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참교육이야기 님이 찍은 우포늪(소벌)의 가시연꽃. 현재 우포늪에는 가시연꽃이 늪 전체를 뒤덮고 있다.

가시연꽃
요약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수련과의 한해살이풀.
학명 Euryale ferox
분류 수련과
분포지역 한국(경기·강원 이남)·일본·중국·인도·타이완 등지
서식장소 못이나 늪
크기 잎 지름 20∼200 cm
가시연꽃 / 7∼8월에 가시 돋친 꽃자루 끝에 1개의 자줏빛 꽃이 핀다.
본문

개연이라고도 하며, 못이나 늪에서 자란다. 풀 전체에 가시가 있고 뿌리줄기에는 수염뿌리가 많이 난다. 씨에서 싹터 나오는 잎은 작고 화살 모양이지만 큰잎이 나오기 시작하여 자라면 지름 20∼200 cm에 이른다. 잎 표면은 주름이 지고 광택이 나며, 뒷면은 짙은 자주색이다. 잎맥이 튀어나오고 짧은 줄이 있으며, 양면 잎맥 위에는 가시가 있다.

7∼8월에 가시 돋친 꽃자루 끝에 1개의 자줏빛 꽃이 피는데, 꽃잎이 많고 꽃받침조각보다 작다. 수술도 많아서 8겹으로 돌려나며, 8실의 씨방은 꽃받침 아래 위치한다. 열매는 길이 약 5∼7 cm로 둥글고 겉에 가시가 있으며 끝에 꽃받침이 남아 있다. 씨는 둥글고 열매 껍질은 검은색이다.

한방에서는 씨를 감실이라 하여 가을에 채취하여 강장제로 사용한다. 뿌리를 감인근, 잎을 감인엽이라 하여 약용하며 뿌리줄기는 식용한다. 한국 ·일본 ·중국 ·인도 ·타이완 등지에 분포한다.

한국에서는 전주·익산·대구·경산·광주·함평·나주·경기도 서해안·강릉 등지의 못에서 자생하였으나 수질 오염으로 멸종위기에 있다. 1986~1990년까지 5년간 실시한 제1차 자연생태계 전국조사 결과 대부분의 분포 지역에서 멸종되었거나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으로 밝혀졌다.

* 지난 8월 30일 경남블로그 컨퍼런스를 마치고 간 창녕 소벌(우포늪)에서 찍은 가시연꽃 사진은 참교육이야기님의 블로그에서 잘 볼 수 있음다. 그 중 하나만 보여드리면 아래와 같습니다.
  참교육이야기님이 찍은 가시연꽃과 우포늪 풍경은 여기를
Click 하셔요
그리고 참교육이야기님의 이 페이지 마지막(제일 밑)에 있는 식물이 연꽃이랍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연꽃은 물 위에 작은 잎이 있고, 그 위에 다시 줄기가 위를 향해 있으며, 맨 위에 다시 큰 잎으로 이뤄져 가시연꽃(수련과)이나 수련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 개구리 왕눈이는 어디서 놀았을까요? 무지개 연못에는 연꽃, 가시연꽃, 수련 중 어떤 것이 있었을까요?

 
*다음백과사전에서 본 가시연꽃


수련과(水蓮科 Nymphaeaceae)에 속하는 1년생수초.
가시연꽃속(─屬 Eruylale)을 이루는 단 하나의 종(種)이다. 뿌리줄기는 짧은 원통처럼 생겼다. 씨에서 싹터 나오는 잎은 처음에는 작은 화살 모양이지만 점점 커지면서 둥그런 원반 모양을 이루며 가시가 달린 잎자루가 잎 한가운데에 달린다. 잎의 지름은 20~120cm 정도이나 때때로 2m에 달하기도 한다. 잎 윗면은 주름이 지고 광택이 나지만 밑면은 진한 보라색을 띠며 맥이 두드러지게 나와 있다. 잎 양면에는 가시들이 잔뜩 나 있으며 특히 맥 위에 많다. 꽃은 7~8월에 피고 밝은 자주색을 띠며 가시가 달린 꽃자루 위에 핀다. 꽃은 낮에만 벌어져 있고 밤에는 닫히며 때로는 낮에도 벌어지지 않는 폐쇄화(閉鎖花)가 나타나기도 한다. 긴 타원형 열매의 겉에도 가시가 있으며 끝에는 꽃받침 흔적이 뾰족하게 남아 있다. 열매 안에 들어 있는 씨는 동그랗고 한쪽 끝은 희며 약간 오므라들었고 나머지 부분은 붉은 밤색이다. 뿌리줄기는 토란처럼 삶아 먹는다. 열매를 가시연밥이라고도 하며, 열매 속에 들어 있는 씨를 가을에 말린 것을 감인(嵌仁) 또는 검인(芡仁)이라고 하는데, 한방에서는 설사를 멈추게 하거나 허리와 무릎이 저리고 아픈 것을 치료하는 데 쓰고 있다. 감인을 가루로 만들어 꿀에 반죽한 것을 감인다식이라고 하며 감인가루 3홉과 쌀가루 1홉을 섞어서 죽으로 만든 것을 감인죽이라고 부른다.
申鉉哲 글
Posted by 늘 축제였음..

댓글을 달아 주세요

==AQgAIKpu8AjGIADBwYpD4whKiYhI26hMsoKMIwgjECohAyLr26rp

어제 저희 신문사(경남도민일보사)가 주최한 경남 블로거 공동체를 말한다 라는 주제의 컨퍼런스에 참여했습니다. 어제(토욜, 30일) 메인 행사였던 컨퍼런스를 마친 뒤 부대 행사로 창녕 소벌(우포늪) 방문이 있었습니다. 생애 처음 가본 뻘구디(뻘 구덩이의 경상도 방언^^)는 생각보다 컸고, 포근했습니다.
  그런 중 노... 씨라는 가이드께서 가시 연꽃 얘기를 해주면서 소벌 전체에 이 가시 연꽃이 뒤덮고 있다고 하더군요. 자줏빛 꽃이 핀 가시 연꽃을 보면서 좀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어릴 적 우상이자 '극복의 상징'인 개구리 왕눈이는 가시 연꽃 위에서 놀았을까, 아님 연꽃 위에서 놀았을까요.
  그 질문을 옆에 있는 분께 했다가 '돌(돌았나의 준말)' 취급 받았음다. 그래도 한번 추적해보렵니다. 재패니메이션(일본 애니) <개구리 왕눈이> 어떻게든 구해 꼭 확인해보겠음다. 기대해주3.
Posted by 늘 축제였음..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늘 축제였음.. 2008.09.01 14: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송함다. 어제밤 찾아보다 결국 못 찾았음다. 오늘 일 마치고 다시 도전해보겠음다.

23일 언론노조 경고 파업 집회 참석뒤 다음 부산.경남 아고라에 남긴 글임다.

23일 언론노조 주최로 "언론 장악저지, 지역언론 사수"를 위한 '이명박, 함 붙자'라는 제목으로 언론노조 경고파업을 갔다왔습니다. 오후 2시30분에는 최근 기획재정부가 지역신문발전지원법에 의한 내년 기금을 전액 삭감하고, 신문법에 의한 신문발전기금을 전액 삭감한 테러에 항의하고자 한나라당사 앞에서 지역신문 노동자들이 중심이 돼 기자회견 겸 약식집회를 했음다. 그 뒤 바로 세종문화예술회관으로 이동해 언론노조 주최 경고파업 집회에 참석했음다. 언론노조 전체 조합원이 1만 8000명인데, 이날 경고성 파업이라 1000여 명이 모였습니다. 저희 언론노조 경남도민일보 지부 조합원(전체 76명)들도 부분파업을 하며 현업을 중단하고 14명이 서울집회에 참여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언론노조 주최 집회 중 가장 많은 인원이 모였고, 강한 메시지와 투쟁 결의가 이어졌습니다. 참고로 언론노조는 2001년 산별노조로 새롭게 재편하면서 실질적인 전면파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보도매체 종사자 상황은 이렇습니다. 첫째는 보도매체의 공공성을 이명박 정권에 의해 심각히 훼손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바로 방송통신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한국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이명박의 형님(멘토)인 최시중을 낙하산으로 앉힌 것이고, 대선 때 이명박 언론특보였던 구본홍을 낙하산 사장으로 앉힌 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방송 광고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에도 KBS창원본부장 출신이자 대선 당시 언론특보였던 양휘부를 앉혔습니다. 그리고 임원들도 줄줄이 MB낙하산 인사로 채워졌습니다.한국방송광고공사는 현행 방송법에 의해 광고주들로부터 일괄 방송광고를 수주받아 지배적 매체(지상파 방송사)인 KBS, MBC, SBS에도 광고를 나눠주고, 이와 동시에 시장지배적 매체이지 않은 지역민간방송(KNN 등)이나 불교방송, 기독교방송, 그리고 라디오에도 광고를 일정 비율로 나눠줍니다. 이를 통해 방송사가 직접 광고를 수주하지 않고, 다양한 매체가 공존할 수 있는 생존의 토대를 만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낙하산 인사로도 모자라 이 방송광고공사를 해체하고, 민간자본이 운영하는 제2의 민간방송광고사(민영 미디어렙)를 허용해 방송 광고의 무한 경쟁을 도입하겠다고 합니다. 이는 방송의 공공성을 무시하고 시장주의를 통해 일부 방송만 남기겠다는 의도입니다. 이렇게 되면 지역의 MBC, 지역민방(KNN 등)은 직접 광고수주를 해야해서 그간 눈돌리지 않았던 지역광고시장에도 눈을 돌리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상대적 약자인 지역일간지들은 순식간에 지역 광고시장에서 퇴출되며, 지역 일간지도 생존할 수 없게 되죠. 하지만 문제는 지금껏 좋건 싫건 지역 뉴스의 70-80% 이상을 방송 기자가 아닌 지역신문 기자에 의해 생산됐다는 사실입니다. 지역일간지가 사라진다면 지역민들은 이제 기존 지역정보의 20-30% 정도만을  접할 수 있어 비수도권에 산다는 것 자체가 문화다양성, 정보다양성이라는 시민으로의 기본적이고, 보편적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불평등한 삶을 살게 됩니다. 더욱이 지역 권력자(혹은 토호세력)들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사라져 지역은 그야말로 토호들이 모든 것을 독점하는 세상이 되겠지요.

  또한 최근에는 조중동의 불법경품으로 인해(이는 시장지배적 회사가 공정하지 않은 불법적 유통행위를 통해 독과점을 더욱 확대하는 행위로 현 공정거래법으로도 위반되는 사항입니다) 고사직전인 신문시장을 정상화하고 신문의 공공성 확보를 위해 일정 조건을 갖춘 신문사들에게 직간접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노무현 정권 때 학계, 언론시민단체, 신문종사자들이 장시간 머리를 맞대 만든 신문법과 지역신문법에 의한 발전 기금 내년 예산을 기획재정부가 전액 삭감했습니다. 법의 실질적인 지원책이 되는 기금을 삭감해 법을 무력화시킨 것 입니다.

  그래서 현재 조건은 보도매체의 공공성 사수와 함께 보도매체 종사자, 특히 지역보도매체(방송.신문) 종사자에게는 생존권을 지킬 수밖에 없는 생존권 투쟁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독재적 성격으로 인한 언론 장악 음모와 룰도 없는 절대적인 시장주의 정책으로 인한 다수 보도매체 종사자들의 생존권 위협이 동시다발로 이뤄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언론노조는 이날 경고파업 만이 아니라 하반기 실질적인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날 오후 4시 경고파업 집회에 갔을 때 최소한 MBC, SBS, 한겨레, 경향, 각 지역 방송사, 그리고 경남도민일보 등 일부 지역일간지 노조는 실질적인 총파업을 할 수 있겠다는 분위기가 느껴졌음다. 하반기 언론노조가 산별노조 전환 이후 처음으로 전면파업을 통해 이명박 정권의 심갃한 언론 공공성 훼손을 저지하고, 보도매체 종사자들의 생존권 사수를 해나갈 것입니다. 말만이 아니라 우리 보도매체 종사자들이 촛불들의 요구에 의해 전면에 나설 것입니다. 이명박 정권에 실질적인 위협을 우리 노조가 시작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암튼, 이날 1000여 명의 언론노조 종사자들은 촛불에 부끄러워서라도 투쟁의 전면에 나서야한다는 생각을 더욱 굳혔습니다.

  그리고 다시 청계광장으로 가서 보건의료산업 노조 조합원들과 서울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들었습니다. 거제에서 왔다는 대우조선 노동자 한 분(얘기하는 스탈은 노조 간부는 아닌 듯 했습니다)이 자유발언에서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언론이 중요합니다. 알짜배기 대우조선해양을 정부가 해외투기자본이나 국내 독점자본에게 팔아먹으려합니다. 이게 국민으로선 얼마나 손실인지 아셔야합니다. 우리는 국민기업으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거제 대우조선에서 먼저 사회 공공성 확보를 위한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언론 노동자들이 이걸 제대로 알려주십시오."

 또 한 명의 자유발언자였던 보건의료산업노조 위원장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보건의료산업노조는 사실 임금협상보다 최근에는 국민의 공공적 서비스인 의료 공공성 사수와 확보를 위해 더많은 교섭을 했는데, 언론은 그 사실을 보도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는 기적같이 조중동을 제외한 상당수 보도매체가 우리의 이런 파업 투쟁을 제대로 보도해주었습니다.  파업과 교섭을 하면서 올해처럼 이렇게 행복한 날은 투쟁을 하는 때는 없었습니다. 언론노조 동지들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이렇게 사실보도에 충실해주십시오"라고 하더군요.

  사실 보건의료산업노조는 민주노총 산하 산별노조 중 어느 곳보다 임금투쟁보다는 의료공공성 확보와 사수를 위해 파업을 해온 곳이었는데, 국민들이 그 사실을 우리 언론의 게으름으로 인해 잘 몰랐거든요. 보건의료산업노조 위원장의 그 말을 듣고 부끄러워서 눈물이 나려고 하더군요. 암튼 그렇게 촛불집회가 거의 마칠 즈음 오후 9시 30분께 버스로 다시 마산으로 왔습니다.


이상 간단한 서울 집회 참석한 후일담을 우리 경남 아고리언들에게 들려드립니다. 많이 길었는데, 지송. 그리고 마산-다단계 님이 한국방송광고공사 해체와 28일 있을 IPTV 법제화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왜 지금 2mB 정권이 밀어붙이는 것처럼 하면 언론 공공성이 심각하게 훼손되는지 계속 써서 올리라고 보채시는데요, 일반 시민들에겐 생소한 용어들(대부분 영어임다)이  많아 풀어서 조만간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기사는 23일 서울 집회에 대한 글.사진.동영상이 있는 경남도민일보 24일자 기사와 언론노보에 실린 기사들입니다. 링크만 시키겠음다. 저작권 문제 때문에 바로 그


페이지로 가도록 타겟팅해놓겠음다.


  언론노보 “권력과 자본의 시녀로 전락할 것인가!”


 언론노보 "언론노조, 지역신문발전기금 삭감 기도 규탄"


 경남도민일보 24일자 "지역신문발전기금 삭감에 반발 거세"


  경남도민일보 24일자 "

"지역신문 죽이는 정부·한나라당 규탄"

언론노조 지역신문협 한나라당사 앞 기자회견
"발전기금 전액 삭감, 지역언론 말살 정책" 성토


경남도민일보 24일자 김범기 기자 취재수첩 ""한판 붙자! 이명박"


경남도민일보 23일자 사설 "이명박 정부 '언론장악' 음모 중지해야"

Posted by 늘 축제였음..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1 프랑스 파리 구도심 거리 대부분이 주말이면 2차로를 1차로 일방통행로로 바꿔 보행자들(관광객이 많음)이 보다 쉽게 걷도록 배려한다. /경남도민일보 유은상 기자


이 글은 한국토지공사와 국토해양부가 공동으로 펴내는 격월간지 <시민과 도시> 7.8월호에 낸 기고글입니다. 토공으로부터 먼저 제 블로그에 올려도 된다고 양해를 받아서 우선 이 곳에 올리고, 뒤에 책에 실렸습니다.


역설적이지만 보행은 머무름이자 소통이다

- 부제: 보행이 지닌 도시 문화적 의미

글쓰기에 앞서

지난 20069월 초 9일간의 일정으로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주최한 ‘살고 싶은 지역 만들기 일본연수’에 참여했었다. 연수에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부위원장과 담당자,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살고 싶은 지역 만들기’ 실무팀, 광역‧지역 일간지, 일본 마을만들기 국내 전문가들이 함께했었다. 이 마을만들기에 기초해서 행자부, 농림부(현 농림해양수산부),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는 각종 사업을 2년 가까이 펼치고 있다. 현 시점에서 중앙정부 중심의 다양한 ‘마을만들기’(혹은 도시는 창조도시) 프로젝트가 얼마나 일관성 있고, 그 정책 취지에 맞는지 점검할 때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점검이 혹여 이 프로젝트의 지향점마저 버리지는 않았으면 한다. 이 부분은 청탁받은 내용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이쯤으로 줄이겠다. 어떻든 이 글이 그 점검에 작으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

보행은 있었지만 보행권은 없었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메트로폴리탄), 심지어 내가 사는 공간인 마산.창원과 같은 중간 규모의 도시에 살지 않고 농촌에 사는 이에게 ‘보행권이 없다’는 말을 해보시라. 혹여 부모님이 농촌 출신이라면 어린 시절 ‘걸을 수 있는 권리’가 필요했는지 물어보시라. 직립보행은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이긴 하지만 걸을 수 있는 권리는 아주 생소한 말이다. 이 생소한 권리가 현대 사회의 특징 중 하나에서 나왔다. 바로 ‘도시’다. 그것도 역사시대 이후 이처럼 비대해진 적이 없는 도시 때문에.

유인원에서 현대인과 비슷한 직립보행을 하는 류로 진화하고서 인간에게 보행은 일반적인 행위이자 존재 형태였다. 물론 인간은 자연에서 직접 얻거나 자연을 이용해 얻는 자원과 식량 등이 늘어남에 따라 다스리는 존재와 다스림을 받는 존재로 나뉜다. 이 시기(역사 시대 전후) 이후 보행은 계급․계층적 성격을 띤다. 역사 시기마다 그 형태를 달리하지만 다스리는 이들에게 보행은 선택의 문제였다. 동물을 이용한 이동수단이 발달하고, 다스림을 받는 이가 다스리는 자(혹은 그 그룹)가 원하는 곳까지 이 이동수단으로 이동시켜줬다. 다스리는 자에겐 보행은 최소화되거나 이른바 ‘산책’이란 뜻에 가까웠다. 하지만 다스림을 받는 자, 혹은 생산물을 만드는 이에게 보행은 선택이 아닌 생존이자 생활이었다. 다스리는 자는 심지어 보행을 천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보행은 이렇게 이원화됐다. 근대 이전(심지어 근대 초기조차) 서구 사회든, 동양이든지 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행에 이렇게 이원적 모습을 나타냈더라도 여전히 ‘보행권’이란 말은 없거나 불필요했다. 다스리는 자이든, 다스림을 받는 자이든 자신이 원하면 언제 어디서든 별다른 장애 없이 걸을 수 있었다. 이 시기 ‘보행’은 팽창된 현대 도시 공간의 그것과는 구분된다. 지금이라도 농촌을 가면, 심지어 자신이 사는 뒷산만 가더라도 걷는 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이처럼 걸을 수 있는 권리란 말은 현대 이전, 그리고 지금처럼 급팽창된 현대 도시 공간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할 이유도 없었다. 만약 필요했다면 주로 보행하는 이들이던 다스림을 당하는 자들이 반란을 꾀한 프랑스 대혁명 때 ‘빵과 자유를 달라’와 함께 ‘마음 놓고 걷게 해달라’란 요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2. 사회당 출신의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 시장은 주말이면 구도심을 중심으로 파리 곳곳을 보행자‧자전거 전용 도로로 만드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보행자가 안전하게 찾을 수 있으면 문화는 자연스레 생성된다. 사진은 주말 보행자 전용 도로가 된 곳에서 파리 젊은이들이 인라인스케이트로 묘기를 부리는 장면. /경남도민일보 유은상 기자


‘도시로, 도시로’ 팽창한 현대 도시에선 마음 놓고 걸을 자유가 없다

“(서울)시청에서 신촌까지 얼마 정도 걸리죠”라고 누군가 물어봤다고 가자. 대부분의 사람은 “지하철로 네 구간입니다” 혹은 “택시(버스)로 얼마 정도 걸립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여기에서 시간은 ‘걸어서 얼마’라는 의미가 들어있지 않다. 이처럼 이동속도는 걷는 속도가 아닌 전철이나 자동차(혹은 버스)에 의한 옮겨지는 속도이다. 도시민의 대다수는 이미 속도란 전철과 자동차가 달리는 속도에 맞춰져 있다.

자동차‧버스‧전철의 속도는 현대 도시를 이해하는 중요한 척도다. 현대 도시는 생산과 소비를 위해 고도로 압축된 공간이다. 자본의 집적과 집중을 위해 되도록 길은 직선이어야 한다. 또한 자본집적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과 생산을 위한 원자재, 그리고 만들어진 상품은 신속히 나르고 모아야 한다. 자본의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마산과 창원 같은 대공장이 많은 도시에서 80년대와 90년대 대중교통이 발달하고, 통근 버스가 발달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최대한 빠른 시간, 정확한 시간에 생산하는 이들을 이동시켜야 하기 때문에.

그 사이 사람들은 농촌에서 ‘도시로, 도시로’ 흡수됐다. 농촌인구는 87년 1000만에서 500만으로, 한국의 도시화율은 2005년 88.4%에 이르러 홍콩 같은 도시국가 형태의 도시를 제외하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사실상 한국민 절대다수는 도시민이다.

여기서 도시는 다시 한번 탈바꿈한다. 몇몇 이들의 특권으로만 여겨지던 자동차가 경제성장을 통해 일하는 이들에게도 주어진다. 이른바 80년대 말, 90년대 초의 ‘마이카 시대’가 한국에도 온 것이다. ‘마이카 시대’는 도시의 모습을 바꿔놓았다.

길은 또 확대된다. 이때에도 길은 보행로가 아닌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이다. 또한 차도 머물러야 하기에 계속 차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인 주차장을 확대해나갔다. 한계가 뚜렷한 도시 공간은 걷는 이들을 거의 배려하지 않았다.

농경사회에선 마을 입구나 중간에 있던 마을 공동 마당(경남 지역에선 이를 베꾸마당이라고 했다)에서 함께 어울려 놀 수 있었다. 이농 시대 도시에서 이런 풍경은 사라졌지만 대신 골목길이 그 아쉬움을 달랬다. 도시에서 아이들의 휴식처이나 놀이 공간이던 골목길마저 이 차가 마치 점령군처럼 지배해버렸다. 심지어 도로 위에 있던 건널목도 차의 이동 속도를 더 빨리 하려고 지하도나 육교로 바꾼다. 걷는 이들은 도시에서 삼류 인간으로 전락한다. 하지만 다행히 걷는 것은 이제 ‘해야만 하는 그 무엇’이 아닌 도시민 대다수에게 ‘선택의 문제’로 바뀐다. 최소한 걷기에선 도시민 누구나 돈의 많고 적음, 권력소유 유무와 상관없이 평등하다.

‘마이카 시대’의 도래는 기존 생산에만 필요하다고 여겼던 이들이 상품을 소비하는 데도 중요한 주체가 됐음을 알려줬다. 서울과 같은 몇몇 대도시에만 있던 백화점이 지역 주요도시에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아직 이 시기에는 백화점보다 주로 재래시장이나 저층 도심 상가 지에서 소비가 이뤄졌다. 그래서 쇼핑은 곧 평소보다 많이 걷기와 다름없었다. 사람들은 저층 도심 상가 지를 중심으로 보행하는 자유를 누렸다. 이곳에서 보행은 머무름과 만남을 의미했다. 저층 도심 상가지 거리는 평소 보기 어려운 이들을 자주 볼 수 있는 광장(혹은 과거 농촌의 마을 공동 마당)과 같은 역할을 했다. 물론 저층 도심 상가 지가 번성하면서 걷기가 항상 편한 것은 아니었다. 차들이 이곳을 심심찮게 지나가며 보행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최소한 이 시기 차들은 적지 않은 인파로 말미암아 이곳을 지나는 게 성가셔 다른 길로 피해 가는 아량은 보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3. 유럽 도시 중 보행자의 천국이자 트램(경전철)의 도시로 불리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시의 ‘쁘띠 프랑스’(작은 프랑스 혹은 아름다운 프랑스라는 뜻) 지역 전경. /경남도민일보 유은상 기자

하지만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대형마트는 대도시뿐만 아니라 지역 중소도시의 기성 저층 도심 상가 지의 상권을 붕괴시켰다. 상권 붕괴는 기존 도심 상가 지를 슬럼화시켰고, 동시에 상가지 거리조차 썰렁하게 만들었다. 최소한 이곳은 이제 사람들이 걷고, 머무르고, 서로 만나며 소통하고픈 매력적인 공간에서 제외된다. 도시민들은 보행할 권리를 빼앗겼는지 아닌지를 잊고 지하주차장에서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대한 보행이 적은 쇼핑을 한다.

머무를 자유, 소통할 자유를 위해 ‘보행권’이 필요하다

대도시든, 지역의 중소도시든 대중교통수단을 한 번도 이용하지 않고 걸어보시라. 아마도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지쳐 쓰러질 것이다. 조금만 걸으면 인도와 도로 사이를 가로지르는 지하주차장 입구가 가로막고, 저곳으로 가려고 무시무시한 지하도를 건너야 한다. 인도 곳곳을 가로막은 각종 입간판은 짜증을 더한다. 걷다가 조금 쉬고 싶지만 제법 돈을 지출해야하는 커피숍 같은 쉼터 이외는 땀을 식힐 장소가 거의 없다. 기성 상가 지를 간더라도 여전히 보행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라면 한 뼘의 광장도 잘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전국 곳곳 기성 상가 지들이 ‘보행자 전용거리’, ‘문화의 거리’ 등으로 새롭게 만들어져 보행자를 배려하려고 해 다행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4. 아구찜 음식점이 즐비하고 고급 의류점이 많았던 마산의 대표적 기성 도심 상가 지였던 마산 오동동 문화의 거리 내 빈 점포가 갤러리로 변했다. 상권이 죽으면서 생긴 빈 점포는 씁쓸하지만 그 비워진 공간을 작품으로 채운 공공미술은 쓸쓸함을 그나마 줄인다.    /경남도민일보 김구연 기자


걷는다는 것은 반드시 머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도시에선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쉽게 찾기 어렵다. 걷기가 어렵고, 머물며 쉴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은 소통을 가로막는다. 머무름이 없는 공간에선 문화란 생성되지 않는다. 서로 만나서 손쉽게 얘기할 수 있는 시간도 그만큼 줄어든다. 자연스레 집, 직장, 대형 원스톱 쇼핑공간과 같이 몇몇 점과 점만이 의미가 있고, 다른 도시 공간은 무의미해진다. 만약 차를 운전하거나 차로 이동을 한다고 할 때 우리는 스쳐가는 공간을 자세히 기억할까. 그저 스치는 정도의 ‘봄’으로 머무른다. 마치 차를 타고 지나치는 풍경처럼 내가 사는 도시(혹은 지역)에 대해 ‘봄’이 적어지면 관심도 당연히 적어진다. 사는 공간에 대해 관심이 적은 이들에게 ‘지역 커뮤니티’는 있을 리 만무하다.

거꾸로 되짚어보자. 걷기는 머물 공간과 시간을 필요로 하고, 머무름은 소통과 문화를 생성시킨다. 또한 걷기는 ‘봄’을 더 많이, 깊게 만든다. 보는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느낀다. 느낀 만큼 관심은 다시 깊어지고, 그런 관심사를 공유하는 이들 사이에 ‘커뮤니티’는 자연스레 생성된다. 물론 인터넷 공간에서 하는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나타난 문화와 커뮤니티도 예상을 넘어 강력해지고 있다. 그렇더라도 얼굴을 보고 서로 만나서 하는 대면 접촉 소통만큼 강력할 순 없다. 이렇게 도시는 보행을 전제로 이농을 통해 잃은, 아니 현재 도시에 걸맞은 새로운 커뮤니티를 생성한다. 다소 확장하자면 이런 커뮤니티들이 지방자치, 혹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필수조건인지도 모르겠다.

도시는 걷고 싶은 공간으로 새롭게 꾸며 져야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5. 2002년 마산‧창원 두 도시(생활권이 같은 두 곳 인구수를 합치면 약 100만이다)를 통틀어 가장 큰 기성 도심 상가 지였던 마산 창동에서 한 시민단체가 ‘청소년 거리축제’를 했다. 하지만 6년여 만에 마산 창동의 유동인구는 절반으로 줄었다. 그 사이 대형마트는 마산시에만 4개점이나 늘었다. /경남도민일보 김구연 기자

2005년 서울시가 보행권 확보를 위한 시범가로 사업을 한 ‘신촌 걷고 싶은 거리’에서 마주한 풍경이 있다. 차도와 보도를 자연스레 경계 지운 가로 벤치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 20대 초반 젊은 여성은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웃으며 계속 대화하고, 60대 남성은 신문을 펼쳐 보고 있었다. 가로 벤치라는 보행자를 위한 조그만 배려가 이렇듯 세대 간 다르면서도 뭔가 어울리는 듯한 묘한 풍경을 자아냈다. 걷고 머무름은 효율성 뒤로 가려졌던 또 다른 의미를 잉태한다.

또한 보행권은 현대 도시에선 새로운 문화를 생성시킨다. 걸을 수 없고, 머무를 공간이 없다면 문화는 그저 문화예술회관이나 대학로의 공연장들과 같이 몇몇 전문 예술인들이 만든 예술행위나 영화 같은 대중예술을 소비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다. 아니, 스스로 문화행위를 체험해보지 못한 이들이 이런 예술 소비에조차 적극적일까?

새로운 커뮤니티와 새로운 도시의 모습을 만들고 싶다면, 우리가 사는 도시는 걷고 싶은 공간으로 리모델링돼야 하지 않을는지.

/경남도민일보 이시우 기자

* 참고로 이 글에 있는 사진의 저작권은 경남도민일보사와 해당 사진부 기자에게 있음다. 혹여 퍼나르실 때는 꼭 출처를 밝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osted by 늘 축제였음..

댓글을 달아 주세요

경향신문 7월 15일자 1.4.5면에 배치된 기획기사 '한국인 절반 이렇게 산다-비정규직 800만 시대'를 보면 한국 노동자의 54%가 비정규직으로 산다고 되어 있습니다. 물론 경향신문의 54%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것을 인용한 것인데요, 노동부와 통계청 등 정부기관과는 다소 차이를 드러냅니다. 이는 상용직 노동자의 범위와 학습지 교사, 화물차 기사, 덤프트럭 기사 등과 같은 특수고용직을 노동자로 분류할 지, 자영업자로 분류할 지 등에 따른 차이입니다. 이를 테면 원청 업체로부터 실질적인 인사노무관리와 작업지시를 받으면서도 파견 업체의 노동자로 있는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는 노동부는 정규직으로 보지만 그 내용으로는 사실상 비정규직과 다를바 없어 광의의 비정규직으로 노동계는 분류하고 있죠. 그렇게 본다면 54%라는 것이죠.
  제가 왜 뜬금없이 정규직 노동자 파업 얘기를 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 얘기를 할까요? 어제 오늘 YTN에서 현대차노조(금속노조 현대차 지부)가 4시간 부분 파업을 한다면 보도가 뉴스 타임마다 나왔습니다. 그런데, 왜 파업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언급이 없었습니다. 기사로서도 이런 최악의 기사는 없다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왜 파업을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더군요. 아무리 들어도. 같은 동종 업종 종사자로서 부끄러움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저희 지부장(언론노조 경남도민일보 지부)은 어제 YTN 구본홍 사장 내정자 낙하산 선임 반대를 위해 서울 출장을 가서 선임 저지투쟁(이른바 몸빵이죠)을 하러갔는데, 그 사실이 왠지 서글퍼지더군요.
  현대차와 기아차, GM대우 노조(금속노조 소속 지부)가 왜 4시간 파업을 할까요. 금속노조 올해 중앙교섭은 타결을 했는데도 말입니다. 각 사업장 사용자가 금속노조 산업별 중앙교섭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노조 형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개별 사업장 중심의 기업별 노조체계에서 산업별 단일 노조형태로 상당수 전환을 했습니다. 따라서 중앙교섭은 사회적 수준에서 사용자와 노동자 대표가 교섭을 하는 것이고, 각 지부(기존 기업별 노조들)들은 각 사에 맞는 임금이나 복지 수준을 보충교섭을 통해 획득합니다. 노동조합은 산업별 형태로 전환해 이에 걸맞는 교섭을 요구하는데, 사용자들은 협의회든, 연합회든 연합체계를 통해 교섭을 하려 않거든요. 노조의 형태가 기존과 질적으로 다르면 그 교섭 틀도 바뀌게 마련인데, 어떻게 보면 완성차 4사 사용자들이 그 교섭 틀을 거부하거나 노사관계가 사회적 합의 형태가 되지 않기 위해 완강히 저항하는 것입니다. 왜냐, 기존 기업별 노조 형태는 그 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들 수준에서 의제가 한정되지만 산업별 중앙교섭은 그 산업의 최저임금을 정하고, 복지, 근로조건의 최저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기 때문에 교섭 자체가 사회적 의제 수준으로 확장됩니다. 그만큼 그 결과가 전체 사용자들에게 적용이 많이 되는 겁니다. 물론 현재는 산별 노조 전환 초기인데다, 현대차,기아차 등 완성차 4사 등과 같은 대형 사업장 사용자들의 산별 교섭 거부로 교섭 틀이 정착되진 않았습니다. 일종의 과도기죠.
  특히 금속노조든, 언론노조든, 아님 보건산업의료노조든 산업별 교섭의 중요성은 오히려 서두에서 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최저 노동조건을 향상시키고 강제하는데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섭 수준이 사회적 의제로 확장된다는 것이죠.
  이번 현대차, 기아차, GM대우 노조, 쌍용차 노조 등 완성차 4사 노조(금속노조 각 지부)가 4시간 부분 파업을 하는 이유는 역으로 대형 사업장 사용자들을 중앙교섭에 참여시켜 기존 기업 수준의 교섭의제를 사회적 수준으로 확장하기 위한 계기를 만들기 위한 압박입니다. 파업을 위한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불법으로 규정되기도 어렵습니다. 그들 조합원으로 보면 이런 사회적 의제 확장을 위한 노력에도 정규직 노동자가 있는 노조이자 대형사업장이기 때문에 파업이 잘못 됐다고 하면 얼마나 억울할까요. 또한 아무런 내용도 없이 파업한다는 것으로만 기사가 나가면 얼마나 황당할까요. 보도매체 종사자들(특히 기자)에 대해 얼마나 분노감이 들까요. 보도매체 종사자들 대다수(조중동을 제외한 기성보도매체)도 언론노조 조합원으로 있으면서 노동조합과 파업에 대한 이해력은 정말 초등학생 수준이지 않습니까. 이쯤 되면. 더욱이 여기에도 어려운 비정규직들도 있는데, 정규직 대공장 노동자들이 마녀사냥 당하듯이 무조건 '돈 한 푼 더 벌려고 파업한다'라는 이미지만 심어주면 이들 노조는 얼마나 화가 날까요.

  지인들과 술자리 등에서 얘기를 하다보면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욕설이 장난이 아닙니다. 경향신문 5면 기사를 봐도 노조는 비정규직에게 차라리 사치라고 합니다.
  저는 가끔 주류 미디어(물론 제가 일하는 공장인 경남도민일보도 이 단어의 얹저리에 있진 않는지 고민이 됩니다)의 기사작성 행태를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힘겹게, 어려운 삶을 산다고 정규직 노동자들, 아니 모든 노동자, 아니 거의 모든 국민이 그렇게 살아야한다는 것인지 뭔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마디로 노동이나 파업관련 기사에서 한국 미디어들은 골때립니다. 노동3권은 서구에서도 인권 중 가장 큰 부분으로 인정(이른바 사회적 권리로 인정되죠)하는 것인데, 이런 인권의식도 없이 협의의 인권 얘기하는 미디어 종사자들은 인권 공부 처음부터 다시해야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정규직 노동자들이 주류 미디어들이 제시하는 데로 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와 상황이 나아질까요. 앞서 산별 교섭을 얘기했듯이 더 악화되었으면 될 것입니다. 사용자로서는 더욱 싼 임금으로 아무런 저항없이 노동자를 부려먹을 수 있으니 기꺼이 그렇게 되길 바라겠죠. 그래서 그런 기사의 맨 밑까지 가면 결국 사용자 중심의 이데올로기가 자리를 잡고 있다는 얘기를 하겠죠.


  물론 잘잘못을 따지거나 이데올로기 수준을 얘기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최소한 내용이라도 전달하자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YTN 현대차노조 파업 관련 기사 정말 X입니다.

 끝으로 비정규직이 이처럼 대량 양산된 것에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책임이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향 평준화로 가자는 게 정답이 될 수 있을는지, 책임을 지우는 내용이 달라야하지 않을는지'라는 생각도 함께 드네요.

관련사설 경남도민일보 7월 17일자 사설 '비정규직 해법은 없는가'(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60072)

Posted by 늘 축제였음..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학원 <영화서사학> 수업 올해 상반기 리포터 였음다.  좀 깁니다. 지송. **^^

              글 차례

Ⅰ 베르톨루치의 68혁명에 관한 또 다른 플래시 백

- 작품 기본 정보

Ⅱ 68혁명의 문화 혁명적 성격이 나타나는 단초

-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앙리 랑글루아 관장 해임 사건

Ⅲ 영화 서사 분절(전개)

- 시퀸스, 씬(S#)별 정리.

Ⅳ <몽상가들>에 나온 매슈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

- 영화 서술적 특징과 초점화, 공간의 문제

Ⅴ <몽상가들>에 나타난 삽입 영화와 음악

-영화 속 영화 인용과 인물과의 관계, 음악(음향)의 역할

맺음말 <몽상가들>의 모호한 열린 구조

-젊음, 섹스, 혼돈, 혁명 사이에서 흔들리는 베르톨루치






영화 <몽상가들> 속 보이스오버와 영화·음악 차용

Ⅰ 베르톨루치의 68혁명에 관한 또 다른 플래시 백

- 작품 기본 정보

2003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몽상가들>이 영화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와 달리 19685월 프랑스 혁명을 다룬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20053월 말에 개봉했으며, 주인공인 미국인 매슈는 마이클 피트, 이사벨은 에바 그린, 부모세대에 반항적이지만 영화키드인 테오는 루이 가렐이 각각 맡아 연기했다.

베르톨로치는 개봉 직전 기자회견에서 “이번 영화는 나 자신 일부이기도 하다. 물론 68년대에 나는 이미 27살이었지만, 촬영을 하면서 영화의 주인공들과 그 당시의 나를 자주 연관시키곤 했다. 캐스팅을 위해서 많은 젊은이를 만나 68년 운동에 관해 물어보았지만, 그 세대의 젊은이들이었던 부모들은 아무런 얘기를 해주지 않은 것을 알고 너무 놀랐다. 68년 상황을 잊어버렸거나 검열하는 행위는 범죄나 다름없다”라며 이 영화가 68년 프랑스 5월 혁명의 개인사적 회상이자, 이 당시를 보는 감독의 시선이 상당히 녹아있음을 전했다.

또한 베르톨루치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68년 혁명 세대의 쓸쓸한 패배주의를 담았다면 <몽상가들>은 다른 비전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전반은 68년 프랑스 5월 혁명의 의미보다는 당시 20살의 세 청년의 세상에서 다소 벗어난 유미적인 문화적, 성적 탐닉을 그리는데 더 주력하고 있다.

다음은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베트남전을 피해 프랑스로 유학 온 매슈는 폐관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앞에서 만난 쌍둥이 남매 이사벨과 테오에게 저녁 식사 초청을 받는다. 하룻밤을 지낸 매슈는 우연히 두 남매가 벌거벗은 채 한 방에 자는 것을 확인한다. 부모님이 여행을 떠난 파리의 아파트에 남겨진 쌍둥이 남매 이사벨과 테오는 매슈에게 한 달 동안 함께 있자고 제안하고 매슈가 이를 받아들인다. 세 사람의 공통분모는 영화와 음악. 그들은 영화의 한 장면을 재현한 후 제목을 맞추는 게임을 통해 서로 감정을 시험하고 성적 판타지를 채우며 부모님이 없는 완벽한 자유를 만끽한다. 이사벨은 영화 수수께끼를 못 맞춘 테오에게 자위를 하라고 요구하고, 테오는 게임의 벌칙으로 이사벨과 매슈에게 함께 잘 것을 명령한다. 그 후 이사벨과 매슈는 서로에게 묘한 감정을 가지게 되고 이때부터 이들 세 청춘의 아름답고도 매혹적인 결합이 시작된다. 하지만 서로간의 세계관의 차이, 계속 진화하는 68년 혁명 상황은 이들만의 공간인 남매의 집에만 있게 하지 않는다. 시위대의 돌이 창문을 깨고 집으로 들어오자 결국 거리로 나가는 세 사람. 매슈는 시위에 합류하려는 이들을 말리지만 두 남매는 시위에 참여한다.

<몽상가들>에 대해서는 감독의 8년 만의 귀환, 더욱이 중국혁명 이후 가장 매력적인 세계사의 대변동 중 하나였던 프랑스 68혁명을 그리며 돌아온 베르톨루치에게 찬사와 실망이 엇갈린다.

이 글은 Ⅱ장에서 이 영화의 주된 시대 배경이자 세 인물의 처음으로 만나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앙리 랑글루아 관장 해임 사건과 68혁명에 대한 간단한 언급을, Ⅲ장에서는 전통적인 영상 분절 단위인 시퀸스와 신별 분리를, Ⅳ장에서는 매슈의 보이스오버 내래이션을 통해 영화 서술적 특징과 초점화·공간 문제를 살펴보고, Ⅴ장에서는 영화 속에 사용된 인용된 영화 장면과 음악을 통한 작품 특징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 맺음말에 해당하는 Ⅵ장에서는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과 영화 속 영화 인용과 빈번한 음악사용을 통해 본 <몽상가들>의 서사적 특징을 짚어본다. 이 특징들이 베르톨루치가 그리고자 했던 685월 혁명과 섹스, 젊음에 대한 찬사로 효과적으로 이어졌는데, 아니면 단순 의미만을 부여할 만한 사적 회상으로만 빠졌는지 살펴볼 것이다.

아쉬움이 있다면 시간과 능력의 부족으로 작품의 시퀸스와 신 별 분절을 통해 작품의 시간성과 공간의 문제를 꼼꼼히 따져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방학 동안 개인 과제로 돌려야겠다.

Ⅱ 68혁명의 문화 혁명적 성격이 나타나는 단초

-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앙리 랑글루아 관장 해임 사건

시퀸스 1의 S#2(Ⅲ장 영화 서사 분절 참조)에서 볼 수 있듯 매슈, 이사벨, 테오 등 이 세 명의 청춘이 만나게 된 계기는 (파리)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앙리 랑글루아 관장 해임 사건과 뒤따른 시네마테크의 폐관이다. 이사벨과 매슈의 첫 만남도 폐관된 시네마테크 앞에서다.

앙리 랑글루아는 조르주 프랑주와 함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공동 설립자이자 운영자였다. 앙리 랑글루아는 1948년 10월 26일 파리의 메신느 거리에 첫 번째 영화 박물관인 이곳을 개관했다. 이곳은 1920년대부터 시작된 자생적인 ‘시네 클럽’의 활동을 하나로 묶으면서 영화광(시네필)들의 모임 장소이자 고전 영화를 소개하고 상영하는 곳으로서 큰 역할을 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규모는 객석 50석 정도에 불과했지만, 영화가 상영될 때마다 극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 뒤 40여 년이 지난 2005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스페인 빌바오 미술관으로 유명해진 미국 출신 천재 건축가 프랑크 게리(Gehry)가 만든 '아메리칸 센터(미국 문화원·1994)'로 전격적으로 옮겨진다. 현재 이곳에는 전 세계 40만 개에 해당하는 필름이 소장되어 있고, 매년 40개에 해당하는 영화 복원작업을 진행 중이며, 해마다 800편에 해당하는 영화들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있다. 프랑스영화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클래식, 제3세계 영화 등을 상영하는 3개의 상영관 외에도(700명의 관객 수용 가능) 두개의 전시관을 더 가지게 됐다. 하나는 영화역사박물관. 3천여 개의 카메라, 소품, 역사적인 사진을 포함한 고문서 등 영화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기획된 곳이다. 나머지 한곳은 시즌마다 테마를 가지고 정기적으로 새롭게 단장되는 곳이다.

랑글루아는 시네마테크가 단지 과거의 영화들을 보존하고 필름을 모으는 일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영화 교육이 지식을 전수하는 학교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영화와 소통하며 이뤄지는 것이라고 믿었다. 영화 속에서 매슈가 말하는 것처럼 그는 어떤 영화가 훌륭한 영화인지 알 수 없으니 되도록 많은 영화를 수집해 관객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누벨바그 같은 프랑스 영화 세대들은 바로 이곳에서 영화를 보고 토론을 하며 공부를 한 프랑스 영화의 산실을 랑글루아가 제공한 셈이다. 따라서 영화사가들은 이 앙리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없었다면 프랑스의 누벨바그 또한 시작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그에게 일명 ‘랑글루아 사건’이 터졌다. 1968년 2월 9일 드골 정부의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는 앙리 랑글루아를 전격 해임했다. 랑글루아가 시네마테크 관장으로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프랑스 영화인들과 시네필들은 시네마테크가 있는 팔레 드 샤이요 궁 앞에 모여 그의 복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프랑스 영화인의 선배격인 장 르누아르를 위시해 로베트 브레송, 카르네, 누벨바그의 기수였던 장 뤽 고다르, 프랑소와 트뤼포, 샤브롤, 로메로, 알랭 레네 등은 물론이고, 철학자이자 언어학자인 롤랑 바르트까지 가세했다. 장 폴 벨몽도, 장 피에르 레오 등의 배두들도 적극 참여했다. 시위에 참가한 인원만도 수천 명에 이르며, 찰리 채플린, 피카소, 구로사와 아키라, 잉마르 베리만, 니콜라스 레이, 로베르토 로셀리니, 알프레드 히치콕 등 해외 영화감독과 예술가들의 복직 요구 탄원도 줄을 이었다. 이 때문에 이 사건이 당시 세계적인 이슈로 떠올랐으며, 시위와 복직 요구가 계속 되자 정부는 다른 내정자와 함께 시네마테크를 공동 운영할 것을 제안하지만 랑글루아는 거절한다. 영화계 단체들까지 랑글루아의 이런 태도를 지지하고, 급기야 프랑스 정부는 그해 4월 21일 시네마테크의 독립 운영권을 인정하고, 다음날인 22일 랑글루아를 복직시키게 된다. 해임 70여 일 만에 랑글루아는 제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이 사건은 파리 근교 낭테르 대학 사건과 함께 프랑스 68년 5월 혁명의 기원 중 하나로 손꼽고 있으며, 더불어 당시 5월 혁명이 지닌 문화 혁명적 요소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랑글루아’ 사건은 해결됐지만 이 사건 이후 프랑스는 1789년 이후 역대 최고의 혁명적 상황을 맞게 되며, 5월 11일 ‘바리케이드의 밤’에는 파리꼬뮌 이후 최고의 바리케이드가 파리에서 등장했으며, 천만 명에 이르는 노동자가 파업에 나섰고, 소르본느 대학(현재 파리 대학 문학부)은 자유대학이라는 이름 아래 기존 교육부 관리를 거부하고 학생과 노동자들의 점거 하에 자율 관리에 들어가는 등 프랑스 전역을 뜨겁게 달궜으며, 유럽 내에서도 가장 권위적인 국가이자 장시간 노동을 했던 프랑스를 가장 탈권위적인 나라로, 가장 노동시간이 짧은 나라로, 이민자들이 가장 쉽게 정책할 수 있는 나라로 전환했다. 특히 프랑스 공산당과 같은 관료화된 기존 좌파 세력에 대한 거부를 통해 사회당을 탄생시키고, 1981년 사회당이 집권하는 근원이 이 6월 혁명이었다.

Ⅲ 영화 서사 분절(전개)

- 시퀸스, 씬(S#)별 정리.

시퀸스 1 : 매슈와 그들의 만남. (31초-12분)

테오와 이사벨을 만나기 전까지 매슈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이 계속 됨.

S#1 평온한 파리 거리를 걷는 매슈

지미 헨드릭스 기타연주곡 ‘third stone from the sun'이 배경음으로 깔림.

S#2 (파리)시네마테크 프랑세즈

S#3 시위하는 파리 거리(과거 영상 기록물도)

->

S#4 폐쇄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낮)

S#5 파리 거리(밤) -> 경찰에게 쫓겨 거리를 헤맨다. (insert 장 뤽 고다르 <네 멋대로 해라>의 샹젤리에 거리에서 진 세버그가 ‘뉴욕 헤럴드 트리뷴’ 외치며 시눔을 파는 장면) -> 파리에서 태어났느냐는 매슈의 질문에 이사벨이 "내가 샹젤리제 거리에 들어온 것은 1959년(<네 멋대로 해라> 개봉년)이야”라며 이 장면을 따라함. 대단한 영화광 혹은 키드임을 암시.

s#6 비오는 파리 거리

S#7 매슈가 머무는 허름한 호텔(말브랑슈 학생호텔. 별 2개),

-> 어머니에 편지를 쓰는 매슈, 자위하는 매슈

시퀸스2 : 매슈, 테오와의 집에서 저녁식사

S#1 매슈의 호텔, 테오의 집(테오의 전화 받는 매슈)

S#2 테오의 집(엘리베이터)

S#3 테오의 집(식탁 앞)

: 테오 아버지와의 대화. 베트남전 반대 서명을 하지 않은 아버지와의 말다툼. 테오의 아버지가 유명 시인임을 알 수 있음. 부모들의 여행 앞 날.

'신이 없다는 사실이 부모들이 신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아’

(테오의 대사)

S#4 테오의 옆방(잠에서 깨는 매슈), 화장실, 테오의 방

-> 벌거벗은 채로 한 침대서 자는 두 남매.

S#5 여행의 떠나는 부모

한 달 동안 트뤼빌로 여행.

S#6 테오의 집(테오 옆방)

-> 영화 수수께끼를 시작하는 이사벨. <퀸 크리스티나> 대사를 하고 매슈가 따라 하고.

시퀸스 3

S#1 매슈 호텔에서 짐을 옮기는 장면(거리)

S#2 다시 테오 집

테오와 매슈의 찰리 채플린과 버스트 키튼의 우수함을 따지는 논쟁.

<탑 햇>의 음악에서 영화 맞춰. <밴드 오브 아웃사이더>(장 뤽 고다르 감독, 1964)에 나오는 루브르 박물관을 달리는 한 여자와 두 남자 장면을 재연하자는 테오와 이사벨 남매. 9분 45초 기록 깨기 제안.

S#3 루브르 박물관

<band of 아웃사이더> 다시 인용: '우리는 그를 받아들인다 우리 일원으로'(고전 <삼총사>에 나오는 대사 인용을 재인용)

S#4 테오의 집(거실)

“부모는 모두 체포해야해”라며 부모 세대에 반기를 드는 테오.

S#5 테오의 방

영화 <금발의 비너스>의 코러스를 흉내 내고, 테오가 틀리자 벌칙으로 자위를 시키는 이사벨. 자매의 액을 만지는 이들.

S#3 카페(테오와 매슈)

테오, 이사벨과의 관계를 얘기. 일란성 쌍둥이(대사에선 샴 쌍둥이라고 함).

S#4 테오의 방

이사벨의 사진을 성기에 붙이는 매슈. 다시 영화 수수께끼. 테오의 수수께끼에 맞추지 못하는 매슈와 이사벨.

거(객)실, 드라크루와 작품 앞에서 두 사람이 섹스하라는 테오.

S#5 거실(살롱)

이사벨의 사진을 성기에 붙인 게 들킨 매슈.

. 이사벨과의 매슈의 섹스. -> 처녀성을 상징하는 피가 나옴.

둘 사이가 더 뜨거워짐.

S#6 매슈가 묵는 방

이사벨과 매슈 두 사람의 섹스. 대사에서 어제는 아빠 서재에서 섹스를 나눈 사실을 알게 됨.

시퀸스 4

(insert cut)테오의 집 밖 tilt up

S#1 매슈가 묵는 방

테오와 이사벨과의 근친애에 대한 매슈의 물음. 이사벨과 매슈, 테오와의 묘한 균열

예감. 테오 "우리 분명히 해두자 알았어? 넌 괜찬은 애야. 널 좋아해. 하지만 우리

셋은 운명적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야. 이사벨과 나는 샴쌍둥이야. 농담이 아니었어"

-> 매슈에 대한 테오의 경쟁어린 눈.

S#2 테오의 집(식탁)

음식을 망친 이사벨. 먹을 게 떨어진 테오의 집. 쓰레기통에서 주운 바나나를 나눠먹고.

S#3 대학(소르본느인 듯)

다시 밖으로 나온 테오. 시위에 나오지 않는 테오를 질책하는 대학 친구.

S#4 테오의 집(욕조. 다시 갇힌 공간)

에릭 클랩튼과 지미 헨드릭스의 기타 혁명에 대한 테오와 매슈의 논쟁. 베트남전에 대한 이야기. 서로의 차이를 드러냄. <카이에 시네마>에 나온 영화에 대한 얘기. 세 사람이 함께 욕실에 있는 장면. 테오 왼쪽 팔과 이사벨 오른쪽에 있는 팔에 있는 상처가 같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샴 쌍둥이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지미 헨드릭스의 <hey joe>가 울려퍼지고, 대마에 취한 세 사람.

사랑에 대한 얘기. '우리도 사랑해'가 아닌 '사랑해'를 듣고 싶은 매슈.

두 사람, 매슈의 성기 옆 털을 깎으려하고 반발하는 매슈. 이사벨에게 둘만의 데이트를 청하는 매슈.

S#5 카페

매슈와 이사벨 둘 만의 첫 데이트. 함께 냉커피를 마시는 장면.

S#6 영화관

영화를 보며 키스하는 두 사람.

S#7 거리

전자상점 앞에서 TV를 본다. 프랑스 파리 68혁명 상황이 나오고. 테오의 당시 프랑스 파리 68년 혁명 상황에 대해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이 나온다. 첫 도입부 이후 테오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은 처음이다.

이사벨 “테오와 나는 TV를 안봐. 우린 순진하고 냉담해”

거리에 쌓인 바리케이트. 5월 10일 '바리케이트의 밤' 상징. 68년 5월 혁명이 절정으로 치닫는 것을 암시.

S#8 테오의 집

테오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아는 이사벨. 자신의 방에서 섹스를 나누길 거부하는 이사벨 "누구도 내 방에서 사랑을 나눌 순 없어". 결국 허락한다.

S#9 이사벨의 방

재즈가 나오다가 샹송으로. 우는 이사벨. 여자와 테오의 소리가 들리자 매슈에게 '꺼져'라면서 테오의 방을 격렬히 두드리며 테오를 부르는 이사벨. 말리는 매슈도 떠민다. 테오가 다른 여성과 함께 있는 것을 거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시퀸스 5

S#1 테오의 방, 매슈의 방 앞, 이사벨의 방

마오이즘에 대한 책을 읽는 테오. 술을 마시며 팔굽혀 펴기를 하는 매슈, 담배를 피며 고민에 잠긴 이사벨.

S#2 포도주 창고

포도주를 꺼내오는 테오. 다소 오래된 고급 포도주임을 알 수 있다.

S#3 테오의 방

마오이즘을 중심으로 한 테오의 혁명을 영화와 비유. 매슈와 혁명에 관해 얘기. '함께'라는 단어. 단 둘을 의미할 때

S#4 거실(텐트가 만들어진)

이사벨, 테오에게 불어로 <사랑해(Je t'aime,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고, 테오는 <나도 사랑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사벨은 우리 둘이 '영원히 사랑하자'라고 말하지만 대답을 아침으로 미루는 테오.

S#5 부엌, 거실(텐트가 만들어진) 아침

테오와 이사벨의 부모가 잠시 오고 술에 취해 벌거벗은 채 혼숙하는 세 사람을 본다.

분노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표만 주고 다시 나가는 두 사람. 아무 말도 못하고 "발소리 안 나가 나가야해요 여보"라는 테오 어머니. 이 세대 10대 말 20대 초반들이 부모 세대의 통제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주는 장면. 차를 몰고 떠나는 두 사람.

-> 지미 헨드릭스 기타연주곡 ‘third stone from the sun'이 다시 나옴. 혼란스런 부모의 심리상황과 혼돈 속 사회를 동시에 그리려는 듯.

S#6 다시 거실

아침에 일어나 부모가 남긴 수표를 본 이사벨. 가스 밸브를 열어, 자살(혹은 테오, 매

튜와 함께 죽으려는)을 시도하려는 이사벨. 그 상황 속에서도 이사벨은 영화를 그린다.

영화는 삶에서 죽음까지 관통하는 이사벨의 전부인 양. 자살 시도 중에 거리에서 창문

을 깨며 돌이 날라든다. 가스 냄새를 최루가스 냄새라고 말을 돌리는 이사벨.

S#7 파리 거리

par la rue(거리로)라는 구호로 68혁명이 절정임을 알 수 있음. 테오와 이사벨 'par la rue'를 외침. 매슈를 뿌리치고, 시위 대열에 동참하는 두 사람.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투쟁은 계속된다!'를 외치는 이들. 시위를 진압하려 나오는 경찰들.

-> 에디뜨 피아프의 샹송 <Non Je ne regrette rien(아니요, 나는 후회하지 않아요)>가 나오고. 엔딩 크레티트이 나오는 중 거리는 흑백으로 변한다.

Ⅳ <몽상가들>에 나온 매슈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

- 영화 서술적 특징과 초점화, 공간의 문제

매슈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은 영화 전체에서 두 차례 나온다. 첫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은 시퀸스 1 내내 영화 시작 약 10분 동안 계속 된다. 두 번째 보이스오버 내레이션도 간결하지만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세 번째 보이스오버는 이사벨 방에 관한 감상이 주를 이룬다. 또한 매슈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의 영화의 시간성과 영화 전체의 초점화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 우선 매슈의 세 차례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을 살펴보자.

*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 1 => (시퀸스 1 내내 계속 됨)

처음으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영화를 봤을 때...

나는 프랑스인들만이 궁전 안에 영화관을 들여놓는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샘 풀러의 <충격의 복도>였다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영화가 최면술에 걸린 거 같았다

난 20살이었고, 60년대 말이었다

난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 일년간 파리에 오게 되었다

여기서 진정한 교육을 받았다

난 일종의 프리메이슨리 같은 집단의 일원이 되었다

영화팬들로 이뤄진 프리메이슨리

우리는 그 집단을 '영화광'이라고 불렀다

난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 항상 스크린 가장 가까이에 앉아 있었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

왜 우리는 그렇게 가까이 앉는가?

아마도 그 이유는 맨 처음으로 이미지를 접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미지가 여전히 새롭고, 여전히 신선할 때, 우리 뒷줄의 허들을 뛰어넘기 전에

이미지는 좌석 줄에서 줄로, 관객에서 관객으로 전해져,

마침내, 닳아빠진, 낡은, 우표 크기의 이미지가 되어, 영사실로 돌아갔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영화가 계속 되고)

아마도, 스크린은 또한 실제로 장벽이었다

스크린은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차단했다

그러나 어느 날 저녁, 1968년 봄, 세상은 마침내 스크린을 뚫고 뛰어들었다

(시네마테크에서 나와 다시 시네마테크로 가면서 랑글루아 시위대를 지나간다)

앙리 랑글루아는 시네마테크를 설립했다

왜냐하면 그는 영화를 지하 곳간에서 썩게 만드는 대신에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어떤 영화든지 보여줬다, 좋은, 나쁜, 오래된, 최근의...무성 영화, 서부 영화, 스릴러

모든 뉴 웨이브 영화제작자들이 이곳으로 와서 기술을 배웠다

여기가 현대 영화가 태어났던 곳이다

랑글루아는 정부에 의해 파면되었다

파리의 모든 영화광은 밖으로 나와 항의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문화혁명이었다

(이사벨과 테오와의 첫 만남)

(파리 거리를 걸으며)

그렇게 테오와 이사벨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냥 경찰에 쫓겨서 그런 건지,

아니면 벌써 새로운 친구들과

사랑하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걸으면서 얘기했다, 정치에 관해, 영화에 관해,

그리고 왜 프랑스인은 지금껏 괜찮은 록밴드 하나 만들 수 없었는지...

나는 그 날 밤이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 2 (시퀸스 4 S#7 TV 화면을 보면서)

TV 화면을 봤을 때, 시네마테크 투쟁이 기억났다

그맘때를 제외하고, 시위자들은 영화광들이 아니었다

더 이상 학생들도 아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게는 문을 닫았고, 공장은 파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파리 전체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 보이스오버 내레이션 3

전에 본적이 없었던 이사벨의 일면을 발견했다

내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비밀스런 부분을

문득 샌디에이고에 있는

누나들의 침실이 생각났다

우리 집과 모두 비슷비슷한

이웃의 집들, 푸른 잔디와 스프링클러,

문밖에 주차한 스테이션 왜건이 생각났다

1. 보이스오버 내레이션과 초점화

시퀸스 1 내내 이어지는 매슈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은 때로는 영화 속 대사와도 때로는 매슈의 보이스 인(처음 이사벨과 얘기하는 장면)과 인접해 이어진다. 하지만 시퀸스 1에서 영화 전반을 해설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이 과거형으로 이뤄진다. 이를 통해 매슈의 보이스 인과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은 서로 다른 시간적 차이-보이스 인은 68년 상황에서,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은 불특정하지만 영화가 서술되는 시간보다는 미래-를 드러낸다. 이 점에서 영화 내내 단 한번도 플래시 백이 나타나지 않지만 영화 전체가 매슈의 시점에 의한 거대한 시청각적 플래시 백임을 관객들에게 인지하도록 한다.

초점화라는 부분에서 이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은 토도로프의 등식과 부등식 체계에 적용한다면 이 영화는 [서술자 = 인물]임을 나타낸다.

또한 제라르 주네트의 초점화(focalisation)라는 용어로 살펴보면 <몽상가들>은 매슈의 과거 회상적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을 통해 표면적으로 고정된 내적 초점화(서술이 사건들을 알려줄 때, 이 사건들이 마치 하나의 인물의 의식에 의해 여과된 것처럼 보이는 경우)임을 관객들이 인지하도록 한다. 영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두 음악이 아니라면 관객들은 확실히 그렇게 느낄 수 있으며, 전체 서술의 초점화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지금껏 매슈라는 서술자가 들려주는 얘기라는 환상을 교묘하게 깬다. 매슈가 거리로 나온 이사벨과 테오에게 비폭력을 요구하며 시위대에 합류하지 말 것을 얘기하며 언쟁하고, 이를 뿌리치고 두 사람이 시위대와 함께하는 장면, 경찰과 대치 중이던 시위대를 강제해산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 ‘아니요, 난 후회하지 않아요’가 흘러나온다. 또한 에펠탑에서 시작되는 아름다운 파리의 거리를 매슈가 걸을 때 지미 헨드릭스의 ‘Third ston from the sun'이라는 노래가 나온다. 두 노래는 마지막 엔딩 크래디트이 스크린을 넘나들 때 서로 합쳐지기도 한다. 이 노래와 영상을 보면서 지금껏 매슈의 회상으로 서술된 얘기를 보고 듣고 있다는 생각한 관객은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영상주에 의해 서술되고 있었다’라는 점을 알게 된다. 이 부분은 <몽상가들>의 서술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2. 보이스오버 내레이션과 플래시 백

매슈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은 서술자에 대한 정보만이 아니라 영화의 시간성과도 함께 한다. 이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이 아니라면 영화 전체는 일반적인 연대기적 서사방식으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매슈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을 통해 스토리의 순서와 담화의 순서가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영화는 비연대기적 서사방식을 띠게 된다. 제라르 쥬네트가 사용한 용어로 영화가 서술자 매슈에 의해 ‘소급제시’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매슈가 언제, 어디서 이 이야기를 ‘소급제시’하는지는 불특정하다. 또한 이 영화는 매슈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을 통해 그 시기(68년 5월 혁명 직전과 그 당시)보다 미래인 불특정 시간대(일차 서사의 출발점)에서 그 이전의 과거를 환기하는 방식이어서 ‘외적 소급제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영화가 매슈가 68년 5월 혁명을 겪은 뒤 불특정 시간대에서 과거로 회상한 이야기라고 할 때 일차서사의 출발점인 이 불특정 시간대가 통째로 생략됐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에 의해 또 다른 강력한 영상주가 있었음을 느끼는 순간 앞선 영화의 시간성에 대한 논의는 보다 정밀해져야할 것이지만 이 글에서는 여기까지 한정한다.

영화의 시간성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한다면 이 영화는 이런 서사적 특징에 의해 스토리 시간은 68년 앙리 랑글루아 복원 시위가 벌여지기 시작한 그 시작부터 68년 혁명이 본격화(시퀸스 4 S#7에서 매슈와 이사벨이 본 거리에 쌓인 바리케이드를 통해 5월 10일 '바리케이드의 밤'을 상징)되는 시점까지를 1차 스토리 시간으로, 매슈의 보이스오버를 통해서는 68년 앙리 랑글루아 복원 시위부터 그의 회상이 시작되는 불특정 시간(일차 서사의 출발점)까지로 제법 긴 스토리 시간을 갖고 있다. 만약 영상주를 감독과 일치시킨다면 2차 스토리 시간은 68년 2월 무렵부터 현재(정확히는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까지로 볼 수 있다.

3. 보이스 오버 간 층위와 역할의 차이

보이스 오버 1과 보이스 오버 2는 공통적인 역할이 하나 있다. <몽상가들>의 캐릭터들이 주로 지내는 공간인 테오·이사벨의 방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 바깥세상, 즉 68년 혁명-영화인들의 앙리 랑글루아 복원 투쟁에서 시작해 5월 10일 바리케이트의 밤까지-이 진행되는 정보를 전달한다. 물론 보이스 오버 1은 또 다른 층위로 매슈가 어떻게 파리로 오게 됐는데, 그가 어떤 인물인지, 당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영화인들에게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테오와 이사벨과 만났을 때의 느낌 등을 담고 있다. 하지만 보이스 오버 3은 유일하게 매슈가 이사벨의 방에 처음 들어갔을 때 느낌만을 전달하고 있다. 즉 보이스 오버 1과 보이스 오버 2와 비교해 보이스 오버 3은 전달하는 정보의 층위와 역할이 확연히 다르다.

Ⅴ <몽상가들>에 나타난 삽입 영화와 음악

-영화 속 영화 인용과 인물과의 관계, 음악(음향)의 역할

1. 시네필의 전성시대 60년대, 베르톨루치의 영화에 관한 오마주

<몽상가들>에서 영화는 세 등장인물의 삶과 등치된다. 세 사람은 쉴 새 없이 영화에 대해 묻고 답한다. 한 편의 영화는 베르톨루치의 60년대 이전 영화에 관한 오마주인 끝없이 인용된다.

이사벨은 <네 멋대로 해라>에서 진 세버그가 샹젤리제 거리를 걸어가며 ‘뉴욕 헤럴드 트리뷴!’를 외치는 장면을 재연하며, 버스터 키튼과 찰리 채플린 중 누가 더 위대한가, 고다르의 <이방인들> 주인공들이 루브르 박물관을 가로지르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자신들이 더 빨리 뛸 수 있을까를 시험하기도 한다.

또한 영화사의 걸작들의 인용은 이 시대 영화광들의 게임을 통해 계속된다. 하워드 혹스의 <스카페이스>(1932), 토드 브라우닝의 <프릭스>(1932), 찰리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1931)가 지나가고, <퀸 크리스티나>(1933)의 그레타 가르보와 <금발의 비너스>(1931)의 마를렌 디트리히(심지어 영화 수수께끼를 못 맞춘 테오는 벌로 마를렌 디트리히의 사진 앞에서 자위행위를 한다), <톱 햇>(1935)에서 춤추는 프레드 애스테어와 진저 로저스가 화면에 가득 찬다. 더욱이 이사벨이 가스관을 거실 텐트로 가져와 자살시도를 할 때도 로베트 브레송 감독의 영화 <무쉐트>(1967년)에서 무쉐트(나딘 노르티에 분)가 연못에서 자살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등장인물들은 취향과 세계관(프랑스 좌파적 성향의 청년 테오와 베트남전을 피해와 미국중산층을 대표하는 매슈)의 차이로 인해 갈등을 빚지만 영화라는 단일한 세계 앞에서 화해하기도 한다.

또한 영화 도입부에서 매슈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로 향할 때 왼쪽에서 장 피에르 칼폰이 선전물을 읽으며 앙리 랑글루아 복직 투쟁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고, 오른편에는 장 피에르 레오(누벨바그의 신호탄이었던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에서 소년 역을 맡음)가 열정적으로 연설하는 길제 기록 화면이 허구적 장면과 교차된다. 영화 자체의 인용은 당시 기록물까지로 확대된다.

이를 통해 감독은 1960년대 이전 영화들의 대한 무한한 애정과 당시 68혁명의 성격이 다분히 문화 혁명적 성격이 있음을 얘기한다.

또한 이들 영화들은 <무쉐트>의 장면처럼 이들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전달하는 또 다른 서사정보로도 활용된다.

2. 혼돈과 저항, 반전의 시대를 되뇌는 <몽상가들> 속 음악

이 영화는 고전영화의 OST에서 시작해 1960년대 미국을 풍미하던 ‘싸이키델릭’ 사운드를 비롯, 지미 헨드릭스를 비롯한 록 뮤직, ‘La Mer' 같은 고전 샹송, 현대 샹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노래가 25곡 인용, 삽입돼 있다. 어떤 음악은 인용된 영화와 함께, 어떤 음악-예를 들면 지미 헨드릭스와 더 도어스의 음악 등-들은 영화의 배경시간을 1960년대 말임을 상기시켜주는 지표 역할을 한다.

영화 속에 담긴 삽입곡들

1) Third Stone From the Sun-Jimi Hendrix

이 영화의 메인테마곡처럼 사용된다. 에펠탑이 나오며 파리 거리를 걸으며 흘러나오며 영화의 주된 시대배경을 고정시키기도 하고, 이 곡처럼 영화가 사이키델릭한 혼돈과 혼란의 시간을 그릴 것임을 암시한다. 또한 세 명의 젊은 남녀가 알몸으로 자고 있는 장면(시퀸스 5 S#5)을 목격한 테오와 이사벨 부모가 수표만 남겨둔 채 집을 빠져나가는 장면에는 혼란스런 부모의 심리상황과 혼돈 속 사회를 동시에 묘사하는 탁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에뒤트 피아프의 샹송 <아니요, 난 후회하지 않아요>와 겹치면서 다시 묘한 여운을 남긴다.

2) <충격의 복도>(Shock Corridor. 1963년)에서 Sam Pulller's Theme

3) 프랑소와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1959년)에서 Quatre Cents Coups

4) 장 뤽 고다르 <네 멋대로 해라>(1959년)에서 뉴욕 헤럴드 트리뷴

장 세베르그가 샹젤리제 거리에서 신문을 파는 장면이 이사벨이 재연하며 잠시 등장

5) BAll and Chain / Big Brother & The Holding Company

6) I Need A Man to love / Big Brother & The Holding Company

7) <퀸 크리스티나>(1933년)에서 Night in the thone room

잠에서 깬 매슈에게 영화 수수께끼를 이사벨이 내는 장면에서 등장.

8) Love Me Please Love Me / Michel Polnareff

카페에서 셋이 대화를 나눌 때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9) Blondie Venus / Hot voodoo

10) Let's Face the music And dance / Roy Fox and his band

11) Queen Jane Approximately / Bob Dylan

12) <탑 햇>(1935년) 중 No Strings(I'm Fancy Free)

13) Hey Joe / Jimi Hendrix

: 지미 헨드릭스의 인기곡 중 하나로, 매슈 역의 주인공 마이클 피트가 새로 녹음했다. 셋이 한 욕조에서 목욕하는 장면(시퀸스 4 S#4)에서 나온다. 테오와 매슈가 에릭 클립톤과 지미 헨드릭스에 대해 논쟁하고, 다시 베트남전 참전에 대해 논쟁한 뒤 흘러나와 분위기를 더욱 높아간다.

14) El Paso del ebro / Chour at orchestra

15) Maggie M'fill / The doors

16) Combiantion of the two / Big Brother & The Holding Company

17) C'est Ireperable / Nino Ferrer

18) La Mer / Charles Trenet

-> 테오가 낸 영화 수수께끼를 못 맞춘 이사벨이 스트립쇼를 하듯 옷을 하나하나 벗으며 완전 나체를 매슈에게 처음 보여줄 때, 테오가 다른 여성과 정사를 나누는 것을 못 견뎌하는 이사벨이 자기 방에서 울부짖을 때 The Spy가 끝나고, 이 샹송이 들려온다. (시퀸스 4 S#4)

19) The Spy / The doors

자기 방에서 절대 섹스를 하지 않으려는 이사벨이 결국 허락한 뒤 매슈가 처음 이사벨 방에 들어갔을 때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이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 뒤 이사벨의 울부짖음과 함께 급히 La Mer로 전환된다.

20) Dark STar / the Graceful Dead

21) Tous Les Garcons et Les Filles / Francoise Hardy

다른 남자와는 데이트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이사벨을 설득하고, 처음 둘 만이 카페에서 만났을 때 이 현대적 감각의 샹송이 들린다.

22) Non Je ne regrette rien - edith Piaf(에디뜨 피아프)

끝 장면, 거리 시위에 흘러나오면서 영화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영상주이자 감독의 68혁명에 대한 가치를 부여한다. 영화 속에서 영상주의 메시지가 가장 직접적인 장면이면서 이 노래가 그 의미를 전달한다.

23) <The Girl Can't help it>(못 말리는 여자, 1956년)에서 You'll never never know

이사벨과 매슈가 데이트를 하며 영화관에 갔을 때, 이 영화가 상영된다. 흑인 그훕 플래터스가 부르는 이곡이 스크린에서 들린다.

24) Song for Our Ancestors / Steve Miller Band

25) <미치광이 삐에로>(1965년)에서 Ferdinand

맺음말 <몽상가들>의 모호한 열린 구조

-젊음, 섹스, 혼돈, 혁명 사이에서 흔들리는 베르톨루치

Ⅳ장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영화는 매슈라는 인물을 통한 한 편의 거대한 플래시 백이라는 인식이 작품 마지막 영상주의 강력한 개입을 통해 깨진다. 이를 통해 디제시스 시간은 68년 봄부터 현재(정확히 영화가 제작된 시기)로까지 확장된다. 이는 영상주가 실제 감독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인식시켜주는 것이다. 즉 감독의 직접적인 이 시기 기억들이 작품에 상당히 개입돼 있다는 점을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고전영화부터 60년대 영화까지 영화사를 정리한 듯 빈번한 영화 속 영화인용은 베르톨루치가 그 시기 봤던, 그리고 그를 지탱해주던 영화에 대한 오마주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음악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럼 프랑스 사회를 근본에 가깝게, 비록 새로운 대안체제로의 전환은 아니더라도 프랑스를 68혁명 이전 사회와 이후 사회로 구분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변화시킨 68년 프랑스 5월 혁명에 대해 “68년 혁명 세대의 쓸쓸한 패배주의를 담았다면 <몽상가들>은 다른 비전을 보여주고 싶었다”던 감독의 얘기는 적절히 배어있을까? 결론적으로는 모호하다고 할 수 있다. 감독은 마지막 장면에서 에디뜨 피아프의 <아니요, 난 후회하지 않아요>라는 샹송과 지미 헨드릭스 곡을 섞으며 그 시기에 대한 평가와 캐릭터들의 이후에 대해서는 관객 몫으로 맡긴다. 열린 구조이되 68세대의 젊음에 대한 찬사인지, 섹스와 혁명은 잘 조화된 이중주처럼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인지, 아님 혼돈 그 자체만을 얘기하고 싶었는지 모호해진다.

이는 원래 살펴보려했던 공간 설정의 문제에서도 그렇다. 이 영화는 크게 테오와 이사벨이 중심이 되고, 매슈가 끼어든 테오와 이사벨 둘만의 공간과 바깥 공간으로 이원화돼 있다. 섹스와 독특한 문화적 취향을 통해 금기를 깨되 외적 확장은 어려운 둘만의 공간, 68년 프랑스 5월 혁명이라는 사회의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는 외부 공간과의 접촉은 베르톨루치의 말처럼 적절해보이지 않는다. 두 공간에 대한 적절한 배분이 이뤄지지 않았고, 두 공간이 서로 개입하는 방식과 빈도가 낯설 정도로 적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영화의 시간성에서 빈도의 문제와도 연결되지만 아직 제대로 된 분석을 하지 못해 더욱 아쉽다.

다소 생뚱맞은 얘기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로 시작해 연일 촛불 집회가 이뤄지고 있는 지금, 사적 욕망과 분출되는 사회적 변화 욕구가 어떻게 배분되고 다뤄져야할 지 이 영화가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아 보인다.

Posted by 늘 축제였음..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아이리스 2008.07.12 0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몽상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극장에 혼자 가서 본 영화입니다.
    프랑스 젊은이들의 혼돈과 혁명을 자연스러운 섹스와 낯선 우정으로 그린 영화.. 아직 기억에 남네요

  2. 늘 축제였음 2008.07.15 15: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잼나게 봤습니다. 댓글 감사

프랑스 감독 알랭 레네의 흑백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요즘 제 머리 상태가 그러네요.
Posted by 늘 축제였음..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저는 늘 부끄러운 존재였습니다. 역사에 반하던 대한민국 초기 위정자들에 의해 세워진 초대 정부, 그리고 겨우 싹을 띄운 4.19를 1년 만에 뒤엎은 군사정권, 그리고 제 국민을 죽이고 체육관에서 대통령이 된 80년대 전두환 정부, 6월 항쟁이라 잘 난 척 하지만 바뀐 것 하나 없이 군정의 내용상 연속적이던 노태우 정권, 그렇게 하다가 오랜 만에 선 문민정권이지만 야합으로 그친 김영삼 정권, 사회민주주의적으로 우리 사회를 만들 것으로 착각한 10년 간 민주당 야류 정권들. 그리고 대한민국의 위에 있지만 초기 정통성은 인정하지만 결국 경제 봉쇄와 정권의 연장을 위해 독재 체제로 전환한 이북 정권. 우리 국민이 부끄러웠고, 우리 나라가 부끄러웠던 게 대학 시절의 나날이었습니다. 그렇게 했건만 사회민주주의 초기 체계조차 못 만드는 부끄러운 정치와 함께.
  그 속에서 저는 늘 부끄러운 존재였습니다. 대한민국은 공화국입니다라는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를 대학 때 하면 마치 운동권이나 되는 듯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 교육은 그들에게, 제게 무의미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미국산 쇠고기 촛불시위를 보면서 다시 한번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 최소한 우리 국민, 내 이웃은 이미 성숙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그걸 잊어버린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그 부끄러움 때문에 지난 토요일 마산에서 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아니 이명박 정권 반대) 집회를 갔었습니다. 최소한 그 부끄러움을 잊고자 했지만 그럴 수가 없네요.
  저희 언론노조 경남도민일보지부(저는 거기서 사무국장을 하고 있음다)에서 무료로 배포한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현수막 장수가 이미 2100건이 넘었답니다. 그걸 보면서 가히 기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기자랍시고, 숨어있던 일상의 부끄러움을 대중은 그렇게 일깨워 주네요. 부끄러운 밤, 하지만 이번 만은 의회정치에 우리의 대의를 지켜줄 사람과 정당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국민적 사고변화를 함께 하는 축제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선험으로 판단하고, 선험으로 제단한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최소한 우리 국민은 우리나라가 공화국이라는 것을 이번 시위를 통해 제대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젠 부끄럽지 않게 얘기하고 싶네요. 대한민국은 공화국입니다. 국민이 주권을 가진....
  이명박 정권이 이 사실을 제대로 알아야할텐데....요.
  일 때문에 평일은 갈 수 없지만 이번 토요일에도 촛불 시위에 나가 대한민국이 공화국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부끄러운 맘으로 손을 내밀어봅니다. 제 자신에게 너와 그에게. 함께 촛불을 들자고.

Posted by 늘 축제였음..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서울 광화문,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는 촛불문화제가 3일 연속 심야시위로 바뀌고 있답니다. 이를 두고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불법시위, 친북좌파 세력 배후설을 연일 쏟아내고 있습니다.
  오늘 오전 MBN보도에서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소속 한 교수가 현재 상황이 최악의 경우 4.19혁명운동에 가까운 사태로까지 갈 수 있다고 예상하더군요. 그 이유로 4.19혁명운동은 당시 졍치세력과 무관하게 자생적인 민란에 가까운 마산 3.15의거(교수는 이 내용을 빼고 얘기해 제 견해로 넣습니다)와 자연발생적인 학생운동이 확장된 결과로 기존 정치세력장을 무너뜨렸다고 합니다. 또한 독재타도라는 단 하나의 구호가 갈수록 다양한 정치적 요구로 상승하는 정치운동으로 전환됐다고 하더군요.
  현재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운동은 자발적인 시민운동, 특히 연령대로는 10대, 40대 중심의 운동에서 시작해 정치적 요구가 강한 세대인 20.30대가 결합하면서 정치적 요구운동(다양한 정책비판이 담김)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해석하더군요. 여기에 90년대 중반 이후 정치영역을 의회 중심으로 수렴해 보려던 시민들이 다시 의회정치에 부정적 견해를 보이기 시작했답니다. 때문에 시민들은 80년대와 90년대 초에 있었던 것처럼 거리정치를 통해 정권과 직접적으로 대립하려고 시도하고, 이는 눈여겨볼 부분이라고 하더군요. 완충지대로써 의회(국회)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MBN에서 발언한 이 교수의 견해를 빌면 의회라는 대의정치에 기반한 정치운동의 전개에서 다시 거리시위를 통한 직접적인 정치적 요구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입니다. 지난 총선에서도 볼 수 있듯 시민들의 요구는 다양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의회로 상징되는 대의정치로의 수렴은 약화되고 있는 셈입니다. 이명박 정권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또다른 하나는 과거 시민사회의 요구는 명분 중심의 큰 의제였다면 이번 시위로 나타나는 것은 광우병 소 수입반대를 포함해 공교육 약화 반대(교육의 빈익빈 부익부 심화), 의료보험 개악 반대 등 자신과 직접적인 요구를 중심으로하는 생활 속 의제가 중심을 이룬다는 점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점도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놓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민의 정보획득 수준도 상당히 높아졌는데, 조중동과 정권은 친북좌파 세력의 배후설을 흘리며 국민이 마치 그들의 꼭두각시 수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친북좌파 세력에 대해 크게 지지하지도 않겠지만 설령 지지한다고 해도 그건 국민들의 정치적 선택이라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지요. MB정권이 국민에 대한 의식은 여전히 독재 시절 우민화된 국민 의식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 향후 상당한 저항으로 정권에게 돌아갈 것 같습니다.

  암튼 야당의원이 많았던 17대 국회에선 한나라당과 이 대통령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지만 18대 국회가 개원하면 이런 맥락에서의 국민적 저항은 다시 민란 수준으로 확대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이것도 국민들의 대의정치를 통해 선택한 현 정치체제에 대해 책임을 져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혁명이라는 직접적 체제전복이 아닌 이상 정치의 상당 부분은 대의정치에 기대야하는데, 국민들은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정치체제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뒷북일 수 있지만 하반기 상당한 민란으로 또다른 정치학습을 하겠지요. 우리국민은. 상당한 희생을 하고.
  이번 광우병 소 수입 촛불문화제에서 나온 무서운 구호가 하나있더군요. '독재타도'.
  독재타도는 그만큼 독재권력의 폭력적 통치체제에 대한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 국민들은 역사 속에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선택에 대해 희생을 각오한 정치학습이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겠지요. 공화국을 표방하는 한국에서 공화국의 미래 방향을 가늠할 희생이 올 하반기부터 새롭게 시작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희생에 저도 필요하다면 거부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만은 개죽음이 아닌 서민과 노동자의 요구가 의회 정치에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대의정치 체제의 일대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민란이 되길 바랍니다. 또한 그런 국민적 정치학습이 되었으면 하네요. 
Posted by 늘 축제였음..

댓글을 달아 주세요

대학원 수업을 듣느라고, 대학교란 곳을 같습니다. 약 4년 만에 대학축제라는 것을 봤습니다. 제가 학부를 나온 곳을 가면 웬지 을씨년스러웠거든요. 대학을 다닐 때 밥집, 술집이란 것을 경멸했습니다. 물론 저는 3학년부터 과 선배에게 욕 먹더라도 아예 밥집.술집 안 지켰습니다. 연대를 위한 가치생산-가령 어려운 학우를 돕기 위한 기금마련이나 구속자를 위한 변호사비나 사식비 마련이 첫 출발이었잖습니까-도 아니고, 그렇다고 학술이나 흥겨운 축제의 시공이 열리는 것도 아니고, 3일 동안 과 선배 눈치보며 밥집. 술집에 짱박혀 있다가 밥되면 그것 판 돈으로 술마시고. 참 황당했었거든요, 졸업 직전에는. 관성 그 자체가 가치가 되어 이어지는 판 같았습니다. 그 외는 제가 나온 대학 홍보실에서 그 학교 출신 기자들을 모으는 자리.
  명색이 그래도 개혁언론 타이틀을 타고 기자질 하는 놈이 그것도 못 하겠더라고요. 그리고 주로 활동했던 동아리도 제가 취직하고 약 1년 만에 문닫고. 그러다보니 갈 곳도 마땅찮아 잘 가지지 않더군요.

그래서일까, 간만에 본 대학축제 분위기가 새삼 신선하더군요.

 그 중 한 무리 학생들이 모여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이명박 대통령을 욕하는 부스가 눈에 띄더군요. 킥 펀치(이 명칭이 맞나? 그냥 펀치로만 아는데, 암튼 발로 차는 거요) 기기 있잖습니까? 거기에 갓 2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가 이명박 대통령의 코를 잡고 있는 사진을 거기에 붙여놓았더군요.

  거기에 쓴 문구 "2mb 아저씨, 숨쉴 자격이나 있나요"

  간만에 키치적인 대딩들을 보니 흥겨웠음다. "축제는 일탈이다"
  그 명제와 어쩜 딱 맞는 풍경이지 않을지....

Posted by 늘 축제였음..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