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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프랑스 파리 구도심 거리 대부분이 주말이면 2차로를 1차로 일방통행로로 바꿔 보행자들(관광객이 많음)이 보다 쉽게 걷도록 배려한다. /경남도민일보 유은상 기자


이 글은 한국토지공사와 국토해양부가 공동으로 펴내는 격월간지 <시민과 도시> 다음달 호(7.8월호?)에 낼 예정인 기고글입니다. 토공으로부터 먼저 제 블로그에 올려도 된다고 양해를 받아서 우선 이 곳에 올립니다.


역설적이지만 보행은 머무름이자 소통이다

- 부제: 보행이 지닌 도시 문화적 의미

글쓰기에 앞서

지난 20069월 초 9일간의 일정으로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주최한 ‘살고 싶은 지역 만들기 일본연수’에 참여했었다. 연수에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부위원장과 담당자,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살고 싶은 지역 만들기’ 실무팀, 광역‧지역 일간지, 일본 마을만들기 국내 전문가들이 함께했었다. 이 마을만들기에 기초해서 행자부, 농림부(현 농림해양수산부),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는 각종 사업을 2년 가까이 펼치고 있다. 현 시점에서 중앙정부 중심의 다양한 ‘마을만들기’(혹은 도시는 창조도시) 프로젝트가 얼마나 일관성 있고, 그 정책 취지에 맞는지 점검할 때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점검이 혹여 이 프로젝트의 지향점마저 버리지는 않았으면 한다. 이 부분은 청탁받은 내용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이쯤으로 줄이겠다. 어떻든 이 글이 그 점검에 작으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

보행은 있었지만 보행권은 없었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메트로폴리탄), 심지어 내가 사는 공간인 마산.창원과 같은 중간 규모의 도시에 살지 않고 농촌에 사는 이에게 ‘보행권이 없다’는 말을 해보시라. 혹여 부모님이 농촌 출신이라면 어린 시절 ‘걸을 수 있는 권리’가 필요했는지 물어보시라. 직립보행은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이긴 하지만 걸을 수 있는 권리는 아주 생소한 말이다. 이 생소한 권리가 현대 사회의 특징 중 하나에서 나왔다. 바로 ‘도시’다. 그것도 역사시대 이후 이처럼 비대해진 적이 없는 도시 때문에.

유인원에서 현대인과 비슷한 직립보행을 하는 류로 진화하고서 인간에게 보행은 일반적인 행위이자 존재 형태였다. 물론 인간은 자연에서 직접 얻거나 자연을 이용해 얻는 자원과 식량 등이 늘어남에 따라 다스리는 존재와 다스림을 받는 존재로 나뉜다. 이 시기(역사 시대 전후) 이후 보행은 계급․계층적 성격을 띤다. 역사 시기마다 그 형태를 달리하지만 다스리는 이들에게 보행은 선택의 문제였다. 동물을 이용한 이동수단이 발달하고, 다스림을 받는 이가 다스리는 자(혹은 그 그룹)가 원하는 곳까지 이 이동수단으로 이동시켜줬다. 다스리는 자에겐 보행은 최소화되거나 이른바 ‘산책’이란 뜻에 가까웠다. 하지만 다스림을 받는 자, 혹은 생산물을 만드는 이에게 보행은 선택이 아닌 생존이자 생활이었다. 다스리는 자는 심지어 보행을 천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보행은 이렇게 이원화됐다. 근대 이전(심지어 근대 초기조차) 서구 사회든, 동양이든지 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행에 이렇게 이원적 모습을 나타냈더라도 여전히 ‘보행권’이란 말은 없거나 불필요했다. 다스리는 자이든, 다스림을 받는 자이든 자신이 원하면 언제 어디서든 별다른 장애 없이 걸을 수 있었다. 이 시기 ‘보행’은 팽창된 현대 도시 공간의 그것과는 구분된다. 지금이라도 농촌을 가면, 심지어 자신이 사는 뒷산만 가더라도 걷는 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이처럼 걸을 수 있는 권리란 말은 현대 이전, 그리고 지금처럼 급팽창된 현대 도시 공간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할 이유도 없었다. 만약 필요했다면 주로 보행하는 이들이던 다스림을 당하는 자들이 반란을 꾀한 프랑스 대혁명 때 ‘빵과 자유를 달라’와 함께 ‘마음 놓고 걷게 해달라’란 요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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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사회당 출신의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 시장은 주말이면 구도심을 중심으로 파리 곳곳을 보행자‧자전거 전용 도로로 만드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보행자가 안전하게 찾을 수 있으면 문화는 자연스레 생성된다. 사진은 주말 보행자 전용 도로가 된 곳에서 파리 젊은이들이 인라인스케이트로 묘기를 부리는 장면. /경남도민일보 유은상 기자


‘도시로, 도시로’ 팽창한 현대 도시에선 마음 놓고 걸을 자유가 없다

“(서울)시청에서 신촌까지 얼마 정도 걸리죠”라고 누군가 물어봤다고 가자. 대부분의 사람은 “지하철로 네 구간입니다” 혹은 “택시(버스)로 얼마 정도 걸립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여기에서 시간은 ‘걸어서 얼마’라는 의미가 들어있지 않다. 이처럼 이동속도는 걷는 속도가 아닌 전철이나 자동차(혹은 버스)에 의한 옮겨지는 속도이다. 도시민의 대다수는 이미 속도란 전철과 자동차가 달리는 속도에 맞춰져 있다.

자동차‧버스‧전철의 속도는 현대 도시를 이해하는 중요한 척도다. 현대 도시는 생산과 소비를 위해 고도로 압축된 공간이다. 자본의 집적과 집중을 위해 되도록 길은 직선이어야 한다. 또한 자본집적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과 생산을 위한 원자재, 그리고 만들어진 상품은 신속히 나르고 모아야 한다. 자본의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마산과 창원 같은 대공장이 많은 도시에서 80년대와 90년대 대중교통이 발달하고, 통근 버스가 발달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최대한 빠른 시간, 정확한 시간에 생산하는 이들을 이동시켜야 하기 때문에.

그 사이 사람들은 농촌에서 ‘도시로, 도시로’ 흡수됐다. 농촌인구는 87년 1000만에서 500만으로, 한국의 도시화율은 2005년 88.4%에 이르러 홍콩 같은 도시국가 형태의 도시를 제외하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사실상 한국민 절대다수는 도시민이다.

여기서 도시는 다시 한번 탈바꿈한다. 몇몇 이들의 특권으로만 여겨지던 자동차가 경제성장을 통해 일하는 이들에게도 주어진다. 이른바 80년대 말, 90년대 초의 ‘마이카 시대’가 한국에도 온 것이다. ‘마이카 시대’는 도시의 모습을 바꿔놓았다.

길은 또 확대된다. 이때에도 길은 보행로가 아닌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이다. 또한 차도 머물러야 하기에 계속 차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인 주차장을 확대해나갔다. 한계가 뚜렷한 도시 공간은 걷는 이들을 거의 배려하지 않았다.

농경사회에선 마을 입구나 중간에 있던 마을 공동 마당(경남 지역에선 이를 베꾸마당이라고 했다)에서 함께 어울려 놀 수 있었다. 이농 시대 도시에서 이런 풍경은 사라졌지만 대신 골목길이 그 아쉬움을 달랬다. 도시에서 아이들의 휴식처이나 놀이 공간이던 골목길마저 이 차가 마치 점령군처럼 지배해버렸다. 심지어 도로 위에 있던 건널목도 차의 이동 속도를 더 빨리 하려고 지하도나 육교로 바꾼다. 걷는 이들은 도시에서 삼류 인간으로 전락한다. 하지만 다행히 걷는 것은 이제 ‘해야만 하는 그 무엇’이 아닌 도시민 대다수에게 ‘선택의 문제’로 바뀐다. 최소한 걷기에선 도시민 누구나 돈의 많고 적음, 권력소유 유무와 상관없이 평등하다.

‘마이카 시대’의 도래는 기존 생산에만 필요하다고 여겼던 이들이 상품을 소비하는 데도 중요한 주체가 됐음을 알려줬다. 서울과 같은 몇몇 대도시에만 있던 백화점이 지역 주요도시에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아직 이 시기에는 백화점보다 주로 재래시장이나 저층 도심 상가 지에서 소비가 이뤄졌다. 그래서 쇼핑은 곧 평소보다 많이 걷기와 다름없었다. 사람들은 저층 도심 상가 지를 중심으로 보행하는 자유를 누렸다. 이곳에서 보행은 머무름과 만남을 의미했다. 저층 도심 상가지 거리는 평소 보기 어려운 이들을 자주 볼 수 있는 광장(혹은 과거 농촌의 마을 공동 마당)과 같은 역할을 했다. 물론 저층 도심 상가 지가 번성하면서 걷기가 항상 편한 것은 아니었다. 차들이 이곳을 심심찮게 지나가며 보행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최소한 이 시기 차들은 적지 않은 인파로 말미암아 이곳을 지나는 게 성가셔 다른 길로 피해 가는 아량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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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유럽 도시 중 보행자의 천국이자 트램(경전철)의 도시로 불리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시의 ‘쁘띠 프랑스’(작은 프랑스 혹은 아름다운 프랑스라는 뜻) 지역 전경. /경남도민일보 유은상 기자

하지만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대형마트는 대도시뿐만 아니라 지역 중소도시의 기성 저층 도심 상가 지의 상권을 붕괴시켰다. 상권 붕괴는 기존 도심 상가 지를 슬럼화시켰고, 동시에 상가지 거리조차 썰렁하게 만들었다. 최소한 이곳은 이제 사람들이 걷고, 머무르고, 서로 만나며 소통하고픈 매력적인 공간에서 제외된다. 도시민들은 보행할 권리를 빼앗겼는지 아닌지를 잊고 지하주차장에서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대한 보행이 적은 쇼핑을 한다.

머무를 자유, 소통할 자유를 위해 ‘보행권’이 필요하다

대도시든, 지역의 중소도시든 대중교통수단을 한 번도 이용하지 않고 걸어보시라. 아마도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지쳐 쓰러질 것이다. 조금만 걸으면 인도와 도로 사이를 가로지르는 지하주차장 입구가 가로막고, 저곳으로 가려고 무시무시한 지하도를 건너야 한다. 인도 곳곳을 가로막은 각종 입간판은 짜증을 더한다. 걷다가 조금 쉬고 싶지만 제법 돈을 지출해야하는 커피숍 같은 쉼터 이외는 땀을 식힐 장소가 거의 없다. 기성 상가 지를 간더라도 여전히 보행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라면 한 뼘의 광장도 잘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전국 곳곳 기성 상가 지들이 ‘보행자 전용거리’, ‘문화의 거리’ 등으로 새롭게 만들어져 보행자를 배려하려고 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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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아구찜 음식점이 즐비하고 고급 의류점이 많았던 마산의 대표적 기성 도심 상가 지였던 마산 오동동 문화의 거리 내 빈 점포가 갤러리로 변했다. 상권이 죽으면서 생긴 빈 점포는 씁쓸하지만 그 비워진 공간을 작품으로 채운 공공미술은 쓸쓸함을 그나마 줄인다.    /경남도민일보 김구연 기자


걷는다는 것은 반드시 머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도시에선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쉽게 찾기 어렵다. 걷기가 어렵고, 머물며 쉴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은 소통을 가로막는다. 머무름이 없는 공간에선 문화란 생성되지 않는다. 서로 만나서 손쉽게 얘기할 수 있는 시간도 그만큼 줄어든다. 자연스레 집, 직장, 대형 원스톱 쇼핑공간과 같이 몇몇 점과 점만이 의미가 있고, 다른 도시 공간은 무의미해진다. 만약 차를 운전하거나 차로 이동을 한다고 할 때 우리는 스쳐가는 공간을 자세히 기억할까. 그저 스치는 정도의 ‘봄’으로 머무른다. 마치 차를 타고 지나치는 풍경처럼 내가 사는 도시(혹은 지역)에 대해 ‘봄’이 적어지면 관심도 당연히 적어진다. 사는 공간에 대해 관심이 적은 이들에게 ‘지역 커뮤니티’는 있을 리 만무하다.

거꾸로 되짚어보자. 걷기는 머물 공간과 시간을 필요로 하고, 머무름은 소통과 문화를 생성시킨다. 또한 걷기는 ‘봄’을 더 많이, 깊게 만든다. 보는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느낀다. 느낀 만큼 관심은 다시 깊어지고, 그런 관심사를 공유하는 이들 사이에 ‘커뮤니티’는 자연스레 생성된다. 물론 인터넷 공간에서 하는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나타난 문화와 커뮤니티도 예상을 넘어 강력해지고 있다. 그렇더라도 얼굴을 보고 서로 만나서 하는 대면 접촉 소통만큼 강력할 순 없다. 이렇게 도시는 보행을 전제로 이농을 통해 잃은, 아니 현재 도시에 걸맞은 새로운 커뮤니티를 생성한다. 다소 확장하자면 이런 커뮤니티들이 지방자치, 혹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필수조건인지도 모르겠다.

도시는 걷고 싶은 공간으로 새롭게 꾸며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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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 2002년 마산‧창원 두 도시(생활권이 같은 두 곳 인구수를 합치면 약 100만이다)를 통틀어 가장 큰 기성 도심 상가 지였던 마산 창동에서 한 시민단체가 ‘청소년 거리축제’를 했다. 하지만 6년여 만에 마산 창동의 유동인구는 절반으로 줄었다. 그 사이 대형마트는 마산시에만 4개점이나 늘었다. /경남도민일보 김구연 기자

2005년 서울시가 보행권 확보를 위한 시범가로 사업을 한 ‘신촌 걷고 싶은 거리’에서 마주한 풍경이 있다. 차도와 보도를 자연스레 경계 지운 가로 벤치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 20대 초반 젊은 여성은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웃으며 계속 대화하고, 60대 남성은 신문을 펼쳐 보고 있었다. 가로 벤치라는 보행자를 위한 조그만 배려가 이렇듯 세대 간 다르면서도 뭔가 어울리는 듯한 묘한 풍경을 자아냈다. 걷고 머무름은 효율성 뒤로 가려졌던 또 다른 의미를 잉태한다.

또한 보행권은 현대 도시에선 새로운 문화를 생성시킨다. 걸을 수 없고, 머무를 공간이 없다면 문화는 그저 문화예술회관이나 대학로의 공연장들과 같이 몇몇 전문 예술인들이 만든 예술행위나 영화 같은 대중예술을 소비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다. 아니, 스스로 문화행위를 체험해보지 못한 이들이 이런 예술 소비에조차 적극적일까?

새로운 커뮤니티와 새로운 도시의 모습을 만들고 싶다면, 우리가 사는 도시는 걷고 싶은 공간으로 리모델링돼야 하지 않을는지.

/경남도민일보 이시우 기자

* 참고로 이 글에 있는 사진의 저작권은 경남도민일보사와 해당 사진부 기자에게 있음다. 혹여 퍼나르실 때는 꼭 출처를 밝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osted by 늘 축제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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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원 <영화서사학> 수업 올해 상반기 리포터 였음다.  좀 깁니다. 지송. **^^

              글 차례

Ⅰ 베르톨루치의 68혁명에 관한 또 다른 플래시 백

- 작품 기본 정보

Ⅱ 68혁명의 문화 혁명적 성격이 나타나는 단초

-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앙리 랑글루아 관장 해임 사건

Ⅲ 영화 서사 분절(전개)

- 시퀸스, 씬(S#)별 정리.

Ⅳ <몽상가들>에 나온 매슈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

- 영화 서술적 특징과 초점화, 공간의 문제

Ⅴ <몽상가들>에 나타난 삽입 영화와 음악

-영화 속 영화 인용과 인물과의 관계, 음악(음향)의 역할

맺음말 <몽상가들>의 모호한 열린 구조

-젊음, 섹스, 혼돈, 혁명 사이에서 흔들리는 베르톨루치






영화 <몽상가들> 속 보이스오버와 영화·음악 차용

Ⅰ 베르톨루치의 68혁명에 관한 또 다른 플래시 백

- 작품 기본 정보

2003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몽상가들>이 영화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와 달리 19685월 프랑스 혁명을 다룬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20053월 말에 개봉했으며, 주인공인 미국인 매슈는 마이클 피트, 이사벨은 에바 그린, 부모세대에 반항적이지만 영화키드인 테오는 루이 가렐이 각각 맡아 연기했다.

베르톨로치는 개봉 직전 기자회견에서 “이번 영화는 나 자신 일부이기도 하다. 물론 68년대에 나는 이미 27살이었지만, 촬영을 하면서 영화의 주인공들과 그 당시의 나를 자주 연관시키곤 했다. 캐스팅을 위해서 많은 젊은이를 만나 68년 운동에 관해 물어보았지만, 그 세대의 젊은이들이었던 부모들은 아무런 얘기를 해주지 않은 것을 알고 너무 놀랐다. 68년 상황을 잊어버렸거나 검열하는 행위는 범죄나 다름없다”라며 이 영화가 68년 프랑스 5월 혁명의 개인사적 회상이자, 이 당시를 보는 감독의 시선이 상당히 녹아있음을 전했다.

또한 베르톨루치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68년 혁명 세대의 쓸쓸한 패배주의를 담았다면 <몽상가들>은 다른 비전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전반은 68년 프랑스 5월 혁명의 의미보다는 당시 20살의 세 청년의 세상에서 다소 벗어난 유미적인 문화적, 성적 탐닉을 그리는데 더 주력하고 있다.

다음은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베트남전을 피해 프랑스로 유학 온 매슈는 폐관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앞에서 만난 쌍둥이 남매 이사벨과 테오에게 저녁 식사 초청을 받는다. 하룻밤을 지낸 매슈는 우연히 두 남매가 벌거벗은 채 한 방에 자는 것을 확인한다. 부모님이 여행을 떠난 파리의 아파트에 남겨진 쌍둥이 남매 이사벨과 테오는 매슈에게 한 달 동안 함께 있자고 제안하고 매슈가 이를 받아들인다. 세 사람의 공통분모는 영화와 음악. 그들은 영화의 한 장면을 재현한 후 제목을 맞추는 게임을 통해 서로 감정을 시험하고 성적 판타지를 채우며 부모님이 없는 완벽한 자유를 만끽한다. 이사벨은 영화 수수께끼를 못 맞춘 테오에게 자위를 하라고 요구하고, 테오는 게임의 벌칙으로 이사벨과 매슈에게 함께 잘 것을 명령한다. 그 후 이사벨과 매슈는 서로에게 묘한 감정을 가지게 되고 이때부터 이들 세 청춘의 아름답고도 매혹적인 결합이 시작된다. 하지만 서로간의 세계관의 차이, 계속 진화하는 68년 혁명 상황은 이들만의 공간인 남매의 집에만 있게 하지 않는다. 시위대의 돌이 창문을 깨고 집으로 들어오자 결국 거리로 나가는 세 사람. 매슈는 시위에 합류하려는 이들을 말리지만 두 남매는 시위에 참여한다.

<몽상가들>에 대해서는 감독의 8년 만의 귀환, 더욱이 중국혁명 이후 가장 매력적인 세계사의 대변동 중 하나였던 프랑스 68혁명을 그리며 돌아온 베르톨루치에게 찬사와 실망이 엇갈린다.

이 글은 Ⅱ장에서 이 영화의 주된 시대 배경이자 세 인물의 처음으로 만나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앙리 랑글루아 관장 해임 사건과 68혁명에 대한 간단한 언급을, Ⅲ장에서는 전통적인 영상 분절 단위인 시퀸스와 신별 분리를, Ⅳ장에서는 매슈의 보이스오버 내래이션을 통해 영화 서술적 특징과 초점화·공간 문제를 살펴보고, Ⅴ장에서는 영화 속에 사용된 인용된 영화 장면과 음악을 통한 작품 특징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 맺음말에 해당하는 Ⅵ장에서는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과 영화 속 영화 인용과 빈번한 음악사용을 통해 본 <몽상가들>의 서사적 특징을 짚어본다. 이 특징들이 베르톨루치가 그리고자 했던 685월 혁명과 섹스, 젊음에 대한 찬사로 효과적으로 이어졌는데, 아니면 단순 의미만을 부여할 만한 사적 회상으로만 빠졌는지 살펴볼 것이다.

아쉬움이 있다면 시간과 능력의 부족으로 작품의 시퀸스와 신 별 분절을 통해 작품의 시간성과 공간의 문제를 꼼꼼히 따져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방학 동안 개인 과제로 돌려야겠다.

Ⅱ 68혁명의 문화 혁명적 성격이 나타나는 단초

-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앙리 랑글루아 관장 해임 사건

시퀸스 1의 S#2(Ⅲ장 영화 서사 분절 참조)에서 볼 수 있듯 매슈, 이사벨, 테오 등 이 세 명의 청춘이 만나게 된 계기는 (파리)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앙리 랑글루아 관장 해임 사건과 뒤따른 시네마테크의 폐관이다. 이사벨과 매슈의 첫 만남도 폐관된 시네마테크 앞에서다.

앙리 랑글루아는 조르주 프랑주와 함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공동 설립자이자 운영자였다. 앙리 랑글루아는 1948년 10월 26일 파리의 메신느 거리에 첫 번째 영화 박물관인 이곳을 개관했다. 이곳은 1920년대부터 시작된 자생적인 ‘시네 클럽’의 활동을 하나로 묶으면서 영화광(시네필)들의 모임 장소이자 고전 영화를 소개하고 상영하는 곳으로서 큰 역할을 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규모는 객석 50석 정도에 불과했지만, 영화가 상영될 때마다 극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 뒤 40여 년이 지난 2005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스페인 빌바오 미술관으로 유명해진 미국 출신 천재 건축가 프랑크 게리(Gehry)가 만든 '아메리칸 센터(미국 문화원·1994)'로 전격적으로 옮겨진다. 현재 이곳에는 전 세계 40만 개에 해당하는 필름이 소장되어 있고, 매년 40개에 해당하는 영화 복원작업을 진행 중이며, 해마다 800편에 해당하는 영화들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있다. 프랑스영화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클래식, 제3세계 영화 등을 상영하는 3개의 상영관 외에도(700명의 관객 수용 가능) 두개의 전시관을 더 가지게 됐다. 하나는 영화역사박물관. 3천여 개의 카메라, 소품, 역사적인 사진을 포함한 고문서 등 영화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기획된 곳이다. 나머지 한곳은 시즌마다 테마를 가지고 정기적으로 새롭게 단장되는 곳이다.

랑글루아는 시네마테크가 단지 과거의 영화들을 보존하고 필름을 모으는 일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영화 교육이 지식을 전수하는 학교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영화와 소통하며 이뤄지는 것이라고 믿었다. 영화 속에서 매슈가 말하는 것처럼 그는 어떤 영화가 훌륭한 영화인지 알 수 없으니 되도록 많은 영화를 수집해 관객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누벨바그 같은 프랑스 영화 세대들은 바로 이곳에서 영화를 보고 토론을 하며 공부를 한 프랑스 영화의 산실을 랑글루아가 제공한 셈이다. 따라서 영화사가들은 이 앙리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없었다면 프랑스의 누벨바그 또한 시작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그에게 일명 ‘랑글루아 사건’이 터졌다. 1968년 2월 9일 드골 정부의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는 앙리 랑글루아를 전격 해임했다. 랑글루아가 시네마테크 관장으로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프랑스 영화인들과 시네필들은 시네마테크가 있는 팔레 드 샤이요 궁 앞에 모여 그의 복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프랑스 영화인의 선배격인 장 르누아르를 위시해 로베트 브레송, 카르네, 누벨바그의 기수였던 장 뤽 고다르, 프랑소와 트뤼포, 샤브롤, 로메로, 알랭 레네 등은 물론이고, 철학자이자 언어학자인 롤랑 바르트까지 가세했다. 장 폴 벨몽도, 장 피에르 레오 등의 배두들도 적극 참여했다. 시위에 참가한 인원만도 수천 명에 이르며, 찰리 채플린, 피카소, 구로사와 아키라, 잉마르 베리만, 니콜라스 레이, 로베르토 로셀리니, 알프레드 히치콕 등 해외 영화감독과 예술가들의 복직 요구 탄원도 줄을 이었다. 이 때문에 이 사건이 당시 세계적인 이슈로 떠올랐으며, 시위와 복직 요구가 계속 되자 정부는 다른 내정자와 함께 시네마테크를 공동 운영할 것을 제안하지만 랑글루아는 거절한다. 영화계 단체들까지 랑글루아의 이런 태도를 지지하고, 급기야 프랑스 정부는 그해 4월 21일 시네마테크의 독립 운영권을 인정하고, 다음날인 22일 랑글루아를 복직시키게 된다. 해임 70여 일 만에 랑글루아는 제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이 사건은 파리 근교 낭테르 대학 사건과 함께 프랑스 68년 5월 혁명의 기원 중 하나로 손꼽고 있으며, 더불어 당시 5월 혁명이 지닌 문화 혁명적 요소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랑글루아’ 사건은 해결됐지만 이 사건 이후 프랑스는 1789년 이후 역대 최고의 혁명적 상황을 맞게 되며, 5월 11일 ‘바리케이드의 밤’에는 파리꼬뮌 이후 최고의 바리케이드가 파리에서 등장했으며, 천만 명에 이르는 노동자가 파업에 나섰고, 소르본느 대학(현재 파리 대학 문학부)은 자유대학이라는 이름 아래 기존 교육부 관리를 거부하고 학생과 노동자들의 점거 하에 자율 관리에 들어가는 등 프랑스 전역을 뜨겁게 달궜으며, 유럽 내에서도 가장 권위적인 국가이자 장시간 노동을 했던 프랑스를 가장 탈권위적인 나라로, 가장 노동시간이 짧은 나라로, 이민자들이 가장 쉽게 정책할 수 있는 나라로 전환했다. 특히 프랑스 공산당과 같은 관료화된 기존 좌파 세력에 대한 거부를 통해 사회당을 탄생시키고, 1981년 사회당이 집권하는 근원이 이 6월 혁명이었다.

Ⅲ 영화 서사 분절(전개)

- 시퀸스, 씬(S#)별 정리.

시퀸스 1 : 매슈와 그들의 만남. (31초-12분)

테오와 이사벨을 만나기 전까지 매슈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이 계속 됨.

S#1 평온한 파리 거리를 걷는 매슈

지미 헨드릭스 기타연주곡 ‘third stone from the sun'이 배경음으로 깔림.

S#2 (파리)시네마테크 프랑세즈

S#3 시위하는 파리 거리(과거 영상 기록물도)

->

S#4 폐쇄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낮)

S#5 파리 거리(밤) -> 경찰에게 쫓겨 거리를 헤맨다. (insert 장 뤽 고다르 <네 멋대로 해라>의 샹젤리에 거리에서 진 세버그가 ‘뉴욕 헤럴드 트리뷴’ 외치며 시눔을 파는 장면) -> 파리에서 태어났느냐는 매슈의 질문에 이사벨이 "내가 샹젤리제 거리에 들어온 것은 1959년(<네 멋대로 해라> 개봉년)이야”라며 이 장면을 따라함. 대단한 영화광 혹은 키드임을 암시.

s#6 비오는 파리 거리

S#7 매슈가 머무는 허름한 호텔(말브랑슈 학생호텔. 별 2개),

-> 어머니에 편지를 쓰는 매슈, 자위하는 매슈

시퀸스2 : 매슈, 테오와의 집에서 저녁식사

S#1 매슈의 호텔, 테오의 집(테오의 전화 받는 매슈)

S#2 테오의 집(엘리베이터)

S#3 테오의 집(식탁 앞)

: 테오 아버지와의 대화. 베트남전 반대 서명을 하지 않은 아버지와의 말다툼. 테오의 아버지가 유명 시인임을 알 수 있음. 부모들의 여행 앞 날.

'신이 없다는 사실이 부모들이 신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아’

(테오의 대사)

S#4 테오의 옆방(잠에서 깨는 매슈), 화장실, 테오의 방

-> 벌거벗은 채로 한 침대서 자는 두 남매.

S#5 여행의 떠나는 부모

한 달 동안 트뤼빌로 여행.

S#6 테오의 집(테오 옆방)

-> 영화 수수께끼를 시작하는 이사벨. <퀸 크리스티나> 대사를 하고 매슈가 따라 하고.

시퀸스 3

S#1 매슈 호텔에서 짐을 옮기는 장면(거리)

S#2 다시 테오 집

테오와 매슈의 찰리 채플린과 버스트 키튼의 우수함을 따지는 논쟁.

<탑 햇>의 음악에서 영화 맞춰. <밴드 오브 아웃사이더>(장 뤽 고다르 감독, 1964)에 나오는 루브르 박물관을 달리는 한 여자와 두 남자 장면을 재연하자는 테오와 이사벨 남매. 9분 45초 기록 깨기 제안.

S#3 루브르 박물관

<band of 아웃사이더> 다시 인용: '우리는 그를 받아들인다 우리 일원으로'(고전 <삼총사>에 나오는 대사 인용을 재인용)

S#4 테오의 집(거실)

“부모는 모두 체포해야해”라며 부모 세대에 반기를 드는 테오.

S#5 테오의 방

영화 <금발의 비너스>의 코러스를 흉내 내고, 테오가 틀리자 벌칙으로 자위를 시키는 이사벨. 자매의 액을 만지는 이들.

S#3 카페(테오와 매슈)

테오, 이사벨과의 관계를 얘기. 일란성 쌍둥이(대사에선 샴 쌍둥이라고 함).

S#4 테오의 방

이사벨의 사진을 성기에 붙이는 매슈. 다시 영화 수수께끼. 테오의 수수께끼에 맞추지 못하는 매슈와 이사벨.

거(객)실, 드라크루와 작품 앞에서 두 사람이 섹스하라는 테오.

S#5 거실(살롱)

이사벨의 사진을 성기에 붙인 게 들킨 매슈.

. 이사벨과의 매슈의 섹스. -> 처녀성을 상징하는 피가 나옴.

둘 사이가 더 뜨거워짐.

S#6 매슈가 묵는 방

이사벨과 매슈 두 사람의 섹스. 대사에서 어제는 아빠 서재에서 섹스를 나눈 사실을 알게 됨.

시퀸스 4

(insert cut)테오의 집 밖 tilt up

S#1 매슈가 묵는 방

테오와 이사벨과의 근친애에 대한 매슈의 물음. 이사벨과 매슈, 테오와의 묘한 균열

예감. 테오 "우리 분명히 해두자 알았어? 넌 괜찬은 애야. 널 좋아해. 하지만 우리

셋은 운명적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야. 이사벨과 나는 샴쌍둥이야. 농담이 아니었어"

-> 매슈에 대한 테오의 경쟁어린 눈.

S#2 테오의 집(식탁)

음식을 망친 이사벨. 먹을 게 떨어진 테오의 집. 쓰레기통에서 주운 바나나를 나눠먹고.

S#3 대학(소르본느인 듯)

다시 밖으로 나온 테오. 시위에 나오지 않는 테오를 질책하는 대학 친구.

S#4 테오의 집(욕조. 다시 갇힌 공간)

에릭 클랩튼과 지미 헨드릭스의 기타 혁명에 대한 테오와 매슈의 논쟁. 베트남전에 대한 이야기. 서로의 차이를 드러냄. <카이에 시네마>에 나온 영화에 대한 얘기. 세 사람이 함께 욕실에 있는 장면. 테오 왼쪽 팔과 이사벨 오른쪽에 있는 팔에 있는 상처가 같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샴 쌍둥이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지미 헨드릭스의 <hey joe>가 울려퍼지고, 대마에 취한 세 사람.

사랑에 대한 얘기. '우리도 사랑해'가 아닌 '사랑해'를 듣고 싶은 매슈.

두 사람, 매슈의 성기 옆 털을 깎으려하고 반발하는 매슈. 이사벨에게 둘만의 데이트를 청하는 매슈.

S#5 카페

매슈와 이사벨 둘 만의 첫 데이트. 함께 냉커피를 마시는 장면.

S#6 영화관

영화를 보며 키스하는 두 사람.

S#7 거리

전자상점 앞에서 TV를 본다. 프랑스 파리 68혁명 상황이 나오고. 테오의 당시 프랑스 파리 68년 혁명 상황에 대해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이 나온다. 첫 도입부 이후 테오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은 처음이다.

이사벨 “테오와 나는 TV를 안봐. 우린 순진하고 냉담해”

거리에 쌓인 바리케이트. 5월 10일 '바리케이트의 밤' 상징. 68년 5월 혁명이 절정으로 치닫는 것을 암시.

S#8 테오의 집

테오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아는 이사벨. 자신의 방에서 섹스를 나누길 거부하는 이사벨 "누구도 내 방에서 사랑을 나눌 순 없어". 결국 허락한다.

S#9 이사벨의 방

재즈가 나오다가 샹송으로. 우는 이사벨. 여자와 테오의 소리가 들리자 매슈에게 '꺼져'라면서 테오의 방을 격렬히 두드리며 테오를 부르는 이사벨. 말리는 매슈도 떠민다. 테오가 다른 여성과 함께 있는 것을 거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시퀸스 5

S#1 테오의 방, 매슈의 방 앞, 이사벨의 방

마오이즘에 대한 책을 읽는 테오. 술을 마시며 팔굽혀 펴기를 하는 매슈, 담배를 피며 고민에 잠긴 이사벨.

S#2 포도주 창고

포도주를 꺼내오는 테오. 다소 오래된 고급 포도주임을 알 수 있다.

S#3 테오의 방

마오이즘을 중심으로 한 테오의 혁명을 영화와 비유. 매슈와 혁명에 관해 얘기. '함께'라는 단어. 단 둘을 의미할 때

S#4 거실(텐트가 만들어진)

이사벨, 테오에게 불어로 <사랑해(Je t'aime,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고, 테오는 <나도 사랑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사벨은 우리 둘이 '영원히 사랑하자'라고 말하지만 대답을 아침으로 미루는 테오.

S#5 부엌, 거실(텐트가 만들어진) 아침

테오와 이사벨의 부모가 잠시 오고 술에 취해 벌거벗은 채 혼숙하는 세 사람을 본다.

분노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표만 주고 다시 나가는 두 사람. 아무 말도 못하고 "발소리 안 나가 나가야해요 여보"라는 테오 어머니. 이 세대 10대 말 20대 초반들이 부모 세대의 통제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주는 장면. 차를 몰고 떠나는 두 사람.

-> 지미 헨드릭스 기타연주곡 ‘third stone from the sun'이 다시 나옴. 혼란스런 부모의 심리상황과 혼돈 속 사회를 동시에 그리려는 듯.

S#6 다시 거실

아침에 일어나 부모가 남긴 수표를 본 이사벨. 가스 밸브를 열어, 자살(혹은 테오, 매

튜와 함께 죽으려는)을 시도하려는 이사벨. 그 상황 속에서도 이사벨은 영화를 그린다.

영화는 삶에서 죽음까지 관통하는 이사벨의 전부인 양. 자살 시도 중에 거리에서 창문

을 깨며 돌이 날라든다. 가스 냄새를 최루가스 냄새라고 말을 돌리는 이사벨.

S#7 파리 거리

par la rue(거리로)라는 구호로 68혁명이 절정임을 알 수 있음. 테오와 이사벨 'par la rue'를 외침. 매슈를 뿌리치고, 시위 대열에 동참하는 두 사람.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투쟁은 계속된다!'를 외치는 이들. 시위를 진압하려 나오는 경찰들.

-> 에디뜨 피아프의 샹송 <Non Je ne regrette rien(아니요, 나는 후회하지 않아요)>가 나오고. 엔딩 크레티트이 나오는 중 거리는 흑백으로 변한다.

Ⅳ <몽상가들>에 나온 매슈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

- 영화 서술적 특징과 초점화, 공간의 문제

매슈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은 영화 전체에서 두 차례 나온다. 첫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은 시퀸스 1 내내 영화 시작 약 10분 동안 계속 된다. 두 번째 보이스오버 내레이션도 간결하지만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세 번째 보이스오버는 이사벨 방에 관한 감상이 주를 이룬다. 또한 매슈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의 영화의 시간성과 영화 전체의 초점화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 우선 매슈의 세 차례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을 살펴보자.

*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 1 => (시퀸스 1 내내 계속 됨)

처음으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영화를 봤을 때...

나는 프랑스인들만이 궁전 안에 영화관을 들여놓는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샘 풀러의 <충격의 복도>였다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영화가 최면술에 걸린 거 같았다

난 20살이었고, 60년대 말이었다

난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 일년간 파리에 오게 되었다

여기서 진정한 교육을 받았다

난 일종의 프리메이슨리 같은 집단의 일원이 되었다

영화팬들로 이뤄진 프리메이슨리

우리는 그 집단을 '영화광'이라고 불렀다

난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 항상 스크린 가장 가까이에 앉아 있었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

왜 우리는 그렇게 가까이 앉는가?

아마도 그 이유는 맨 처음으로 이미지를 접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미지가 여전히 새롭고, 여전히 신선할 때, 우리 뒷줄의 허들을 뛰어넘기 전에

이미지는 좌석 줄에서 줄로, 관객에서 관객으로 전해져,

마침내, 닳아빠진, 낡은, 우표 크기의 이미지가 되어, 영사실로 돌아갔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영화가 계속 되고)

아마도, 스크린은 또한 실제로 장벽이었다

스크린은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차단했다

그러나 어느 날 저녁, 1968년 봄, 세상은 마침내 스크린을 뚫고 뛰어들었다

(시네마테크에서 나와 다시 시네마테크로 가면서 랑글루아 시위대를 지나간다)

앙리 랑글루아는 시네마테크를 설립했다

왜냐하면 그는 영화를 지하 곳간에서 썩게 만드는 대신에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어떤 영화든지 보여줬다, 좋은, 나쁜, 오래된, 최근의...무성 영화, 서부 영화, 스릴러

모든 뉴 웨이브 영화제작자들이 이곳으로 와서 기술을 배웠다

여기가 현대 영화가 태어났던 곳이다

랑글루아는 정부에 의해 파면되었다

파리의 모든 영화광은 밖으로 나와 항의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문화혁명이었다

(이사벨과 테오와의 첫 만남)

(파리 거리를 걸으며)

그렇게 테오와 이사벨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냥 경찰에 쫓겨서 그런 건지,

아니면 벌써 새로운 친구들과

사랑하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걸으면서 얘기했다, 정치에 관해, 영화에 관해,

그리고 왜 프랑스인은 지금껏 괜찮은 록밴드 하나 만들 수 없었는지...

나는 그 날 밤이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 2 (시퀸스 4 S#7 TV 화면을 보면서)

TV 화면을 봤을 때, 시네마테크 투쟁이 기억났다

그맘때를 제외하고, 시위자들은 영화광들이 아니었다

더 이상 학생들도 아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게는 문을 닫았고, 공장은 파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파리 전체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 보이스오버 내레이션 3

전에 본적이 없었던 이사벨의 일면을 발견했다

내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비밀스런 부분을

문득 샌디에이고에 있는

누나들의 침실이 생각났다

우리 집과 모두 비슷비슷한

이웃의 집들, 푸른 잔디와 스프링클러,

문밖에 주차한 스테이션 왜건이 생각났다

1. 보이스오버 내레이션과 초점화

시퀸스 1 내내 이어지는 매슈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은 때로는 영화 속 대사와도 때로는 매슈의 보이스 인(처음 이사벨과 얘기하는 장면)과 인접해 이어진다. 하지만 시퀸스 1에서 영화 전반을 해설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이 과거형으로 이뤄진다. 이를 통해 매슈의 보이스 인과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은 서로 다른 시간적 차이-보이스 인은 68년 상황에서,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은 불특정하지만 영화가 서술되는 시간보다는 미래-를 드러낸다. 이 점에서 영화 내내 단 한번도 플래시 백이 나타나지 않지만 영화 전체가 매슈의 시점에 의한 거대한 시청각적 플래시 백임을 관객들에게 인지하도록 한다.

초점화라는 부분에서 이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은 토도로프의 등식과 부등식 체계에 적용한다면 이 영화는 [서술자 = 인물]임을 나타낸다.

또한 제라르 주네트의 초점화(focalisation)라는 용어로 살펴보면 <몽상가들>은 매슈의 과거 회상적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을 통해 표면적으로 고정된 내적 초점화(서술이 사건들을 알려줄 때, 이 사건들이 마치 하나의 인물의 의식에 의해 여과된 것처럼 보이는 경우)임을 관객들이 인지하도록 한다. 영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두 음악이 아니라면 관객들은 확실히 그렇게 느낄 수 있으며, 전체 서술의 초점화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지금껏 매슈라는 서술자가 들려주는 얘기라는 환상을 교묘하게 깬다. 매슈가 거리로 나온 이사벨과 테오에게 비폭력을 요구하며 시위대에 합류하지 말 것을 얘기하며 언쟁하고, 이를 뿌리치고 두 사람이 시위대와 함께하는 장면, 경찰과 대치 중이던 시위대를 강제해산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 ‘아니요, 난 후회하지 않아요’가 흘러나온다. 또한 에펠탑에서 시작되는 아름다운 파리의 거리를 매슈가 걸을 때 지미 헨드릭스의 ‘Third ston from the sun'이라는 노래가 나온다. 두 노래는 마지막 엔딩 크래디트이 스크린을 넘나들 때 서로 합쳐지기도 한다. 이 노래와 영상을 보면서 지금껏 매슈의 회상으로 서술된 얘기를 보고 듣고 있다는 생각한 관객은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영상주에 의해 서술되고 있었다’라는 점을 알게 된다. 이 부분은 <몽상가들>의 서술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2. 보이스오버 내레이션과 플래시 백

매슈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은 서술자에 대한 정보만이 아니라 영화의 시간성과도 함께 한다. 이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이 아니라면 영화 전체는 일반적인 연대기적 서사방식으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매슈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을 통해 스토리의 순서와 담화의 순서가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영화는 비연대기적 서사방식을 띠게 된다. 제라르 쥬네트가 사용한 용어로 영화가 서술자 매슈에 의해 ‘소급제시’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매슈가 언제, 어디서 이 이야기를 ‘소급제시’하는지는 불특정하다. 또한 이 영화는 매슈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을 통해 그 시기(68년 5월 혁명 직전과 그 당시)보다 미래인 불특정 시간대(일차 서사의 출발점)에서 그 이전의 과거를 환기하는 방식이어서 ‘외적 소급제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영화가 매슈가 68년 5월 혁명을 겪은 뒤 불특정 시간대에서 과거로 회상한 이야기라고 할 때 일차서사의 출발점인 이 불특정 시간대가 통째로 생략됐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에 의해 또 다른 강력한 영상주가 있었음을 느끼는 순간 앞선 영화의 시간성에 대한 논의는 보다 정밀해져야할 것이지만 이 글에서는 여기까지 한정한다.

영화의 시간성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한다면 이 영화는 이런 서사적 특징에 의해 스토리 시간은 68년 앙리 랑글루아 복원 시위가 벌여지기 시작한 그 시작부터 68년 혁명이 본격화(시퀸스 4 S#7에서 매슈와 이사벨이 본 거리에 쌓인 바리케이드를 통해 5월 10일 '바리케이드의 밤'을 상징)되는 시점까지를 1차 스토리 시간으로, 매슈의 보이스오버를 통해서는 68년 앙리 랑글루아 복원 시위부터 그의 회상이 시작되는 불특정 시간(일차 서사의 출발점)까지로 제법 긴 스토리 시간을 갖고 있다. 만약 영상주를 감독과 일치시킨다면 2차 스토리 시간은 68년 2월 무렵부터 현재(정확히는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까지로 볼 수 있다.

3. 보이스 오버 간 층위와 역할의 차이

보이스 오버 1과 보이스 오버 2는 공통적인 역할이 하나 있다. <몽상가들>의 캐릭터들이 주로 지내는 공간인 테오·이사벨의 방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 바깥세상, 즉 68년 혁명-영화인들의 앙리 랑글루아 복원 투쟁에서 시작해 5월 10일 바리케이트의 밤까지-이 진행되는 정보를 전달한다. 물론 보이스 오버 1은 또 다른 층위로 매슈가 어떻게 파리로 오게 됐는데, 그가 어떤 인물인지, 당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영화인들에게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테오와 이사벨과 만났을 때의 느낌 등을 담고 있다. 하지만 보이스 오버 3은 유일하게 매슈가 이사벨의 방에 처음 들어갔을 때 느낌만을 전달하고 있다. 즉 보이스 오버 1과 보이스 오버 2와 비교해 보이스 오버 3은 전달하는 정보의 층위와 역할이 확연히 다르다.

Ⅴ <몽상가들>에 나타난 삽입 영화와 음악

-영화 속 영화 인용과 인물과의 관계, 음악(음향)의 역할

1. 시네필의 전성시대 60년대, 베르톨루치의 영화에 관한 오마주

<몽상가들>에서 영화는 세 등장인물의 삶과 등치된다. 세 사람은 쉴 새 없이 영화에 대해 묻고 답한다. 한 편의 영화는 베르톨루치의 60년대 이전 영화에 관한 오마주인 끝없이 인용된다.

이사벨은 <네 멋대로 해라>에서 진 세버그가 샹젤리제 거리를 걸어가며 ‘뉴욕 헤럴드 트리뷴!’를 외치는 장면을 재연하며, 버스터 키튼과 찰리 채플린 중 누가 더 위대한가, 고다르의 <이방인들> 주인공들이 루브르 박물관을 가로지르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자신들이 더 빨리 뛸 수 있을까를 시험하기도 한다.

또한 영화사의 걸작들의 인용은 이 시대 영화광들의 게임을 통해 계속된다. 하워드 혹스의 <스카페이스>(1932), 토드 브라우닝의 <프릭스>(1932), 찰리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1931)가 지나가고, <퀸 크리스티나>(1933)의 그레타 가르보와 <금발의 비너스>(1931)의 마를렌 디트리히(심지어 영화 수수께끼를 못 맞춘 테오는 벌로 마를렌 디트리히의 사진 앞에서 자위행위를 한다), <톱 햇>(1935)에서 춤추는 프레드 애스테어와 진저 로저스가 화면에 가득 찬다. 더욱이 이사벨이 가스관을 거실 텐트로 가져와 자살시도를 할 때도 로베트 브레송 감독의 영화 <무쉐트>(1967년)에서 무쉐트(나딘 노르티에 분)가 연못에서 자살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등장인물들은 취향과 세계관(프랑스 좌파적 성향의 청년 테오와 베트남전을 피해와 미국중산층을 대표하는 매슈)의 차이로 인해 갈등을 빚지만 영화라는 단일한 세계 앞에서 화해하기도 한다.

또한 영화 도입부에서 매슈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로 향할 때 왼쪽에서 장 피에르 칼폰이 선전물을 읽으며 앙리 랑글루아 복직 투쟁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고, 오른편에는 장 피에르 레오(누벨바그의 신호탄이었던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에서 소년 역을 맡음)가 열정적으로 연설하는 길제 기록 화면이 허구적 장면과 교차된다. 영화 자체의 인용은 당시 기록물까지로 확대된다.

이를 통해 감독은 1960년대 이전 영화들의 대한 무한한 애정과 당시 68혁명의 성격이 다분히 문화 혁명적 성격이 있음을 얘기한다.

또한 이들 영화들은 <무쉐트>의 장면처럼 이들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전달하는 또 다른 서사정보로도 활용된다.

2. 혼돈과 저항, 반전의 시대를 되뇌는 <몽상가들> 속 음악

이 영화는 고전영화의 OST에서 시작해 1960년대 미국을 풍미하던 ‘싸이키델릭’ 사운드를 비롯, 지미 헨드릭스를 비롯한 록 뮤직, ‘La Mer' 같은 고전 샹송, 현대 샹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노래가 25곡 인용, 삽입돼 있다. 어떤 음악은 인용된 영화와 함께, 어떤 음악-예를 들면 지미 헨드릭스와 더 도어스의 음악 등-들은 영화의 배경시간을 1960년대 말임을 상기시켜주는 지표 역할을 한다.

영화 속에 담긴 삽입곡들

1) Third Stone From the Sun-Jimi Hendrix

이 영화의 메인테마곡처럼 사용된다. 에펠탑이 나오며 파리 거리를 걸으며 흘러나오며 영화의 주된 시대배경을 고정시키기도 하고, 이 곡처럼 영화가 사이키델릭한 혼돈과 혼란의 시간을 그릴 것임을 암시한다. 또한 세 명의 젊은 남녀가 알몸으로 자고 있는 장면(시퀸스 5 S#5)을 목격한 테오와 이사벨 부모가 수표만 남겨둔 채 집을 빠져나가는 장면에는 혼란스런 부모의 심리상황과 혼돈 속 사회를 동시에 묘사하는 탁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에뒤트 피아프의 샹송 <아니요, 난 후회하지 않아요>와 겹치면서 다시 묘한 여운을 남긴다.

2) <충격의 복도>(Shock Corridor. 1963년)에서 Sam Pulller's Theme

3) 프랑소와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1959년)에서 Quatre Cents Coups

4) 장 뤽 고다르 <네 멋대로 해라>(1959년)에서 뉴욕 헤럴드 트리뷴

장 세베르그가 샹젤리제 거리에서 신문을 파는 장면이 이사벨이 재연하며 잠시 등장

5) BAll and Chain / Big Brother & The Holding Company

6) I Need A Man to love / Big Brother & The Holding Company

7) <퀸 크리스티나>(1933년)에서 Night in the thone room

잠에서 깬 매슈에게 영화 수수께끼를 이사벨이 내는 장면에서 등장.

8) Love Me Please Love Me / Michel Polnareff

카페에서 셋이 대화를 나눌 때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9) Blondie Venus / Hot voodoo

10) Let's Face the music And dance / Roy Fox and his band

11) Queen Jane Approximately / Bob Dylan

12) <탑 햇>(1935년) 중 No Strings(I'm Fancy Free)

13) Hey Joe / Jimi Hendrix

: 지미 헨드릭스의 인기곡 중 하나로, 매슈 역의 주인공 마이클 피트가 새로 녹음했다. 셋이 한 욕조에서 목욕하는 장면(시퀸스 4 S#4)에서 나온다. 테오와 매슈가 에릭 클립톤과 지미 헨드릭스에 대해 논쟁하고, 다시 베트남전 참전에 대해 논쟁한 뒤 흘러나와 분위기를 더욱 높아간다.

14) El Paso del ebro / Chour at orchestra

15) Maggie M'fill / The doors

16) Combiantion of the two / Big Brother & The Holding Company

17) C'est Ireperable / Nino Ferrer

18) La Mer / Charles Trenet

-> 테오가 낸 영화 수수께끼를 못 맞춘 이사벨이 스트립쇼를 하듯 옷을 하나하나 벗으며 완전 나체를 매슈에게 처음 보여줄 때, 테오가 다른 여성과 정사를 나누는 것을 못 견뎌하는 이사벨이 자기 방에서 울부짖을 때 The Spy가 끝나고, 이 샹송이 들려온다. (시퀸스 4 S#4)

19) The Spy / The doors

자기 방에서 절대 섹스를 하지 않으려는 이사벨이 결국 허락한 뒤 매슈가 처음 이사벨 방에 들어갔을 때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이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 뒤 이사벨의 울부짖음과 함께 급히 La Mer로 전환된다.

20) Dark STar / the Graceful Dead

21) Tous Les Garcons et Les Filles / Francoise Hardy

다른 남자와는 데이트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이사벨을 설득하고, 처음 둘 만이 카페에서 만났을 때 이 현대적 감각의 샹송이 들린다.

22) Non Je ne regrette rien - edith Piaf(에디뜨 피아프)

끝 장면, 거리 시위에 흘러나오면서 영화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영상주이자 감독의 68혁명에 대한 가치를 부여한다. 영화 속에서 영상주의 메시지가 가장 직접적인 장면이면서 이 노래가 그 의미를 전달한다.

23) <The Girl Can't help it>(못 말리는 여자, 1956년)에서 You'll never never know

이사벨과 매슈가 데이트를 하며 영화관에 갔을 때, 이 영화가 상영된다. 흑인 그훕 플래터스가 부르는 이곡이 스크린에서 들린다.

24) Song for Our Ancestors / Steve Miller Band

25) <미치광이 삐에로>(1965년)에서 Ferdinand

맺음말 <몽상가들>의 모호한 열린 구조

-젊음, 섹스, 혼돈, 혁명 사이에서 흔들리는 베르톨루치

Ⅳ장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영화는 매슈라는 인물을 통한 한 편의 거대한 플래시 백이라는 인식이 작품 마지막 영상주의 강력한 개입을 통해 깨진다. 이를 통해 디제시스 시간은 68년 봄부터 현재(정확히 영화가 제작된 시기)로까지 확장된다. 이는 영상주가 실제 감독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인식시켜주는 것이다. 즉 감독의 직접적인 이 시기 기억들이 작품에 상당히 개입돼 있다는 점을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고전영화부터 60년대 영화까지 영화사를 정리한 듯 빈번한 영화 속 영화인용은 베르톨루치가 그 시기 봤던, 그리고 그를 지탱해주던 영화에 대한 오마주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음악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럼 프랑스 사회를 근본에 가깝게, 비록 새로운 대안체제로의 전환은 아니더라도 프랑스를 68혁명 이전 사회와 이후 사회로 구분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변화시킨 68년 프랑스 5월 혁명에 대해 “68년 혁명 세대의 쓸쓸한 패배주의를 담았다면 <몽상가들>은 다른 비전을 보여주고 싶었다”던 감독의 얘기는 적절히 배어있을까? 결론적으로는 모호하다고 할 수 있다. 감독은 마지막 장면에서 에디뜨 피아프의 <아니요, 난 후회하지 않아요>라는 샹송과 지미 헨드릭스 곡을 섞으며 그 시기에 대한 평가와 캐릭터들의 이후에 대해서는 관객 몫으로 맡긴다. 열린 구조이되 68세대의 젊음에 대한 찬사인지, 섹스와 혁명은 잘 조화된 이중주처럼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인지, 아님 혼돈 그 자체만을 얘기하고 싶었는지 모호해진다.

이는 원래 살펴보려했던 공간 설정의 문제에서도 그렇다. 이 영화는 크게 테오와 이사벨이 중심이 되고, 매슈가 끼어든 테오와 이사벨 둘만의 공간과 바깥 공간으로 이원화돼 있다. 섹스와 독특한 문화적 취향을 통해 금기를 깨되 외적 확장은 어려운 둘만의 공간, 68년 프랑스 5월 혁명이라는 사회의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는 외부 공간과의 접촉은 베르톨루치의 말처럼 적절해보이지 않는다. 두 공간에 대한 적절한 배분이 이뤄지지 않았고, 두 공간이 서로 개입하는 방식과 빈도가 낯설 정도로 적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영화의 시간성에서 빈도의 문제와도 연결되지만 아직 제대로 된 분석을 하지 못해 더욱 아쉽다.

다소 생뚱맞은 얘기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로 시작해 연일 촛불 집회가 이뤄지고 있는 지금, 사적 욕망과 분출되는 사회적 변화 욕구가 어떻게 배분되고 다뤄져야할 지 이 영화가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아 보인다.

Posted by 늘 축제였음..
프랑스 감독 알랭 레네의 흑백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요즘 제 머리 상태가 그러네요.
Posted by 늘 축제였음..

대학원 수업을 듣느라고, 대학교란 곳을 같습니다. 약 4년 만에 대학축제라는 것을 봤습니다. 제가 학부를 나온 곳을 가면 웬지 을씨년스러웠거든요. 대학을 다닐 때 밥집, 술집이란 것을 경멸했습니다. 물론 저는 3학년부터 과 선배에게 욕 먹더라도 아예 밥집.술집 안 지켰습니다. 연대를 위한 가치생산-가령 어려운 학우를 돕기 위한 기금마련이나 구속자를 위한 변호사비나 사식비 마련이 첫 출발이었잖습니까-도 아니고, 그렇다고 학술이나 흥겨운 축제의 시공이 열리는 것도 아니고, 3일 동안 과 선배 눈치보며 밥집. 술집에 짱박혀 있다가 밥되면 그것 판 돈으로 술마시고. 참 황당했었거든요, 졸업 직전에는. 관성 그 자체가 가치가 되어 이어지는 판 같았습니다. 그 외는 제가 나온 대학 홍보실에서 그 학교 출신 기자들을 모으는 자리.
  명색이 그래도 개혁언론 타이틀을 타고 기자질 하는 놈이 그것도 못 하겠더라고요. 그리고 주로 활동했던 동아리도 제가 취직하고 약 1년 만에 문닫고. 그러다보니 갈 곳도 마땅찮아 잘 가지지 않더군요.

그래서일까, 간만에 본 대학축제 분위기가 새삼 신선하더군요.

 그 중 한 무리 학생들이 모여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이명박 대통령을 욕하는 부스가 눈에 띄더군요. 킥 펀치(이 명칭이 맞나? 그냥 펀치로만 아는데, 암튼 발로 차는 거요) 기기 있잖습니까? 거기에 갓 2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가 이명박 대통령의 코를 잡고 있는 사진을 거기에 붙여놓았더군요.

  거기에 쓴 문구 "2mb 아저씨, 숨쉴 자격이나 있나요"

  간만에 키치적인 대딩들을 보니 흥겨웠음다. "축제는 일탈이다"
  그 명제와 어쩜 딱 맞는 풍경이지 않을지....

Posted by 늘 축제였음..

2000년 초 공부랍시고 할 거라고 서울에 머물 때였음다. 3월말 정도 된 것 같은데, 경희대 정문에서 가까운 관광대학  독서실에서 나와 커피 한 잔 마시고, 담배 하나 피우다가 어떤 느낌이 들더군요. 중학생들이 하교하는 장면, 옆에서 공사하는 거센 소리, 새소리, 갓 잎사귀가 나온 나무들이 어우러지고, 곧 꽃망울을 터뜨리려는 벗꽃. 그 공간에서 소속되지 못하는 부유하는 생물같은 나.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서 글쩍였던 넋두리임다.

표상(representation)-  경희대 한 편에서  
 
  깃발이 날린다
  봄의 염장을 지른 그늘이
  사시나무의 흔들림을 몸으로 감염시킨다 그
  뿐이다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좌에서
  익숙해진 일상의 일상을 반복한다
  전복은 가슴에만 살아있는지 숨겼는지
  재잘거린다
  소리와 소리가 파찰음을 낸다 우에서
  참새-사라지는 반가움-가 담소를 나누고
  종합 강의동을 짓는 파괴적 창조가 운다
  소리친다 모든 소리를 흡수하려 한다

  한계가 봄을 때린다
  지칠 거야 지칠 거야
  한기가 촉수를 뻗는다
  말미잘이 독한 기를 내뿜는다

  택시가 언덕을 헐떡이며
  미끄러진다
  욕하지 마라
  사납금과 일당을 벌기 위해
  배회한다
  기사가 차를 위로한다

  봄이 산란한다
  한 무더기의 지친 이미지를
  지치도록 눈알에 쑤셔 넣는다
  새 천년 삼월의 막 날이다

Posted by 늘 축제였음..

2000년 말인가 정규1집 앨범 <노(怒)>에 <청년폭도맹진가>를 싣고 홀연히 나타나 조선 펑크록을 주창한 밴드 노브레인. 대중들에겐 영화 <라디오 스타>에 나오는 <넌 내게 반했어>로 잘 알려져 있죠.

이 친구들이 지난 9월 정규앨범 5집을 냈는데, 거기에 <come on come on 마산 스트리트여>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최근 마산 관련 노래가 거의 없는데, 참 '방가'하죠.

  저작권 문제 때문에 노래파일은 찾아들으시길. 이해해주시길.....

  이 밴드의 보컬 이성우가 마산 출신입니다. 글고 네이버 검색을 해보니까 마산청강고등학교(현 마산제일고등학교) 출신이고, 노래 가사를 들어보니까 마산 중앙동에 집이 있었다네요.

  노래가사에 마산앞 바닷물을 이른바 '똥물'이라고 하지 않고, 고향에 대한 애정을 담았는지 '콜라빛나는'이라고 한 게 잼 네요.

<come on come on 마산 스트리트여>

내가 태어난 그 곳 마산 스트리트
바닷바람 거친 항구의 도시
특별한 것도 정 갈만한 구석 없어도
난 그 곳을 사랑하네

콜라빛나는 바닷물이 흘러흐르고
아줌마의 구수한 마산 사투리
정든 그 곳을 등지고서 난 떠나왔네
꿈을 가득 안고서

흘러가는 한강의 강물이여
마산항으로 내마음 보내다오

Come on! Come on! 마산 스트리트여!
Come on! Come on! 나의 나의 친구여!
Come on! Come on! 마산 스트리트여!
뛰어올라라!


일가 친척 하나 없는 서울로 와서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나날
싸구려 낡은 나의 기타 함께라면
난 어디든 즐거웠지

몇년만에 찾아간 마산 스트리트
내가 거주하던 나의 집은
아버지의 눈물과 함께 날 떠나갔네
나의 추억과 함께

달려가는 서울행 열차여 워어어
흘러내린 내눈물 닦아주오

Come on! Come on! 마산 스트리트여!
Come on! Come on! 나의 나의 친구여!
Come on! Come on! 마산 스트리트여!
뛰어올라라!
뛰어올라라! Ah Ha!

흘러가는 한강의 강물이여 워어어
마산항으로 내마음 보내다오

Come on! Come on! 마산 스트리트여!
Come on! Come on! 나의 나의 친구여!
Come on! Come on! 마산 스트리트여!
뛰어올라라!
Come on! Come on! 마산 스트리트여!
Come on! Come on! 나의 나의 친구여!
Come on! Come on! 마산 스트리트여!
뛰어올라라!

Posted by 늘 축제였음..

2000년 이었죠.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을 보고 그냥 어설픈 제 느낌만을 옮겨본 넋두리임다. 90년대 학번은 대학을 가자마자 느껴야하는 80년대라는 신화적 공간, 얘기. 딱 그 느낌, 그런데도 아픈 거. 영화 <박하사탕>을 보고 조금은 울고, 조금은 아파하며 술 먹고 한 넋두리였음다. 1은 김영호를 보며, 2는 순임을 보며 내뱉은 지껄임.....

  박하사탕 1* -네게 분노해

  그렇게 내동댕이칠 게
  목숨
  인생 미안 정의내리진 않을게

  우리가
  만남이란 교차로를 지워버린다면
  그래
  너는 거기 난 여기에

  실룩거리지 좀 마
  네 입술의
  영롱함이 너무 안타까운 걸

  네 생의 모든 축조가 손이어야 하니?
  그러지는 마
  단지 조금, 아직은
  넌 살아야 했어

  제 맘대로 굴러먹은 이미지
  그 따위를 패대기쳐 삼킨 후엔 아픔은
  어디에도 제 이름을 발하지 않아
  빛 따위는 더더욱

  겨워
  그 놈 앞에 서면
  잊힌 신화 속에 자랑삼던 무식하나 믿고
  버둥거리던 독기도
  웬걸 소용없어
  무거운 걸
  그나마
  그 앞에서 우리는
  보편이야 한 땀의 위안이지


  말해봐 나지막하게라도
  누리고 싶었다고 조금은
  부끄럼이었다고

  지난
  회상이
  무게가
  때 이르게 식힐 순 없어 네 체온을
  연방 호흡 한 판 겨룰 틈 없이 오늘이
  독점한 오늘이란 말만으로
  우릴 피폐로 쑤셔 박을 순 없듯이

  외치지마 제발 그만둬
  네게 분노할거야 그럴 뿐이야
  그러려고
  그러려고......


    *  김영호에 대한 에필로그


  박하사탕 2*  - 산소호흡기 
 
    삐 - 이 - 익
   삐이익 삐익 삐익 삑
    삐  ∼

  결국은 호흡기도 지쳐 떠나버리네요
  내 미약한 숨소리를 뒤로 한 채

  한 번은 만나야 했겠죠
  이렇게 마냥
  한마디 말을 떨구어버린
  눈물로 대신하네요

  그럴 필요는 없어요
  이미 한 번은 죽었고
  당신은 그 죽음을 이제야 다시
  확인할 뿐이죠

  지난날은 회한어림이 아닌
  우린 허기진 아픔의 서사체 속에
  내동댕이쳐졌을 뿐이죠

  그랬죠
  당신은 나를 향해 두려움을
  내쏘았고
  전 두려움으로 한 번의 죽임을
  당한 거죠

  지쳐버린 당신의 손에서
  봄이 당신께 선사해준 그래서 감사한 듯
  젖어 내린 당신의 눈길을 보았어요

  시간마저 거슬러 오르는 이미지의 노림수를
  살며시 제쳐두면
  당신과 제겐 멈출 수 없는 건 시간이고
  지울 수 없는 건 흩뿌려버린 흔적들이겠죠

  그럴 필요는 없었어요
  당신은 이십 년 전 십구 년 전
  십삼 년 전에도
  지금도 당신이에요

  한번에 지쳐 흘린 당신의 生도
  제겐
  그것마저도 소중했어요

  그래요
  고개 잠근 눈물도 가벼운 반성도 소망스런 되돌림도
  섣부른 외침도 살아가는 지금을 위해
  잠시 미루어야겠죠
  삶은 아름답고 당신조차
  기억 잃은 아름다움의 작은 파편이었으니까요


  *  순임의 못다한 얘기

Posted by 늘 축제였음..

여기는

나만의 축제 2008/04/07 15:17
 '나만의 축제'는 예전에 글적거렸던 글들, 몇몇 사변적인 글들을 이 곳에 우선 옮기는 란으로 할까 합니다.

   그것부터하고 팩트전달자로서 기자가 아닌 몽상가 이시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