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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프랑스 파리 구도심 거리 대부분이 주말이면 2차로를 1차로 일방통행로로 바꿔 보행자들(관광객이 많음)이 보다 쉽게 걷도록 배려한다. /경남도민일보 유은상 기자


이 글은 한국토지공사와 국토해양부가 공동으로 펴내는 격월간지 <시민과 도시> 다음달 호(7.8월호?)에 낼 예정인 기고글입니다. 토공으로부터 먼저 제 블로그에 올려도 된다고 양해를 받아서 우선 이 곳에 올립니다.


역설적이지만 보행은 머무름이자 소통이다

- 부제: 보행이 지닌 도시 문화적 의미

글쓰기에 앞서

지난 20069월 초 9일간의 일정으로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주최한 ‘살고 싶은 지역 만들기 일본연수’에 참여했었다. 연수에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부위원장과 담당자,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살고 싶은 지역 만들기’ 실무팀, 광역‧지역 일간지, 일본 마을만들기 국내 전문가들이 함께했었다. 이 마을만들기에 기초해서 행자부, 농림부(현 농림해양수산부),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는 각종 사업을 2년 가까이 펼치고 있다. 현 시점에서 중앙정부 중심의 다양한 ‘마을만들기’(혹은 도시는 창조도시) 프로젝트가 얼마나 일관성 있고, 그 정책 취지에 맞는지 점검할 때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점검이 혹여 이 프로젝트의 지향점마저 버리지는 않았으면 한다. 이 부분은 청탁받은 내용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이쯤으로 줄이겠다. 어떻든 이 글이 그 점검에 작으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

보행은 있었지만 보행권은 없었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메트로폴리탄), 심지어 내가 사는 공간인 마산.창원과 같은 중간 규모의 도시에 살지 않고 농촌에 사는 이에게 ‘보행권이 없다’는 말을 해보시라. 혹여 부모님이 농촌 출신이라면 어린 시절 ‘걸을 수 있는 권리’가 필요했는지 물어보시라. 직립보행은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이긴 하지만 걸을 수 있는 권리는 아주 생소한 말이다. 이 생소한 권리가 현대 사회의 특징 중 하나에서 나왔다. 바로 ‘도시’다. 그것도 역사시대 이후 이처럼 비대해진 적이 없는 도시 때문에.

유인원에서 현대인과 비슷한 직립보행을 하는 류로 진화하고서 인간에게 보행은 일반적인 행위이자 존재 형태였다. 물론 인간은 자연에서 직접 얻거나 자연을 이용해 얻는 자원과 식량 등이 늘어남에 따라 다스리는 존재와 다스림을 받는 존재로 나뉜다. 이 시기(역사 시대 전후) 이후 보행은 계급․계층적 성격을 띤다. 역사 시기마다 그 형태를 달리하지만 다스리는 이들에게 보행은 선택의 문제였다. 동물을 이용한 이동수단이 발달하고, 다스림을 받는 이가 다스리는 자(혹은 그 그룹)가 원하는 곳까지 이 이동수단으로 이동시켜줬다. 다스리는 자에겐 보행은 최소화되거나 이른바 ‘산책’이란 뜻에 가까웠다. 하지만 다스림을 받는 자, 혹은 생산물을 만드는 이에게 보행은 선택이 아닌 생존이자 생활이었다. 다스리는 자는 심지어 보행을 천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보행은 이렇게 이원화됐다. 근대 이전(심지어 근대 초기조차) 서구 사회든, 동양이든지 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행에 이렇게 이원적 모습을 나타냈더라도 여전히 ‘보행권’이란 말은 없거나 불필요했다. 다스리는 자이든, 다스림을 받는 자이든 자신이 원하면 언제 어디서든 별다른 장애 없이 걸을 수 있었다. 이 시기 ‘보행’은 팽창된 현대 도시 공간의 그것과는 구분된다. 지금이라도 농촌을 가면, 심지어 자신이 사는 뒷산만 가더라도 걷는 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이처럼 걸을 수 있는 권리란 말은 현대 이전, 그리고 지금처럼 급팽창된 현대 도시 공간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할 이유도 없었다. 만약 필요했다면 주로 보행하는 이들이던 다스림을 당하는 자들이 반란을 꾀한 프랑스 대혁명 때 ‘빵과 자유를 달라’와 함께 ‘마음 놓고 걷게 해달라’란 요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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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사회당 출신의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 시장은 주말이면 구도심을 중심으로 파리 곳곳을 보행자‧자전거 전용 도로로 만드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보행자가 안전하게 찾을 수 있으면 문화는 자연스레 생성된다. 사진은 주말 보행자 전용 도로가 된 곳에서 파리 젊은이들이 인라인스케이트로 묘기를 부리는 장면. /경남도민일보 유은상 기자


‘도시로, 도시로’ 팽창한 현대 도시에선 마음 놓고 걸을 자유가 없다

“(서울)시청에서 신촌까지 얼마 정도 걸리죠”라고 누군가 물어봤다고 가자. 대부분의 사람은 “지하철로 네 구간입니다” 혹은 “택시(버스)로 얼마 정도 걸립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여기에서 시간은 ‘걸어서 얼마’라는 의미가 들어있지 않다. 이처럼 이동속도는 걷는 속도가 아닌 전철이나 자동차(혹은 버스)에 의한 옮겨지는 속도이다. 도시민의 대다수는 이미 속도란 전철과 자동차가 달리는 속도에 맞춰져 있다.

자동차‧버스‧전철의 속도는 현대 도시를 이해하는 중요한 척도다. 현대 도시는 생산과 소비를 위해 고도로 압축된 공간이다. 자본의 집적과 집중을 위해 되도록 길은 직선이어야 한다. 또한 자본집적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과 생산을 위한 원자재, 그리고 만들어진 상품은 신속히 나르고 모아야 한다. 자본의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마산과 창원 같은 대공장이 많은 도시에서 80년대와 90년대 대중교통이 발달하고, 통근 버스가 발달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최대한 빠른 시간, 정확한 시간에 생산하는 이들을 이동시켜야 하기 때문에.

그 사이 사람들은 농촌에서 ‘도시로, 도시로’ 흡수됐다. 농촌인구는 87년 1000만에서 500만으로, 한국의 도시화율은 2005년 88.4%에 이르러 홍콩 같은 도시국가 형태의 도시를 제외하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사실상 한국민 절대다수는 도시민이다.

여기서 도시는 다시 한번 탈바꿈한다. 몇몇 이들의 특권으로만 여겨지던 자동차가 경제성장을 통해 일하는 이들에게도 주어진다. 이른바 80년대 말, 90년대 초의 ‘마이카 시대’가 한국에도 온 것이다. ‘마이카 시대’는 도시의 모습을 바꿔놓았다.

길은 또 확대된다. 이때에도 길은 보행로가 아닌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이다. 또한 차도 머물러야 하기에 계속 차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인 주차장을 확대해나갔다. 한계가 뚜렷한 도시 공간은 걷는 이들을 거의 배려하지 않았다.

농경사회에선 마을 입구나 중간에 있던 마을 공동 마당(경남 지역에선 이를 베꾸마당이라고 했다)에서 함께 어울려 놀 수 있었다. 이농 시대 도시에서 이런 풍경은 사라졌지만 대신 골목길이 그 아쉬움을 달랬다. 도시에서 아이들의 휴식처이나 놀이 공간이던 골목길마저 이 차가 마치 점령군처럼 지배해버렸다. 심지어 도로 위에 있던 건널목도 차의 이동 속도를 더 빨리 하려고 지하도나 육교로 바꾼다. 걷는 이들은 도시에서 삼류 인간으로 전락한다. 하지만 다행히 걷는 것은 이제 ‘해야만 하는 그 무엇’이 아닌 도시민 대다수에게 ‘선택의 문제’로 바뀐다. 최소한 걷기에선 도시민 누구나 돈의 많고 적음, 권력소유 유무와 상관없이 평등하다.

‘마이카 시대’의 도래는 기존 생산에만 필요하다고 여겼던 이들이 상품을 소비하는 데도 중요한 주체가 됐음을 알려줬다. 서울과 같은 몇몇 대도시에만 있던 백화점이 지역 주요도시에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아직 이 시기에는 백화점보다 주로 재래시장이나 저층 도심 상가 지에서 소비가 이뤄졌다. 그래서 쇼핑은 곧 평소보다 많이 걷기와 다름없었다. 사람들은 저층 도심 상가 지를 중심으로 보행하는 자유를 누렸다. 이곳에서 보행은 머무름과 만남을 의미했다. 저층 도심 상가지 거리는 평소 보기 어려운 이들을 자주 볼 수 있는 광장(혹은 과거 농촌의 마을 공동 마당)과 같은 역할을 했다. 물론 저층 도심 상가 지가 번성하면서 걷기가 항상 편한 것은 아니었다. 차들이 이곳을 심심찮게 지나가며 보행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최소한 이 시기 차들은 적지 않은 인파로 말미암아 이곳을 지나는 게 성가셔 다른 길로 피해 가는 아량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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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유럽 도시 중 보행자의 천국이자 트램(경전철)의 도시로 불리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시의 ‘쁘띠 프랑스’(작은 프랑스 혹은 아름다운 프랑스라는 뜻) 지역 전경. /경남도민일보 유은상 기자

하지만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대형마트는 대도시뿐만 아니라 지역 중소도시의 기성 저층 도심 상가 지의 상권을 붕괴시켰다. 상권 붕괴는 기존 도심 상가 지를 슬럼화시켰고, 동시에 상가지 거리조차 썰렁하게 만들었다. 최소한 이곳은 이제 사람들이 걷고, 머무르고, 서로 만나며 소통하고픈 매력적인 공간에서 제외된다. 도시민들은 보행할 권리를 빼앗겼는지 아닌지를 잊고 지하주차장에서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대한 보행이 적은 쇼핑을 한다.

머무를 자유, 소통할 자유를 위해 ‘보행권’이 필요하다

대도시든, 지역의 중소도시든 대중교통수단을 한 번도 이용하지 않고 걸어보시라. 아마도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지쳐 쓰러질 것이다. 조금만 걸으면 인도와 도로 사이를 가로지르는 지하주차장 입구가 가로막고, 저곳으로 가려고 무시무시한 지하도를 건너야 한다. 인도 곳곳을 가로막은 각종 입간판은 짜증을 더한다. 걷다가 조금 쉬고 싶지만 제법 돈을 지출해야하는 커피숍 같은 쉼터 이외는 땀을 식힐 장소가 거의 없다. 기성 상가 지를 간더라도 여전히 보행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라면 한 뼘의 광장도 잘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전국 곳곳 기성 상가 지들이 ‘보행자 전용거리’, ‘문화의 거리’ 등으로 새롭게 만들어져 보행자를 배려하려고 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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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아구찜 음식점이 즐비하고 고급 의류점이 많았던 마산의 대표적 기성 도심 상가 지였던 마산 오동동 문화의 거리 내 빈 점포가 갤러리로 변했다. 상권이 죽으면서 생긴 빈 점포는 씁쓸하지만 그 비워진 공간을 작품으로 채운 공공미술은 쓸쓸함을 그나마 줄인다.    /경남도민일보 김구연 기자


걷는다는 것은 반드시 머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도시에선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쉽게 찾기 어렵다. 걷기가 어렵고, 머물며 쉴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은 소통을 가로막는다. 머무름이 없는 공간에선 문화란 생성되지 않는다. 서로 만나서 손쉽게 얘기할 수 있는 시간도 그만큼 줄어든다. 자연스레 집, 직장, 대형 원스톱 쇼핑공간과 같이 몇몇 점과 점만이 의미가 있고, 다른 도시 공간은 무의미해진다. 만약 차를 운전하거나 차로 이동을 한다고 할 때 우리는 스쳐가는 공간을 자세히 기억할까. 그저 스치는 정도의 ‘봄’으로 머무른다. 마치 차를 타고 지나치는 풍경처럼 내가 사는 도시(혹은 지역)에 대해 ‘봄’이 적어지면 관심도 당연히 적어진다. 사는 공간에 대해 관심이 적은 이들에게 ‘지역 커뮤니티’는 있을 리 만무하다.

거꾸로 되짚어보자. 걷기는 머물 공간과 시간을 필요로 하고, 머무름은 소통과 문화를 생성시킨다. 또한 걷기는 ‘봄’을 더 많이, 깊게 만든다. 보는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느낀다. 느낀 만큼 관심은 다시 깊어지고, 그런 관심사를 공유하는 이들 사이에 ‘커뮤니티’는 자연스레 생성된다. 물론 인터넷 공간에서 하는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나타난 문화와 커뮤니티도 예상을 넘어 강력해지고 있다. 그렇더라도 얼굴을 보고 서로 만나서 하는 대면 접촉 소통만큼 강력할 순 없다. 이렇게 도시는 보행을 전제로 이농을 통해 잃은, 아니 현재 도시에 걸맞은 새로운 커뮤니티를 생성한다. 다소 확장하자면 이런 커뮤니티들이 지방자치, 혹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필수조건인지도 모르겠다.

도시는 걷고 싶은 공간으로 새롭게 꾸며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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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 2002년 마산‧창원 두 도시(생활권이 같은 두 곳 인구수를 합치면 약 100만이다)를 통틀어 가장 큰 기성 도심 상가 지였던 마산 창동에서 한 시민단체가 ‘청소년 거리축제’를 했다. 하지만 6년여 만에 마산 창동의 유동인구는 절반으로 줄었다. 그 사이 대형마트는 마산시에만 4개점이나 늘었다. /경남도민일보 김구연 기자

2005년 서울시가 보행권 확보를 위한 시범가로 사업을 한 ‘신촌 걷고 싶은 거리’에서 마주한 풍경이 있다. 차도와 보도를 자연스레 경계 지운 가로 벤치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 20대 초반 젊은 여성은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웃으며 계속 대화하고, 60대 남성은 신문을 펼쳐 보고 있었다. 가로 벤치라는 보행자를 위한 조그만 배려가 이렇듯 세대 간 다르면서도 뭔가 어울리는 듯한 묘한 풍경을 자아냈다. 걷고 머무름은 효율성 뒤로 가려졌던 또 다른 의미를 잉태한다.

또한 보행권은 현대 도시에선 새로운 문화를 생성시킨다. 걸을 수 없고, 머무를 공간이 없다면 문화는 그저 문화예술회관이나 대학로의 공연장들과 같이 몇몇 전문 예술인들이 만든 예술행위나 영화 같은 대중예술을 소비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다. 아니, 스스로 문화행위를 체험해보지 못한 이들이 이런 예술 소비에조차 적극적일까?

새로운 커뮤니티와 새로운 도시의 모습을 만들고 싶다면, 우리가 사는 도시는 걷고 싶은 공간으로 리모델링돼야 하지 않을는지.

/경남도민일보 이시우 기자

* 참고로 이 글에 있는 사진의 저작권은 경남도민일보사와 해당 사진부 기자에게 있음다. 혹여 퍼나르실 때는 꼭 출처를 밝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osted by 늘 축제였음..

저는 늘 부끄러운 존재였습니다. 역사에 반하던 대한민국 초기 위정자들에 의해 세워진 초대 정부, 그리고 겨우 싹을 띄운 4.19를 1년 만에 뒤엎은 군사정권, 그리고 제 국민을 죽이고 체육관에서 대통령이 된 80년대 전두환 정부, 6월 항쟁이라 잘 난 척 하지만 바뀐 것 하나 없이 군정의 내용상 연속적이던 노태우 정권, 그렇게 하다가 오랜 만에 선 문민정권이지만 야합으로 그친 김영삼 정권, 사회민주주의적으로 우리 사회를 만들 것으로 착각한 10년 간 민주당 야류 정권들. 그리고 대한민국의 위에 있지만 초기 정통성은 인정하지만 결국 경제 봉쇄와 정권의 연장을 위해 독재 체제로 전환한 이북 정권. 우리 국민이 부끄러웠고, 우리 나라가 부끄러웠던 게 대학 시절의 나날이었습니다. 그렇게 했건만 사회민주주의 초기 체계조차 못 만드는 부끄러운 정치와 함께.
  그 속에서 저는 늘 부끄러운 존재였습니다. 대한민국은 공화국입니다라는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를 대학 때 하면 마치 운동권이나 되는 듯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 교육은 그들에게, 제게 무의미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미국산 쇠고기 촛불시위를 보면서 다시 한번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 최소한 우리 국민, 내 이웃은 이미 성숙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그걸 잊어버린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그 부끄러움 때문에 지난 토요일 마산에서 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아니 이명박 정권 반대) 집회를 갔었습니다. 최소한 그 부끄러움을 잊고자 했지만 그럴 수가 없네요.
  저희 언론노조 경남도민일보지부(저는 거기서 사무국장을 하고 있음다)에서 무료로 배포한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현수막 장수가 이미 2100건이 넘었답니다. 그걸 보면서 가히 기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기자랍시고, 숨어있던 일상의 부끄러움을 대중은 그렇게 일깨워 주네요. 부끄러운 밤, 하지만 이번 만은 의회정치에 우리의 대의를 지켜줄 사람과 정당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국민적 사고변화를 함께 하는 축제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선험으로 판단하고, 선험으로 제단한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최소한 우리 국민은 우리나라가 공화국이라는 것을 이번 시위를 통해 제대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젠 부끄럽지 않게 얘기하고 싶네요. 대한민국은 공화국입니다. 국민이 주권을 가진....
  이명박 정권이 이 사실을 제대로 알아야할텐데....요.
  일 때문에 평일은 갈 수 없지만 이번 토요일에도 촛불 시위에 나가 대한민국이 공화국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부끄러운 맘으로 손을 내밀어봅니다. 제 자신에게 너와 그에게. 함께 촛불을 들자고.

Posted by 늘 축제였음..
서울 광화문,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는 촛불문화제가 3일 연속 심야시위로 바뀌고 있답니다. 이를 두고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불법시위, 친북좌파 세력 배후설을 연일 쏟아내고 있습니다.
  오늘 오전 MBN보도에서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소속 한 교수가 현재 상황이 최악의 경우 4.19혁명운동에 가까운 사태로까지 갈 수 있다고 예상하더군요. 그 이유로 4.19혁명운동은 당시 졍치세력과 무관하게 자생적인 민란에 가까운 마산 3.15의거(교수는 이 내용을 빼고 얘기해 제 견해로 넣습니다)와 자연발생적인 학생운동이 확장된 결과로 기존 정치세력장을 무너뜨렸다고 합니다. 또한 독재타도라는 단 하나의 구호가 갈수록 다양한 정치적 요구로 상승하는 정치운동으로 전환됐다고 하더군요.
  현재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운동은 자발적인 시민운동, 특히 연령대로는 10대, 40대 중심의 운동에서 시작해 정치적 요구가 강한 세대인 20.30대가 결합하면서 정치적 요구운동(다양한 정책비판이 담김)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해석하더군요. 여기에 90년대 중반 이후 정치영역을 의회 중심으로 수렴해 보려던 시민들이 다시 의회정치에 부정적 견해를 보이기 시작했답니다. 때문에 시민들은 80년대와 90년대 초에 있었던 것처럼 거리정치를 통해 정권과 직접적으로 대립하려고 시도하고, 이는 눈여겨볼 부분이라고 하더군요. 완충지대로써 의회(국회)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MBN에서 발언한 이 교수의 견해를 빌면 의회라는 대의정치에 기반한 정치운동의 전개에서 다시 거리시위를 통한 직접적인 정치적 요구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입니다. 지난 총선에서도 볼 수 있듯 시민들의 요구는 다양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의회로 상징되는 대의정치로의 수렴은 약화되고 있는 셈입니다. 이명박 정권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또다른 하나는 과거 시민사회의 요구는 명분 중심의 큰 의제였다면 이번 시위로 나타나는 것은 광우병 소 수입반대를 포함해 공교육 약화 반대(교육의 빈익빈 부익부 심화), 의료보험 개악 반대 등 자신과 직접적인 요구를 중심으로하는 생활 속 의제가 중심을 이룬다는 점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점도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놓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민의 정보획득 수준도 상당히 높아졌는데, 조중동과 정권은 친북좌파 세력의 배후설을 흘리며 국민이 마치 그들의 꼭두각시 수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친북좌파 세력에 대해 크게 지지하지도 않겠지만 설령 지지한다고 해도 그건 국민들의 정치적 선택이라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지요. MB정권이 국민에 대한 의식은 여전히 독재 시절 우민화된 국민 의식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 향후 상당한 저항으로 정권에게 돌아갈 것 같습니다.

  암튼 야당의원이 많았던 17대 국회에선 한나라당과 이 대통령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지만 18대 국회가 개원하면 이런 맥락에서의 국민적 저항은 다시 민란 수준으로 확대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이것도 국민들의 대의정치를 통해 선택한 현 정치체제에 대해 책임을 져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혁명이라는 직접적 체제전복이 아닌 이상 정치의 상당 부분은 대의정치에 기대야하는데, 국민들은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정치체제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뒷북일 수 있지만 하반기 상당한 민란으로 또다른 정치학습을 하겠지요. 우리국민은. 상당한 희생을 하고.
  이번 광우병 소 수입 촛불문화제에서 나온 무서운 구호가 하나있더군요. '독재타도'.
  독재타도는 그만큼 독재권력의 폭력적 통치체제에 대한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 국민들은 역사 속에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선택에 대해 희생을 각오한 정치학습이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겠지요. 공화국을 표방하는 한국에서 공화국의 미래 방향을 가늠할 희생이 올 하반기부터 새롭게 시작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희생에 저도 필요하다면 거부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만은 개죽음이 아닌 서민과 노동자의 요구가 의회 정치에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대의정치 체제의 일대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민란이 되길 바랍니다. 또한 그런 국민적 정치학습이 되었으면 하네요. 
Posted by 늘 축제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