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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28 참 오래간만에 광주 망월동 5.18 구묘역을 가다 1

광주 망월동 518 묘역을 가기 전 들른 한 식당. 이 곳은 닭가슴살육회, 닭볶음, 백숙 등 코스요리가 테이블당 3만5000원으로 저렴했다. 백숙만 4만 원 가까이하는 마산.창원 물가와 대조를 이루기도...

 

한 카페 회원들과 어제(927) 광주 망월동 구 5.18 묘역을 갔다 왔습니다. 정말 오래간만이었습니다. 그리고 광주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만나서 밤새도록 이런저런 얘기를 했답니다. 4년 전에는 다른 길로 가서 신 묘역은 가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신 묘역부터 갔습니다휘황찬란하더군요. 그 휘황찬란함 속에서 전 세계 어느 대통령도 묘역에서 웃지 않는데, 우리 이명박 사마()는 어찌나 대단하시던지 올해 5.18 기념식 때신 묘역에서 웃은 장면이 기억납니다. 광주 5.18을 통째로 밟고, 한국의 민주화를 모두 밟고 웃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시러벌 넘의 대통령. 천박의 극치를 달리는 짓을 하고도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모르는가끔 볼 수 있는 기독교 신자가 아닌 환자와 같은 모습... 등등이 떠올라 내내 불편했습니다.

10여 년 전 대학에 들어가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광주에 갔을 때였습니다. 5.18민중항쟁으로 민주화의 성지라고만 생각했는데, 낮은 건물에 거리에 그닥 없는 차들로 경제적으로 참 궁핍한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경남에서 자라고, 부모님 두 분 다 경남인 저로서는 그닥 집이 잘 살지도 못하는데, 죄를 지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산.창원에서 생활한 저로서는 더욱 그랬죠.

박정희 정권 이후로 위정자들이 경제성장에 대한 최소한의 과실조차 광주.전남에는 남기지 않았는지그래서 "호남사람들이 이토록 피해를 봤구나"라는. 호남인들의 경남, 혹은 경상도 사람들에 대한 집단적 피해의식은 그저 선험적이지 않은,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었구나 라 생각하면서 정말 죄스러웠습니다.
비록 우리 집이 잘 살지는 못했지만 호남, 혹은 광주가 아닌 마산.창원에 사는 것만으로도 광주분들보다는 경제적.문화적 혜택을 본 것이라고요.

그렇게 신 묘역을 살펴보고 나서 구 묘역을 갔습니다. 5.18 관련 단체들이 관리하던 94.5년과는 달리 애잔한 민중가요가 흘러나오지 않더군요.  신 묘역을 지나 구 묘역을 오니 그 입구에 촛불 정국서 분신을 시도해 지난 69일 끝내 숨을 거둔 고 이병렬 열사와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분신을 한 이용석 열사 묘가 있었습니다이용석 열사는 20033월 결성된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노조 광주전남본부장으로 공단 측의 부당노동행위와 교섭해태에 맞서 앞서서 싸우던 중 20031026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 민주노총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장에서 "비정규직 차별 철폐하라"고 외치 분신을 시도해 5일 뒤인 그해 1031일에 숨졌다고 하더군요. 잠시 이분들의 무덤앞에서 묵념을 한 뒤 혼자서 김남주 시인의 묘로 갔습니다. 당시 국문과 학생들 대부분이 그러했듯 저에게도 대학 때 우상과 같은 존재가 김남주 시인이었습니다. 비록 제가 대학에 입학하기 그 앞 해에 숨졌지만 늘 살아있는 듯한 느낌. 대학 때는 그의 묘 앞에 서서 울었지만 이번에는 울지 않았습니다. 4년 전 와서 그런지.... 대신 김남주 시인의 묘 비석을 신영복 선생이 썼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소주 '처음처럼'과 제가 다니는 신문사(경남도민일보사) 사시 "약한 자의 힘" 글씨체와 같더군요.

그렇게 묘역을 참배하고 북받쳐 오르는 무언가를 느끼며, 발길을 돌렸습니다. 참 무의미한 질문일 수 있는 그 무엇. "나는 뭘 하고 살지. 20살 때 김남주 시인 묘 앞에서 다짐했던 데로 살아가고는 있는지....."

담 글은 <광주 망월동을 가다 2>에서.

Posted by 늘 축제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