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제 키워드는 개구리 왕눈이로 할까 합니다. 창녕 소벌(우포늪)과 개구리 왕눈이라는 번뜩 떠오른 생각 덕분에 제가 식물에 얼마나 둔감하고 무지한지 알 수 있었으니까요. 어쩜 생명 자체에 대한 무지한 저 자신을 소벌을 보고, <개구리 왕눈이>의 무지개 연못에 있던 식물을 추적하면서 살펴보게 된 것 같습니다. 아시겠지만 <개구리 왕눈이>는 자본주의(특히 한겨레신문사가 본격 사용하면서 공식용어로 된 천민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작품 외적 맥락으로 상당히 깔고 있습니다. 현대 자본주의의 권력관계(자본가-중간관리자-노동자(하층민 혹은 서민))를 제대로 압축한 한 편의 우화입니다. 197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종종 볼 수 있었던 경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0년대 정치투쟁에서 좌절한 일본의 신좌파(전공투 세대)들이 대거 애니메이션계, 로망 포르노계로 진출한 사실과 당시 애니메이션 콘텐츠에 자본주의 비판이 상당히 녹아있는 것도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아래는 <개구리 왕눈이>에 대한 두산백과사전(네이버 백과사전)의 내용입니다. 한번 보시고 본론으로 들어가것음다.


개구리 왕눈이
요약
1973년 일본에서 제작된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영화 시리즈.
감독 도리우미 진조
상영시간 25분
제작사 다츠노코 프로덕션, 후지 TV
제작연도 1973년
본문

원제는 《게로코 데메탄 けろっこ デメタン》이다. 1973년 다츠노코 프로덕션과 후지 TV에서 제작한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영화 시리즈이다. 감독은 도리우미 진조[]가 맡았다. 한국에서는 KBS에서 방영했다. 계급간의 갈등과 계급을 초월하는 사랑, 자본가의 횡포,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뒤에서 조종하는 권력 등 다소 무거운 소재와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우화적인 표현을 사용해서 어린이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제작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덩치가 작고 힘 없는 청개구리 집안의 왕눈이가 무지개 연못에서 온갖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이를 극복하고, 나아가 억압된 체제 유지의 근원이 되는 폭력과 재력을 철폐하는 모습을 그린 교훈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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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이 어젯밤 국민과의 대화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더군요. 이명박 대통령이 이 프로그램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더군요. 이명박 대통령의 전체적인 태도는 "국민들이 오해를 많이 한다""나도 어릴 때 고생 많이 해서 어려운 사람들 다 안다""국민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나는 혹은 지금 상황은)그렇지 않다""내가 임기 초기 일한다고 국민들 심정을 다소 소홀하게 다뤄서 그렇지 모르는 게 없으니 안심하시라" 등등으로 느껴졌습니다. 마치 절대자(왕)가 무지몽매하고 미천한 백성에게 얘기하는 것 같더군요.

  그중에서도 가장 걸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9월 위기설로 압축되는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한 패널이 묻자 이명박 대통령은 "위기는 전혀 없고 어려움이 있으나 정부가 잘 대처하고 경제 주체인 기업도 열심히 하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그러니까 그때도 이데올로기 편향이 심했던 정치.경제 교과서에도 경제주체는 가계(소비자)와 기업, 그리고 정부 등으로 나온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경제 주체가 기업만이란 인식은 의식보다 더 무서운 거의 무의식 수준에 박혀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의식적인 말보다 더 무서운 무의식에 기반을 둬 내뱉는 말이라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치더군요. "저 사람의 생각은 의식 이전이기 때문에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일더군요. 이명박 대통령에게 국민의 절대다수인 노동자는 한갓 일용 잡부 수준이 아닐까요?
 
<개구리 왕눈이>에서 아롬이의 아버지인 '투투'처럼, 가난한 일용 잡부에 불과한 왕눈이 아버지는 '무지개 연못'(한국사회)에서 그저 꼴 보기 싫은, 하지만 노동력을 쓰고자 어쩔 수 없이 유지하는 그런 존재.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국민 대다수인 노동자를 보는 관점이 그러하다는 느낌이 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더욱이 <개구리 왕눈이>의 뒷부분에는 '무지개 연못'을 지배하는 듯 보였던 투투조차 중간 관리자에 불과했다는 것이 메기의 등장으로 나오지 않습니까. 보이지 않은 절대 권력은 따로 있다는 반전 부분. 어쩜 이명박 대통령도 '투투'에 그치고, 절대권력은 우리 사회(인정하기 싫어도 객관에서 현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천민적 성격이 가장 두드러지는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겠죠. 보이지 않는 조종자이자 실질적인 권력의 핵심.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도 그들의 중간관리자 이상은 아니지 않을까. 사회적 약자, 노동자, 영세상인 등 서민은 그럼 도대체 얼마나 어떻게 싸워야 최소한의 인간적 권리를 누릴 수 있을까.

  상상을 하기 싫지만 어쩜 촛불 집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저항의 에너지를 받지 않는 이상 만만찮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표로 심판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저 저 자신만의 기우일까요?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는 여전히 의회정치(대의제)에 대한 불신이 대단합니다. 의회정치를 통한 최소한의 대안을 찾아 고민을 하거나, 앞으로 5년 안에 그런 근본적인 불신 상황이 쉽게 바뀌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5년 동안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모든 언로(미디어)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길들이거나 막겠죠. 처음에는 이건 아니다라고 하다가 매스미디어가 날마다 그렇게 하면 미국이란 나라의 국민과 다를 게 없게 되겠죠. <개구리 왕눈이>의 왕눈이처럼 우리는 피리를 불면서 울분을 삭이며, 착한 척하는 수밖에 더 있을까요? 정작 힘이 없어서 억눌려 사는 게 한국에선 지금까지 착하게 사는 것으로 통용됐으니까.

  <개구리 왕눈이>의 해피엔딩-착하게 살면 메기를 몰아내고, 투투를 감동시켜 무지개 연못에 또 다른 날이 온다-처럼 한국 사회가 그렇게 되길 미친 척하고 바라고 살아야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항하지 않으면, 외마디라도 지를 용기가 없다면요.


<개구리 왕눈이> 가사- 한국어
(음악은 아래 팝캐스트 꾹 누르세요)

개구리소년 개구리소년
네가 울면 무지개 연못에 비가 온단다
비바람 몰아쳐도 이겨내고
일곱번 넘어져도 일어나라
울지말고 일어나 피리를 불어라
삘릴리 개골개골 삘릴릴리
삘릴리 개골개골 삘릴릴리
무지개 연못에 웃음꽃핀다


<개구리 왕눈이> 가사-일본어

'호리에 미쯔코'씨가 열창한 일본어 가사

けろっこデメタン おまえが泣けば 虹のお池が 雨になる

けっとばされても すぐ起きろ ふんずけられても すぐ起きろ

負けても泣かずに 笛を吹け

ピ-ヒョロケロケロ ピ-ヒョロロン

ピ-ヒョロケロケロ ピ-ヒョロロン

ほらほらラナタンが とんで來る


けろっこデメタン おまえが泣けば かわいいラナタンが 泣くだろう 

ひっくりかえって 立ち上がれ でんぐりかえって 立ち上がれ

めだまをこすって 笛を吹け

ピ-ヒョロケロケロ ピ-ヒョロロン

ピ-ヒョロケロケロ ピ-ヒョロロン

ほらほら勇?が わいてくる


けろっこデメタン おまえが泣けば 虹のお池が 雨になる

いじわるするやつ いやなやつ 背中を向けるな とびかかれ

おなかをさすって 笛を吹け

ピ-ヒョロケロケロ ピ-ヒョロロン

ピ-ヒョロケロケロ ピ-ヒョロロン

ほらほらお池に 陽がのぼる

Posted by 늘 축제였음..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개구리 왕눈이는 주로 수련 위에서 놀고, 비가 오면 연꽃 잎 아래서 아롬이와 함께 비를 피했습니다. **^^

  지난 8월 30일 저희 신문사(경남도민일보사)가 주최한 '경남의 블로그를 말한다'를 마친 뒤 소벌(우포늪)에 갔고, 거기서 가시연꽃을 보고, 개구리 왕눈이는 어디 위에서 놀았는지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백과사전을 찾아보면서 연, 연꽃, 수련, 가시연꽃이 어떻게 각자 다른지 알게 됐습니다. 이 차이는 제 블로그의 앞선 세 글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개구리 왕눈이의 오프닝 씬(장면, 만인의 노래인 주제곡이 나오죠)과 한 컷 이미지를 쭉 찾아보니까 개구리 왕눈이가 주로 놀던 곳은 수련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면 연꽃처럼 물 위에서 높이 솟아오른 잎(서있는 잎이라는 뜻으로 한자로는 입엽)이 없습니다. 그리고, 꽃이 물위에 떠 있습니다. 연꽃은 물 위에 뜬 잎보다도 한참 위로 올라온 꽃대 위에 한 송이가 피는 반면, 수련의 꽃은 물 표면에서 핍니다. 그리고 꽃의 모양도 연꽃은 타원형으로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반면 수련의 꽃은 꽃잎 끝이 이 끝이 상대적으로 뾰족해 다소 빳빳한 느낌을 줍니다. 수련 사진과 개구리 왕눈이 사진을 살펴보면 개구리 왕눈이가 놀던 곳이 수련임을 한눈에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개구리 왕눈이>의 불어판 포스터를 보면 수련이 연꽃과 크게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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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롬이와 왕눈이 뒤에 보이는 꽃이 수련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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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꽃의 특징인 끝이 뾰족한 부분이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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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에 나오는 잎은 수련 잎의 특징인 불투수성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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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바로 떠 있는 수련 꽃. 아래 연꽃과 비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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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인 잎의 불투수성(표면이 두텁고, 물이 스며들지 않게 투명한 막으로 싸여져 있음)

  그렇다면 무지개 연못에는 연꽃이 없는 것일까요? 주제곡이 흐르는 오프닝 씬을 보면 개구리 왕눈이와 아롬이가 비를 피해 잎사귀 아래에 있습니다. 이게 연꽃이 아닐까 합니다. 물 위로 떠있는 잎을 발판으로 삼고, 물 위에서 솟아오른 잎(입엽)은 자연스레 우산처럼 비를 막아주는 구실을 하고 있죠.
  간만에 새벽을 이렇게 질렀는데, 개구리 왕눈이가 힘겹게 살던 무지개 연못에는 수련과 연꽃이 이렇게 함께 있었답니다. 휴- 일주일만에 끝났나요. 다행...^^**

연꽃과 수련의 차이를 얘기한 블로그

일본애니메이션 <개구리 왕눈이> 관련 글은 아래http://blog.naver.com/janice21c/90014125443

Posted by 늘 축제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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