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 때 혹은 중2 때 지금은 사라진 마산지역의 민간도서관 '책사랑'에서 한 권의 책을 빌려 봤었죠. 누가 소개한 것도 아니었는데, 우연히 알게 된 이 '책사랑' 회원을 중1부터 고3까지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학을 마산이 아닌 창원에서 다니게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곳을 잊었죠.

생택쥐페리의 '어린 왕자'-문예출판사. 전성자 옮김. 제4판 5쇄 2010년 2월10일-


그때 읽은 책이 바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Le Petit Prince>였습니다. 너무 감동적으로 읽어 혼자서 눈물 찍 흘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와 함께 제 중학 시절을 감동으로 몰아갔던 그 책. 그래서 이 책을 '책사랑'에서 구매해 간직했었습니다.

물론 고등학교 때도 이 책을 종종 읽기도 했었죠. 감성이 메말라질 때면요.

대학교 3학년 때 제가 있었던(사실은 제가 후배들 모아 만들었음다) 인문대 문화비평 소모임 교재로도 활용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어떤 이들이 판단하기에는 피식 웃을지도 모르겠지만 ) 자본주의 사회인 당시 대한민국을 비판하는 텍스트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입대. 대학 시절 썼던 학과 캐비닛에 책을 고스란히 놓아둔 채 군대에 갔는데, 그 사이 학과에서 학기 초 캐비닛 정리를 하면서 대학 시절 읽었던 책 대부분을 잃어버리게 됐습니다. 그 중 한 권의 책이 제 손때 묻은 <어린 왕자>였습니다.

근 14년 만에 마산 영풍문고에서 이 책을 다시 샀습니다. 책을 구매했다는 표현보다는 14년 만에 잃어버린 책을 되찾았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의 기분이었습니다. 21장에 나오는 여우와 어린 왕자의 일화를 다시 읽고 싶었기 때문이죠.
이 책 가운데 그 둘의 일화에 가장 감동했었습니다. 특히 '길들여진다는 것.'에 대해.
(사실 이 표현도 이중피동으로 비문에 가깝다는. 길들여진다는 것 -> 길든다는 것)

어떤 감동이냐고요? 어릴 적 이 책을 읽지 않은 분들이 드물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냥 정리해보겠습니다.

"난 너와 함께 할 수 없어." 여우가 말했다. "나는 길들여져 있지 않으니까"

(중략)
(어린 왕자의 말)

"'길들인다'는 게 뭐지?"

(중략)
(여우의 말)

"그건 너무나 잊히고(본문에는 잊혀지고. 잊혀지고는 영어식 이중피동 어구라서 비문에 가깝습니다) 있는 거지. 그건 '관계를 만든다......"는 뜻이야." 여우가 말했습니다.

(중략)

(여우의 말)
"------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환히 밝아질 것이야. 다른 모든 발자국 소리와 구별되는 발자국 소리를 나는 알게 되겠지. 다른 발자국 소리들은 나를 땅 밑으로 기어들어가게 만들 테지만 너의 발자국 소리는 땅 밑 굴에서 나를 밖으로 불러 낼거야! --------------그런데 너는 금빛 머리칼을 가졌어. 그러니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정말 근사할 거야! 밀은 금빛이니까 나에게 너를 생각나게 할 거거든. 그럼 난 밀밭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 소리를 사랑하게 될 거야....."

(중략)

(여우의 말)
"사람들은 이제 아무것도 알 시간이 없어졌어. 그들은 상점에서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들을 사거든. 그런데 친구를 파는 상점은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는 거지. 친구를 가지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줘"

(중략)

다음날 다시 어린 왕자는 그리로 갔다.
"언제나 같은 시각에 오는 게 더 좋을 거야." 여우가 말했다.
"이를테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것이야. 시간이 갈수록 난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아무 때나 오면 몇 시에 마음을 곱게 단장해야 하는지 모르잖아. 의식이 필요하거든."

(중략)

여우가 말했다.
"내 비밀은 이런 거야. 그것은 아주 단순하지. 오로지 마음으로만 보아야 잘 보인다는 것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중략)
(여우의 말)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그 시간 때문이란다"

(중략)

"사람들은 그 진리를 잊어버렸어." 여우가 말했다. "하지만 넌 그걸 잊으면 안 돼.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지. 너는 네 장미꽃에 책임이 있어....."
..............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 왕자는 되뇌었다.


그리고는 고 1때 혼자 이 책, 특히 이 21장을 생각하면서 넋두리 한 편을 긁적여본 적도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 시화전에 넋두리  수준의 시를 출품했는데, 그때 몹시 부끄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이 책은 제 초기 청소년기 감수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줬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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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4일) 저녁 함안보 타워크레인 점거농성 현장을 찾아갔습니다. 저도 회원으로 있는 부산.경남 아고라 분들과 모처럼 함께 가 봤습니다. 아이를 포함해 경남아고라에서 10명, 부산아고라에서 10여 명이 왔고, 밀양촛불모임, 대구환경운동연합 상근자와 회원들, 옛 마산지역 에 기반한 시민단체인 열린사회 희망연대 회원 등이 이날 저녁 함안보에 모였습니다.

2006년 GM대우 창원공장 비정규직 굴뚝 농성 기억이...
사회면 편집 기자로, 함안보 관련 기사가 제가 짜는 면으로 많이 배치돼 고공농성 현장을 보고 싶거든요. 또, 2006년 GM대우 창원공장 비정규직 굴뚝 장기 농성을 취재하기도 해 그 기억이 저를 현장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더군요.

 
현장에 가니 민중의 소리 구자환 기자와 저희 신문사(경남도민일보) 이동욱 기자 2명이 열심히 현장을 취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취재는 방문객 반응을 살펴보거나 이들의 얘기를 전하는 것 외는 일체 할 수 없겠더군요. 굳게 닫힌 정문, 크레인 점거에 들어간 환경운동 활동가 2명의 꺼져버린 휴대전화는 그 이상의 취재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현장 취재는 딱 거기까지 겠구나 싶더라고요.

맞은편 타워트레인에 있는 점거 농성자 2명에게 힘내라고 외치는 촛불문화제 참가들. /경남도민일보 김구연 기자



외침 "최수영 이환문 우리가 있다"
오후 7시 30분이 가까워지자 모인 컨테이너 농성장에 모인 이들은 전망대로 촛불을 들고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전망대 옆 잔디밭에서 촛불을 든 이들은 "최수영 이환문 우리가 있다!" "이환문 최수영 우리가 함께한다!"를 줄곧 외치고, 몇몇 사람의 고공농성 지지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가끔 크레인에서는 불빛으로 그들의 안전과 투쟁의지를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24일 타워크레인 고공농성장을 향한 촛불들. 휴대전화 사진으로 찍어 사진 좀 허접하네요.


하늘의 저주일까? 새까맣게 몰려든 구름

'아침이슬'을 함께 부르고 촛불문화제를 끝내려 하자 까마귀떼가 하늘을 뒤덮은 듯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새까만 구름(CMYK 감산혼합으로 친다면 K값이 거의 90% 정도)이 몰려왔습니다. 그리곤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장대같은 비가 내렸습니다.
드라큘라의 고향이라는 루마니아 한 고성이 옮겨온 듯한 느낌, 혹은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의 싸움을 다룬 영화 <언더월드>의 색감을 보는 듯한 기분 나쁨.
하늘의 저주가 퍼붓는 듯 했다면 지나친 망상일까요?

정문 맞은편 컨테이너에 잠시 있다가 창원으로 발걸음을 옮겨 부산 아고라 분들과 함께 식사하며 함안보 방문 일정을 마쳤습니다.

그들은 무사할까? 그들은 강을 살리는 밀알이 될까?
저는 거기에 개인 소망을 넣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바라봐 주는 것, 혹여 필요하다면 자그마한 마음을 드리는 것, 저는 아직 그 이상 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 했습니다.
Posted by 늘 축제였음..
아아, 여기는 마산시 내서읍 내서여고 인근에 있는 한 소공원(삼풍대)입니다.
현재 시각 8일 오후 3시께.


드뎌 지율스님 낙동강 예술사진 경남순회 전시회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경남지역 블로거로 활동하시는 파비님과 달 그리메님과 함께 있습니다. 제가 카메라가 없어서 전시하는 장면은 나중에 달 그리메님께 사진을 받고 다시 더 풍부한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이곳에 오니까 푸른내서주민회가 주말 일일장터를 하고 있군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왔는데, 처음에는 말없이, 지금은 사후 협조를 받아 하고 있습니다.

구담습지. 공사 전(위)과 공사중(아래) 사진. 오늘 사진전에는 이런 낙동강 관련 사진 34장을 선보였습니다.


주민회 일일장터이다보니 생각보다 호응이 있지는 않네요. 솔직히. 뭐 당연하죠. 덩그러니 판넬만 쫙 깔아놓으니 그닥일 수밖에..^^

이렇게 하나씩 모자란 구석을 발견하고, 다음 전시회 때마다 그 구석을 채워나가면 몇 개월 뒤에는 제법 풍성하지 않을까 딴에는 기대를 해본답니다.

작으면 작고 크면 큰 소동도 잠시 있었습니다. 먼저 도착한 파비님이 좌판(^^사진판넬)을 깔고 있으니 주민회 일부 관계자가 뭔지 잘 모르고 파비님께 '욕설 + 밀치기'를 해 파비님이 굉장히 화가 나셨더군요. 아직 그 분께 직접 사과는 받지 못했지만 푸른내서주민회와는 얘기가 잘 돼 다음 일일장터 때는 사전에 서로 연락해서 제대로 하자고 얘기 됐습니다. 주민회에서도 흥쾌히 하기로 했고요. 푸른내서주민회 분들께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 건넵니다.
참고로 푸른내서주민회는 4대강 사업 반대한다는 견해를 공개적으로 내걸고 있는 마산에서 몇 안 되는 주민단체거든요. 


전시회에서 폼 잡는(?) 제 모습을 파비님이 찍어주셨습니다. 사실 찍어달라 부탁했다는..^^ /블로거 파비

가족 단위 관람객. 사실 이날 관람객은 그닥 많지 않았다는. /블로거 달그리메 제공


사진전 후기는 따로 쓰겠고요. 우선 첫 보고입니다. 이 순회전시회에 관심이 있는 분들, 그리고 앞으로 관심 가지실 수많은 임들을 향한 첫 포스팅의 영광을 제가 누리는군요. ^^


웬 뚱단지 같은 소리냐?

지난 6일 마산 산호동 한 밥집에서 지율스님 낙동강 예술사진전 순회전시를 위한 추진모임을 결성했습니다. 이 일을 처음, 그리고 나서서 작당(?^^)한 김훤주 경남도민일보 기자와 저, 이렇게 경남도민일보 일하는 2명, 김주완 100인닷컴 대표이자 경남블로그공동체 대표(전 경남도민일보 기자)와 도내 블로거들, 봄밤님 등 경남아고라에서 활동하고 있으신 몇 분, 그리고 프리랜서를 대표한 다단계님 등 10여 명이 모였습니다.

이날 대표로 김훤주 기자가 뽑혔는데, 곧 자신의 블로그(2kim.idomin.com)에 이 내용을 포스팅할 것 같습니다.


전시회를 잠시 빠져나와 이렇게 뚝딱뚝딱 현장 포스팅을 해봤습니다. 약 11개월전 150여만 원을 들여 마련했던 DSLR 카메라가 그리운 하루임다. 산 지 한 달만에 대학원 모임 가서 술 마시고 부산에서 잃어버렸거든요. 그 피같은 돈 들여 산 DSLR만 있었어도 현장 포스팅이 이렇게 썰렁하진 않았을텐데. 쩝 임다.

파비님, 달 그리메님 화 내시겠네요. 다시 전시 공간으로 갑니다.

사진전 후기는 좀 달리 써보겠습니다. 머릿속에 있는 주제 타이틀은 지율스님 낙동강 예술사진에서 본 미학적 발견? 정도....

기대하시라. ^^

지송함다. 서설이 길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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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늘 축제였음..

정말 오래간만에 이 공간에 다시 글을 올려봅니다.
경남도민일보에서 기자랍시고, 월급 받고 살고 있는 이시우라고 합니다.
경남도민일보사를 다닌지도 만 8년인데, 지금껏 무엇을 했을까 라고 반추해봅니다. 부친상 중인 김주완 선배는 이미 사표를 냈고, 전 한겨레 사장이었던 서형수 사장께서는 그만 두려는 결심을 굳히셨고. 가장 절친한 선배조차 사표를 쓰고 스스로 배수의 진을 치고 있지만 꼬이고 꼬인 사내 상황은 아직 진전이 없네요. 2003년 '경영파업' 이후 구체적인 위기가 왔는데, 관망의 눈이 적지 않고... 

오냐 한번 해보자 라고 생각하는데도, 참 만만하지 않군요. 다시 부족한 견해이지만 생각을 모아보고, 중지를 모아보겠습니다. 김주완 선배가 말한 조직의 보수성이 우리에게 얼마나 깊이 있었을까,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무엇을 했을까라는 반성과 함께.

아직은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공간을 만들어준 지역민과 주주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20대 중반 결심했던 '갈 데까지 가보는 삶'이란 결심을 아직 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이미 30대 중반을 넘은 제 나이.
이뤄놓은 것이 없기에 아직 제대로 보여준 것이 없기에 미련이 있었지만, 제 좁은 속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여러 상처를 너무 한꺼번에 입으면서 그 미련조차 버리고자 했습니다. 이제  그 미련을 다시 주워담습니다.

갈 데까지 가보는 삶.
지금은 그 결기가 다시 있어야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법 녹록찮은 슬기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서형수 사장께서는 사의를 표하고, 내부에서 내부를 정리할 수 있어야한다고 하더군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치열하게 내부에서 내부를 중간평가하고, 정리해본 적이 경영파동 이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 다시 어떻게 우리 내부를 추스리고, 보다 발전적인 지역일간지, 아니 그 말조차도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되는군요. 오히려 올드 미디어의 총체적인  위기가 우리 목전에 와 있는데, 이 상황을 타개하지 못하면 우리는 곧 파멸할 것입니다.

그래서 서형수 사장께서는 아직 가실 때가 아닙니다.
움츠려있던 내부의 변화의 싹이 (너무 더뎌 보이겠지만) 트고 있습니다. 그 싹을 버리지 말아주십시오.
아직은 포기하시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남아 있어 주십시오. 서 사장님과 제대로 호흡하면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내 선후배들도 적지 않습니다. 단지 이 위기나 눈가리고 아웅하듯 지나치자는 게 아닙니다. 정말 제대로 호흡하고, 스스로 최선을 향해 다시 뛰겠다고 하는 내부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서 사장께서는 아직 떠나실 때가 아닙니다.
남으셔서 한국 지역일간지의 새로운 역사를 쓰셔야하지 않습니까. 미약하고 부족하나마 그 역사의 작은 흔적을 남기는데, 자그나마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벌어먹고 살고 싶습니다. 그 중심에 적지 않은 이들이 설 것입니다.

마음을 돌려주십시오.
지역일간지 기자가 되려면 어떻게 공부하고,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은데, 그 조건을 만들어주십사 건방지게 부탁드립니다.

사장께서 떠나시면, 자성을 발판 삼아 다시 뛰겠다는 이들이 정말로 마음을 놓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서 사장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희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위기 상황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 자성의 힘을 눈으로 한번은 확인하셔야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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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22일) 오후 4시 30분께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그토록 염원해 마지않던 미디어 악법(신문법 개정안, 방송법 개정안, IP관련법)이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민주당과 민노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등 야 4당은 투표 자체를 하지 않고 강력하게 항의 했지요.

  그것도 김형오 국회의장(한나라당 소속)을 대신해 의사봉을 넘겨받은 같은 당 소속 이윤성 국회부의장이 직권상정을 하면서 말입니다.

  그 사이 지난해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던 금융지주회사법(현행법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교차 소유를 허용하지 않고 있음)도 국회부의장 직권상정을 해 통과시켰습니다. 재벌의 은행소유를 용이하게 하는 내용을 받고 있죠.

  방송과 은행 모두 재벌에게 주고 그들의 친위부대인 조중동이 재벌과 카르텔을 통해 그들의 전위부대인 한나라당의 장기집권을 돕겠다고 하네요.

  이웃 일본은 자민당 일당 집권 50여 년 체제가 종식되려는데, 한국사회에선 재벌, 조중동, 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특권계급 1%들의 그들의 안정적인 장기집권을 위한 가장 큰 걸림돌을 제거했습니다. 그것도 국회부의장 직권상정으로. 그 전에 제대로 된 토론도 없이.

  지역신문 종사자인 저는 힘이 빠집니다. 그렇지 않아도 현재 시장 상황에서 버티는 것 조차 어렵고, 힘이 부치는데 이젠 조중동이 소유한 지역일간지(지금보다 훨씬 조직과 규모가 줄어든, 지역 관련 기사 생산량도 훨씬 감소한 채)로 가거나 그냥 보고만 있다가 망하거나 라는 선택만이 남아있다는 절망감이 몰려듭니다. 국민 대다수가 방송법에만 관심이 있고, 방송 만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한나라당의 언론법은 무가지와 불법경품조차 신고해도 처벌을 할 수 없게 되고, 광고 시장이 더욱 협소해질 것이기 때문에 조중동 이외 신문, 특히 지역일간지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직격탄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특권계급 1% 들이 그들의 카르텔을 통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였던 미디어 분야까지 그들의 뜻대로 장악하려했고, 그 시도는 당장은 성공한 것 같습니다.

 

언론장악저지 경남연대 소속 시민사회단체 회원,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언론노조 등이 22일 창원시 봉곡동 한나라당 경남도당 앞에서 언론악법 저지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남아있는 것은 단지 하나. 대한민국이 공화국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제가 입에 풀칠하고 살려고 해도 끝까지 싸워야한다는 것. 대한민국이 한나라당을 위시한 특권계급 1%만을 위한 공화국이 아니라 (최소한 국민의 뜻을 어느 정도라도 반영하려고 시늉이라도 하는)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줘야한다는 것.


  그리고 그 결정은 이 뜻에 동의하는 모든 국민이 해야한다는 것. 그래야 나머지 99% 국민도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을 갖고 있다는 점을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

  그렇게 하지 못 하면 이미 한국 민주주의의를 1987년 이전으로 끌어내린 짐승같은 특권계급들의 카르텔 속에 종놈으로 밖에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짐승의 종놈이 되지 않고, 최소한 나는 인간이고 내게도 인간적 존엄이 있다는 사실을 그 짐승들에게 알려줬으면 합니다.

  부끄러운 제안입니다만 함께 손잡을 분을 찾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운 제 손을 내밉니다. 잠깐 잊고 있던 그 단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음으로서 얘기하고자 했던 그 단어 아름다운 '연대'는 이제 시작일 것입니다.
Posted by 늘 축제였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용산 철거민 참사를 보고. 이제 그만 해라, 이명박 한나라당아. 차라리 다 죽이고, 느그 1% 만 묵고 사는 나라 만들어라. 아님 강남 땅 다 가져가서 느그들만의 나라  '한나라'를 건국하던지. 지발 죄없는 이 땅 이 백성에게 해꼬지 좀 그만 하고. 개백정 같은 쓰레기들....
Posted by 늘 축제였음..
<언론노조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언론노조 경남도민일보지부 전 사무국장 이시우입니다.
튼실한 산별노조 건설을 향해, 상식과 민주주의 기본을 버린 이명박 정권에 비수를 꽂으려고 떨쳐 일어선 전체 언론노조 동지들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면서도 저 자신은 참 부끄럽습니다.
저희 전 (김훤주) 지부장도, 저도 파업은 파업답게 윤전기를 세우는 파업을 해야 한다고 전국 동지들께 말해 왔습니다. 그리고 방송국 노조가 방송 중심의 의제라 해도 실질적인 파업을 한다면 저희 지부도 산별 정신에 따라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공언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12월 9일 지부 자체 일 때문에 임원과 집행부가 총사퇴했습니다. 집행부가 공백이 생겼고, 노동조합 업무가 전면 중단됐습니다.
차기 지부 임원 선거를 서두르긴 했지만 아직 후보가 나오지 않아 새 집행부를 못 꾸렸습니다. 현재로서는 파업을 실행할 단위가 없어진 셈입니다. 다음 주 월요일 지부 대의원대회를 열기로 했지만 26일 파업을 실행할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집행부가 없는 관계로 서울 집회에 참석할 방법도 없습니다. 사측과의 논의 주체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저희 지부에서 그렇게 장담하던 얘기들이 부끄럽지만 26일 전면 파업에 대해서 만큼은 공(空)언이 됐습니다.
전 지부 임원으로서 책임을 통감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저희 지부가 서울서 함께 할 순 없지만 마음만은 여의도로 향하고 있습니다.
조합원 동지들, 특히 MBC본부 동지들께 진심으로 죄송스럽습니다. 윤전기를 세우지도 못하고, 최소한 평소처럼 10여 명의 조합원이라도 지부 깃발을 들고 함께할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깝고도 죄스럽습니다. 이른 시일 내 지부 대의원들이 현명한 판단으로 지부 활동을 정상화될 것이라 믿고, 곧 새 집행부가 꾸려지리라 생각합니다. 곧 꾸려진다면 내일 함께 하지 못하는 죄스러움을 포함해서 싸우겠습니다.
‘우리의 산별’ 언론노조 최초이자 이명박 정권의 심장을 겨눈 최초 파업에 함께하지 못해 정말 가슴이 시립니다. 정말 마음만은 여의도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저희 지부에 적잖은 조합원들도 이미 26일 여의도로 눈과 마음이 향했습니다.
삶, 사랑, 투쟁, MB정권 시러요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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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전국노동자대회를 앞두고 삭발을 하는 정유근 본부장

파면 직후 만난 임종만 부본부장.

2006년 9월 22일 진주시지부 사무실 폐쇄를 막으려는 조합원들.


2006년 공무원노조가 사무실 폐쇄 등을 전후해 이렇게 무참히 깨지지 않고, 법외지만 전국공무원노조라는 단일한 노조체계를 유지했을 때입니다. 경남에선 경남도와 공무원노조 경남지역본부가 그 해 2년 전인 2004년에 도와 시.군간 인사교류협약을 맺었습니다. 그 내용은 쉽게 말해 4급 공무원 이상 자리가 나면 시.군 출신이 아닌 도청 출신 우선으로 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노동담당 기자로 취재에 나서기 전까지 저는 몰랐는데, 그런 인사로 인해 공직사회에 제법 모순이 쌓이고, 그 인사가 도와 시.군이 주종관계를 형성하는 매개고리 역할을 했나봅니다. 시.군 공무원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둘째치고, 업무에도 제법 지장을 줘 공익적 시각에서도 맞지 않았나 봅니다.

그런데, 당시 김태호 도지사가 그해 7월 18일 고위 공직자 인사를 단행했을 때, 공무원노조는 인사교류협약을 파기하고 이른바 '낙하산 인사'를 했다고 반발했습니다. 당시 인사에 대해 여러 보도매체가 선거 보은용 인사라고 지적했죠. 그래서 기자회견을 통해 인사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8월 중순부터는 도청 앞 천막농성을 했죠. 김 지사와 계속 되는 신경전이 벌여졌고, 김 지사는 공무원노조가 법외단체라며 전국에서 처음으로 사무실 폐쇄를 공언하며 그해 8월 31일 도청 소속인 공무원연수원에 있던 공무원노조 경남지역본부 사무실을 폐쇄 했습니다.

전국적으로 탄압국면으로 가던 전국공무원노조는 당시 가장 조직력이 세고, 조합원이 많은 경남이 무너져선 안된다고 판단하고 전국공무원노동자대회를 그 해(2006년) 9월 9일 창원에서 했습니다. 경남본부에선 전국공무원노동자대회를 통해 김태호 도지사를 압박하겠다는 의도가 적지 않았고, 김 지사는 그 대회를 불법집회로 규정하며 도내 공무원들의 참여를 원천 차단하겠다고 공언했죠. 그리고 각 시.군 지부 사무실 폐쇄를 시.군에 요구했습니다. 눈치만 보고 있던 행자부와 공무원노조가 눈엣가시였던 조선일보 등 보수신문들은 일제히 공무원노조를 이른바 '죽일 놈'으로 만들고, 김 지사를 '소신있는 자'로 표현하면서 공무원노조 탄압을 거들었습니다. 경남도와 전공노 경남지역본부는 사실상 정부와 전공노의 대리전을 치른 셈이지요.

이런 사태를 주도한 이유로, 혹은 법외노조를 고수한다는 이유로 경남지역본부 임원들과 몇몇 지부장들이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해임 이상이 무려 8명이었습니다. 파면된 이들도 4명 정도 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이들 모두 내부 소청 심사에서 해임으로 한단계 낮아졌지만 할 말을 해야겠다고, 아니 약속을 지키라고 한 것에 비해서는 이들에게 가혹한 처벌이었지요. 당시에도 그런 여론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에게 법원에서 해임무효 판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지난 5일에는 정유근 경남지역본부장, 박태갑 전 정책기획국장, 임종만 부본부장이 부산고법 항소심에서 승소했습니다. 대법원은 판결에서 사건 자체보다는 법리 중심으로 보기 때문에 이변이 없는 한 승소할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이에 앞서 노기환 전 부본부장과 최승룡 전 경남지역본부 조직국장은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해 복직했습니다.

  공무원노조가 둘 혹은 셋으로 갈라져 그 힘을 잃고 있지만 공직사회 개혁을 위해서 우리사회에서 공무원노조는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모처럼 날아든 이 소식이 어찌나 반가운지...^^
  아무튼 이번에 승소한 세 분께 축하한다는 말씀 건넵니다. 그리고 아무리 지도자라 하더라도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해 지나친 징계를 하면 결국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는 것을 이번 판결이 일깨워줬으면 합니다. 계속 되는 승소는 사실상 당시 징계가 부당했음을 방증하고, 그 시기 도백으로서 김 지사가 공무원노조에 행한 일련의 행위가 정당했느냐를 묻는 것이니까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김 지사는 임기가 끝나기 전 이 일에 대해 한 번쯤은 답해야할 것입니다.

아래는 당시 해임 이상 중징계를 받은 8명의 재판 현황입니다.

* 2006년 9월 9일 전국공무원노동자대회에 따른 징계(대부분 해임) 받은 이들 현황
=> 제가 파악하기로는 8명인데, 혹 궁금하신 분은 민공노 경남지역본부에 한번 확인해보세요.

재판 진행 중이거나 확정 판결난 8명 중 사실상 승소 5명

-대법원에서 해임 무효 소송 최종 승소한 이들(복직) 2명
노기환 전공노 경남지역본부 부본부장(합천), 최승룡 전 경남지역본부 조직국장(진주)

-부산고법 항소심서 패소해 대법원 최종 판결 앞둔 이 1명
강수동 전 진주시지부장 : 해임(소청심사서 파면서 해임으로) -> 

-부산고법 항소심 진행 중 2명
백승렬 전 경남지역본부 사무처장(합천), 배병철 전 거제시지부장

-부산고법서 최근 승소한 이들 3명
(대법원 판결 앞두고 있지만 최종 판결서도 승소할 확률이 훨씬 높음)
정유근 전공노 경남지역본부장(진주), 박태갑 경남지역본부 사무처장 직대(전 정책기획국장, 진주), 임종만 전 부본부장(마산)

아래는 모범 공무원으로 지역사회에서 칭찬이 자자했던 임종만 전 부본부장이 자신의 블로거에 쓴 재판에 대한 감흥입니다.

도백의 불같은 썽질이 수억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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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선생 초청강연회를 듣고 2

지난 11월 1일 홍세화 선생 초청강연회(장소 마산 3.15아트센터 국제회의실)에서 제 생각을 끝없이 잡아끌었던 것은 촛불집회에 대한 반추였습니다. 그래서 첫 포스팅에서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촛불집회를 보면서 법이라는 규범 틀 내에 자신을 가둬버리고, 자신의 존재를 지지하고 대변할 수 있는 좌파 정당에 대해서조차 욕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면서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지닌 이들이 너무 뿌리 깊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이들이 이 말에 공감해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저만의 푸념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의 배경은 설명하고 싶군요. 누군가 이 글을 본다면...
  기존 시민단체, 노조 조합원, 노조연합회에 발담그지 않는 '시민'들이 촛불집회에 대거 참여했습니다. 그 중에는 과거 학생운동을 해본 경험이 있는 30.40대 들도 적지 않고, 노조운동을 해본 이들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시민들도 적지 않고요. 아무튼 시민단체 관계자나 회원, 노동조합 간부나 조합원이 아닌 '시민'들이 만만찮게 참여했습니다. 저도 그런 인터넷 모임 회원으로 가입해 있고요.

  그 분들을 욕하거나 폄훼하려고 쓰는 글이 아니라 한국 내 좌파정당(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을 포함하겠습니다)이나 노동조합의 총연합회인 민주노총, 그리고 조직노동자 전체를 매도하는 데 오는 좌절감입니다. 실제 서울 뿐만 아니라 우리 지역(경남)도 그런 분들을 심심찮게 봤습니다.

  홍세화 선생은 강연회에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제가 프랑스에 망명생활을 할 때, 제 자식이 고1 때 선생이 던진 질문이 '노동조합이 민주주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였습니다. 이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시험이고, 숙제였습니다"

  조중동이라는 수구반동 미디어가 아니라도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우리 국민의 의식은 높지 않을까라고 착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촛불집회 초기였을 때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최소한 이 땅 민주주의를 지탱해온 이들은 한국노총 이외 조직 노동자의 역할이 적지 않았고, 또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중추 역할을 했다. 그리고 한국도 사회복지를 이룰 수 있는 정당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이런 저런 모임을 다니면서 그 생각은 저만의 착각이었습니다. 그래서 홍세화 선생이 최소한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국가 모델로 가기 위해서는 대학 평준화가 일차적이라는 말에 회의가 느껴졌습니다. 한국에서 '대학 평준화'는 현재 국민들의 의식지향으로 볼 때 요원한 것 같습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논리의 장난일 수 있겠지만 (질서에 길들여진)성숙한(?) 시민의식이 아닌 최소한의 자기 계급의식이 없다면 대학평준화는 결코 동의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1차 세계대전이라는 극도의 파괴 행위 뒤 상당수 독일 국민들이 대안을 도저히 찾을 수 없어 선택한 독일 사회민주당에 대한 선택과 같은 우연적 계기를 통한 좌파정당(물론 여기에는 사회주의 정당 등도 포함되겠지만 한국에서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려는 정당도 제가 보기에는 좌파라고 충분히 불릴 수 있겠습니다. 최소한 조중동이 신문 시장 점유율이 50%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한 보수정당인 민주당도 좌파라고 하는 한국 상황에서는요)이 집권하거나 제1야당이 되지 않는 한 너무 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중동의 이데올로기 공세와 10% 부자들의 논리 프레임이 두려워 민주주의를 지켜온 이들을 스스로 폄훼하는 시민의식으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게 제가 촛불집회 후반부에 든 의문입니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면 공화국 앞에 '민주'를 지켜온 실체에 대한 최소한의 인정도 없이 날로 먹으려는 시민의식은 외려 천박해보입니다. 촛불을 든 그렇지 않는 시민들에게는 죄송한 얘기지만요.

  그렇다고 제가 민주노총이 잘못이 없다거나,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등이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저는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 조합원으로 있지만 민주노총에 상당히 비판적입니다. 또한 앞서 말한 두 정당이 집권이 가능한 좌파정당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린지 제법 됩니다.

  이들 세력 장에 대한 비판은 차치하고라도 촛불집회에 나타난 (질서에 길들여진) 주된 시민의식 수준으로 홍세화 선생이 얘기한 '대학 평준화'라는 실질적인 요구를 이뤄낼 수 있겠느냐는 절망감입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촛불집회에 들떴지만(저도 6월 중순까지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 속의 시민의식이 보여준 프레임에는 계급의식이 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 의식 수준으로 과연 '대학 평준화'를 이뤄낼 수 있을까요. 10%의 지배층에 대해 세금 더 내라는 그런 요구를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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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선생 강연회를 듣고-1


학생의 날(학생의 날은 정확히 11월 3일입니다. 이 날 직전 주말에 행사를 한거죠. 그리고 올해부터 일제시기 광주학생운동을 기념한다는 뜻을 더욱 명확히 하려고 학생독립운동의 날로 바뀌었습니다)을 기념해 이틀 전인 11월 1일 전교조 마산중등지회와 참교육학부모회 마창진 지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홍세화 선생 초청 강연회에 갔었습니다. 강연회는 마산 3.15아트센터 국제회의실에서 했습니다. 약 1시간 30분 되는 강연회를 생각보다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원래 홍세화 선생의 강연회가 다소 지루한 맛이 있는데 이날은 교육에 대한 내용이어서 그런지 지루함이 덜했습니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이 어구를 들었습니다.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

자신이 노동자임에도 종합부동산세 폐지 혹은 완화에 찬성하고, 부자에겐 1000만 원의 세금을 깎이지만 가난한 자에게는 채 5만 원도 깎이지 않는 감세 정책에 찬성하는 이들.
 
  다람쥐 챗바퀴 마냥 혹독한 암기 경쟁을 하고, 그 경쟁에서 탈락하면 이른바 자신의 인생 자체를 상층부에 '몰빵'(몰아서 준다는 의미임다) 하듯 줘버리는 이들. 이들 국민 대다수가 만드는 나라가 공화국 '대한민국'인 것 같습니다.

  홍세화 선생은 인문.사회학적 소양은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그래서 사회비판의식은 끄트머리 조차 찾아볼 수 없는 이들. 그래서 자신의 삶이 전혀 나아지지 않는 80%의 인간을 길러내는 핵심에 제도교육과 수구반동 미디어(조중동)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이를 완화할 수 있는 방안 중 핵심이 대학평준화라고 하더군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죠? 촛불집회를 보면서 법이라는 규범 틀 내에 자신을 가둬버리고, 자신의 존재를 지지하고 대변할 수 있는 좌파 정당에 대해서조차 욕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면서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지닌 이들이 너무 뿌리 깊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해야하죠? 홍세화 선생의 강연을 들으면서 더욱 답답해졌습니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물음이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교조가 총파업(전교조는 노동2권 밖에 없는 실질적인 파업을 할 수 없기 만든, 노동조합으로 보면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중 그 핵심인 단체행동권인 파업권이 없는 형식상 식물 노조입니다)을 하고, 언론노조가 총파업을 하고,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하면 달라질까요? 아니 실질적인 총파업을 할 수 있을까요? 대학 평준화를 전면에 걸고, 수구반동보수 세력 일색인 국회를 해산하라고 총파업을 할 수 있을까요?

  촛불집회처럼 대학평준화를 전면에 내걸고 온 국민이 거리에 나갈 수 있을까요? 촛불 집회처럼 요구가 모호하지 않고요. 실제적인 요구에 의한 실질적인 전면 거리 시위가 이뤄질까요? 20 대 80에서 10 대 90으로 가는 우리 사회를 제 주위 친구조차 이 상황을 당연히 여기는 이 어글리 코리아에서... "어떻게 해야할까요?"

  
  공허한 물음이지만 누가 답변을...
Posted by 늘 축제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