도지사를 기대하며 2]

(narration insert)

그가 김해공항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창원과 마산에 다다르자 거의 모든 신문이 김두관이라는 도지사 당선자를 '리틀 노무현'이라고 칭하는 것을 보게 된다. 김두관의 이력을 생각해본 국외자는 조금 의아스럽다.

(S#2-1)
2002년 4월 남해군수를 그만두고 6.13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한 김두관 후보는 김혁규 당시 한나라당 후보에 7:1이라는 스코어(10.8% 득표)로 집니다. 그리고 그해 12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밤 기적같은 역전승으로 대통령으로 당선됩니다.
2003년 참여정부 초대 행정자치부(현재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이장 출신 남해군수를 지낸 김두관 당선자가 발탁됩니다. 이장 출신이 행정부 수장으로 발탁된 것도 눈엣가시인데 거기에 김 당선자는 초대 장관 업무수행평가에서 당당히 1위를 합니다. 이장 출신이 장관을 하는데, 거기에다가 일도 잘한다? 국민 사이에서 기존 사회 엘리트를 보는 시각이 조금씩 달라지려는 조짐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2002년 5월 13일 김두관 후보가 도지사 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위). 아래는 4월말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돼 5월 16일 경남을 찾아 김두관 지원을 당부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경남도민일보 자료사진



 그런 그 파장에 한나라당, 그리고 우리 사회를 이끌고 간다고 생각한 기득권 세력의 심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나봅니다. 남해 지역구의 박희태 의원은 당시 공공연하게 "이장 출신 주제에..."라는 말을 종종 했죠.  존재 자체가 기득권 세력의 심기를 극도로 불편하게 만든 그는 그해(2003년) 9월 3일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장관 해임안을 단독으로 처리하면서 장관직을 그만두게 됩니다.                                                       

한나라당은 당시 해임안 통과의 표면적인 이유로 화물연대 파업 등 진보와 보수간 극한의 갈등을 조정하는데 실패, 한총련의 미군 부대 난입.탱크 점거 사건 대처 미흡, 야당 당사 점거 방치 등 치안 처리 미흡 등을 내세웠지만 이장 출신 주제에 라는 기득권의 참기 어려움 심기표출과 노무현 정권에 대한 정치적 타격을 주려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이 그가 서민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심는 계기가 되죠.                                                   
 

지난 2003년 1월 3일 당원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남운수연수원 대강당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도지부 결성대회에서 김두관 도지부장과 이태일 공동의장, 정동영·이미경·신기남 의원 등이 손을 맞잡고 총선 필승을 다짐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유은상 기자 yes@dominilbo.com


이 시기에 '김두관 = 리틀 노무현'이 확고해집니다. 그런 덕분인지 그의 팬클럽인 두드림뿐만 아니라 노사모의 지지도 끌어냅니다. 그 결과가 2006년 2월 18일 있었던 열린우리당 당의장 및 최고위원 선거에서 3위를 하는 기염을 토하며, 열린우리당 최고위원으로 지도부에 입성합니다. 하지만 그해 5.31지방선거에서 경남도지사로 출마해 다시 낙마합니다. 그리고 4년 뒤인 2010년 이번 지방선거에서 도지사로 당선됩니다.

2006년 5월 10일 오전 창원컨벤션센터 대회의실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경남도지사후보 출정식에서 김두관 후보, 정동영 의장, 김근태 최고위원, 오거돈 부산시장 후보 등이 함께 손을 맞잡고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경남도민일보 유은상 기자


알만한 이는 다 아는 이 이력을 왜 정리해봤을까요? 김두관 도지사 당선자의 팬은 아니지만 이 이력은 오히려 김두관 도지사 당선자는 리틀 노무현이다라는 등식을 더욱 확고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저는 왜 아니라고 생각할까요. 그건 남해군수 시절과 그 이전으로 거슬러올라가면 알게 될 것 같네요.

(narration insert)
2번의 도지사 낙선, 한 번의 국회의원 낙선, 그리고 세 번째 도전만에 도지사 당선. 2002년 4월 남해군수 퇴임 이후 그의 이력은 민주당, 열린우리당, 혹은 친노계열 무소속으로 기록된다. 대중에게 알려진 정치인으로서 그의 모습도 이 이력과 궤를 같이 한다. 국외자는 좀더 시간을 거슬러올라가고 싶어한다. 대중에게 잊히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또다른 그의 모습을 더듬어보고자.

(3.4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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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진화한 김두관 도지사를 기대하며1]

(openning)- narration insert
국외자는 어느 한 나라에서 한반도, 한반도 중 남녁인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비행기를 타고 온다. 인천 영종도 신공항이다. 영종도에서 버스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향한다. 김포공항 TV에서 나오는 뉴스는 온통 대한민국의 지방선거에 관한 얘기다.
다시 김해공항행 비행기를 타고 경남으로 온다. 공항버스를 갈아타고 창원으로 온 한 국외자는 잠시 머뭇거린다. 지인으로부터 절망적 축제가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들었던 터라 선거가 적잖은 희망의 메시지로 변해 대한민국, 그 속의 경남도민들은 한눈에 봐도 들떠있다. 그 들뜸이 기쁘면서도 웬지 불안하다.
국외자는 그 불안의 이유를 몰라 다시 김포공항을 향해 이륙한다. 이 글은 한 국외자가 경남 착륙과 이륙 동안 느낀 복잡한 심경을 네 차례로 나눠 정리한 것이다. 시기는 6.2지방선거 직후. 

김해공항./경남도민일보 자료사진


(S#1)
최근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의 낙마 소식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에게 '노회찬.진보신당'은 거의 희생양 의식을 치러야했습니다.

저조차 한명숙 시장 후보의 낙마에 참 속이 쓰립니다. 신문 제작을 마치고 씻고 잠들기 직전이던 3일 오전 5시까지 TV를 보다가 몇 시간 눈 부치고 일어나니 결국 강남3구(부르주아)의 철저한 계급투표가 사단을 냈더군요.
하지만 한 후보의 낙마 탓에 자신의 이념적 지평과 계급.계층적 지지를 기반해 정당정치를 하려는 이들에게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강제된 선거연합 혹은 선거연대만이 민주의의를 회복하고 확장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하지 않은 이들에게 전적인 선거 책임을 묻는다면... 저는 여기서 잠시 다수 '시민'은 어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지 그 내용을 곱씹어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촛불이 남긴, 이제는 거의 보편화한 '시민'(이 개념에는 아마도 '대한민국 = 민주공화국', '주권은 국민. 혹은 시민에게 있다'를 깨달은 시민이라는 뜻이 속살에 있는 듯 합니다) 속에는 새로운 헤게모니 탄생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젠 체하는 말로 또다른 미시권력의 출현 가능성이 엿보였다고 할까요? 그래서 촛불시민이라는 이름 속에 희미하나마 자기 배타성이 문득 문득 드러나기도 했죠. 그 배타성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느냐도 눈여겨볼 대목이었습니다. 진보신당을 제외한 야4당의 지방선거 야권연대 성사는 이명박 정권의 일방주의, 형식적.내용적 민주주의의 커다란 후퇴 등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촛불시민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야권연대는 또다른 의미의 독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사회에 이른바 좌파정치를 하고자 하는 이들은 아직도 정치적 소수자입니다. 전국단위 선거에서 야권연대를 한다면 아무래도 덩치가 큰 정당인 민주당에게 일방적 수혜가 갈 가능성이 높고, 덩치 큰 정당이 헤게모니를 얻은 채 연대가 이뤄지기 쉽죠. 이번 야권연대 과정에서 광주시의회의 선거구 조정 파동으로 연대 자체가 깨질 뻔하지도 않았습니까? 이번 선거는 그나마 시민들의 야권연대 요구가 워낙 거세 민주당이 겨우 좀더 양보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매번 그렇지 않겠지요. 민주당은 조금만 판이 유리할 것 같으면 야3당의 손을 쉽게 버릴테지요. 태생과 정치기반의 차이가 확연하니까...

체질 개선을 하고 있다지만 민주당은 중도 우파정치연합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결국 중도 우파 연합이 극우 혹은 우파 연합인 한나라당을 이기기 위해 중도 연합(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과 넓은 의미의 좌파 연합(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아직 의회정치에 기반하는 정당으로 성장하지 않은 사회당은 논의에서 제외한다)에게 보다 많은 양보를 요구한 것이지요.

이번 지방선거 야권연대의 정치공학적 핵심은 이것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야권연대를 통해 이룬 성과를 무시하거나 간과해서 이런 지적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내용은 이미 여러 보도매체, 블로그들께서 분석을 쏟아내셔서 굳이 제가 여기에 다룰 필요가 없겠다 싶더군요.

6·2 동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마지막 휴일을 맞은 후보들은 유세 총력전을 펼치며 표심잡기에 온힘을 기울였다. 야권단일화 무소속 김두관 경남도지사 후보가 지난달 29일 오전 진해 중앙시장앞에서 거리 연설을 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 이후 선거권을 가진 뒤 처음으로 한국사회에서 야권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논의를 좀 더 일찍 시작해 정책적 연대 수준으로 갔으면 했습니다. 물론 인천, 강원, 경남은 사실상 지방공동정부가 들어설 예정이어서 그 운영 방향에 기대합니다만, 전체 선거판에서 야권연대의 정치적 모양새가 변한 것은 아니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김두관 당선자에 대한 얘기가 중심이지만, 한편으로는 의도하지 않게 노회찬에 대한 변명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narration insert)
그가 김해공항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창원과 마산에 다다르자 거의 모든 신문이 김두관이라는 도지사 당선자를 '리틀 노무현'이라고 칭하는 것을 보게 된다. 김두관의 이력을 생각해본 국외자는 조금 의아스럽다.

(내일.모레 2.3.4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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