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 때 혹은 중2 때 지금은 사라진 마산지역의 민간도서관 '책사랑'에서 한 권의 책을 빌려 봤었죠. 누가 소개한 것도 아니었는데, 우연히 알게 된 이 '책사랑' 회원을 중1부터 고3까지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학을 마산이 아닌 창원에서 다니게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곳을 잊었죠.

생택쥐페리의 '어린 왕자'-문예출판사. 전성자 옮김. 제4판 5쇄 2010년 2월10일-


그때 읽은 책이 바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Le Petit Prince>였습니다. 너무 감동적으로 읽어 혼자서 눈물 찍 흘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와 함께 제 중학 시절을 감동으로 몰아갔던 그 책. 그래서 이 책을 '책사랑'에서 구매해 간직했었습니다.

물론 고등학교 때도 이 책을 종종 읽기도 했었죠. 감성이 메말라질 때면요.

대학교 3학년 때 제가 있었던(사실은 제가 후배들 모아 만들었음다) 인문대 문화비평 소모임 교재로도 활용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어떤 이들이 판단하기에는 피식 웃을지도 모르겠지만 ) 자본주의 사회인 당시 대한민국을 비판하는 텍스트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입대. 대학 시절 썼던 학과 캐비닛에 책을 고스란히 놓아둔 채 군대에 갔는데, 그 사이 학과에서 학기 초 캐비닛 정리를 하면서 대학 시절 읽었던 책 대부분을 잃어버리게 됐습니다. 그 중 한 권의 책이 제 손때 묻은 <어린 왕자>였습니다.

근 14년 만에 마산 영풍문고에서 이 책을 다시 샀습니다. 책을 구매했다는 표현보다는 14년 만에 잃어버린 책을 되찾았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의 기분이었습니다. 21장에 나오는 여우와 어린 왕자의 일화를 다시 읽고 싶었기 때문이죠.
이 책 가운데 그 둘의 일화에 가장 감동했었습니다. 특히 '길들여진다는 것.'에 대해.
(사실 이 표현도 이중피동으로 비문에 가깝다는. 길들여진다는 것 -> 길든다는 것)

어떤 감동이냐고요? 어릴 적 이 책을 읽지 않은 분들이 드물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냥 정리해보겠습니다.

"난 너와 함께 할 수 없어." 여우가 말했다. "나는 길들여져 있지 않으니까"

(중략)
(어린 왕자의 말)

"'길들인다'는 게 뭐지?"

(중략)
(여우의 말)

"그건 너무나 잊히고(본문에는 잊혀지고. 잊혀지고는 영어식 이중피동 어구라서 비문에 가깝습니다) 있는 거지. 그건 '관계를 만든다......"는 뜻이야." 여우가 말했습니다.

(중략)

(여우의 말)
"------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환히 밝아질 것이야. 다른 모든 발자국 소리와 구별되는 발자국 소리를 나는 알게 되겠지. 다른 발자국 소리들은 나를 땅 밑으로 기어들어가게 만들 테지만 너의 발자국 소리는 땅 밑 굴에서 나를 밖으로 불러 낼거야! --------------그런데 너는 금빛 머리칼을 가졌어. 그러니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정말 근사할 거야! 밀은 금빛이니까 나에게 너를 생각나게 할 거거든. 그럼 난 밀밭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 소리를 사랑하게 될 거야....."

(중략)

(여우의 말)
"사람들은 이제 아무것도 알 시간이 없어졌어. 그들은 상점에서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들을 사거든. 그런데 친구를 파는 상점은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는 거지. 친구를 가지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줘"

(중략)

다음날 다시 어린 왕자는 그리로 갔다.
"언제나 같은 시각에 오는 게 더 좋을 거야." 여우가 말했다.
"이를테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것이야. 시간이 갈수록 난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아무 때나 오면 몇 시에 마음을 곱게 단장해야 하는지 모르잖아. 의식이 필요하거든."

(중략)

여우가 말했다.
"내 비밀은 이런 거야. 그것은 아주 단순하지. 오로지 마음으로만 보아야 잘 보인다는 것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중략)
(여우의 말)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그 시간 때문이란다"

(중략)

"사람들은 그 진리를 잊어버렸어." 여우가 말했다. "하지만 넌 그걸 잊으면 안 돼.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지. 너는 네 장미꽃에 책임이 있어....."
..............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 왕자는 되뇌었다.


그리고는 고 1때 혼자 이 책, 특히 이 21장을 생각하면서 넋두리 한 편을 긁적여본 적도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 시화전에 넋두리  수준의 시를 출품했는데, 그때 몹시 부끄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이 책은 제 초기 청소년기 감수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줬던 것 같습니다.

Posted by 늘 축제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