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참 재미있는 기사가 있네요. 여성 패션모델의 정년이 35세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에선 (여성)패션모델의 법적 정년이 판례로 정해진 셈이군요.
 슈퍼 엘리트 모델 출신인 오 양이 화보 촬영 중 바다에 빠져 숨진 사건이 있었는데,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이같은 결론이 나왔으니.
  정년이 35세라, 그런 직업이 있군요. 그리고 그 뒤 60세까지는 도시 일용(비정규)근로자의 평균임금으로 봐야한다는 결론.
여성 패션모델들은 한때 반짝했다가 얼른 돈 벌어서 다른 일을 해야하는 군요. 화려함 뒤에 어느 삶보다 위험성이 높습니다. 그려. 35살까지 돈 못 벌면 바로 도시 일용근로자 평균임금으로 법적으로 하락해야하는 직업. 대한민국 법원의 노동에 대한 판결들 정말 짜증납니다. 이제는. 자본을 가진, 혹은 부유한 이들을 위한 첨병같습니다. 법관에게 노동하는 이들의 삶을 필수 교양과목으로 가르쳐야하지 않을지. 됀장....-_-
아래는 경향신문에 난 관련 기사임다.


<경향신문 기사 펌>
법원, 여성 패션모델 정년은?… 손배소서 ‘만35세’ 판결
입력: 2008년 04월 15일 18:05:08
 
 
여성 패션모델의 ‘정년’은 만 35세로 봐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7부(김영혜 부장판사)는 15일 화보 촬영 중 사고로 숨진 패션모델 오모양(사고 당시 17세)의 부모가 오양의 소속사와 화보를 촬영한 잡지사 및 사진작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오양의 부모에게 각 1억6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에서 쟁점은 손해배상액 산정 때 오양이 모델로 활동하며 돈을 벌 수 있는 나이를 몇 살까지로 볼 것인가에 모아졌다. 오양의 부모는 “딸이 살아있다면 60세까지 모델로 활동했을 것”이라며 각 1억9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패션모델 직종의 가동연한은 만 35세로 봐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한국모델협회에 등록된 여성 모델의 연령별 분포에 따르면 여성 모델의 94%가 30대 이하이고 여성 패션모델의 대부분이 30대 중반까지만 활동한다는 게 판단 근거였다.
재판부는 36~60세까지는 도시 일용근로자의 평균 임금을 기준으로 손해배상액을 정하는 게 옳다고 결정했다.
박영흠기자 heum3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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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16 2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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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은 독일 (여성)화가 케테 콜비츠의 <직조공들의 행진>(1897년)

* 독일 슐레지엔 직조공 봉기(1844년) 때 서정시인 하이네가 저항시로 쓴 것입니다. 숭례문 소실을 보고는 이 시를 읊조리고 싶더군요. 그저, 마냥, 어쨌든 노동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서글픔이랄까.

* 참고: 당시 독일은 자본가 계급이 주도하는 근대적 자본주의가 싹트지 못한, 융커(지주)계급과 군인 계급 등이 뒤엉켜 있던 보수반동적인 분위기였고 하이네는 이러한 현실에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시는 하이네의 저항시 중에 가장 대표적인 시로, 1844 년 독일 슐레지엔 지역-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제가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에게 말 그대로 '뺏은' 땅-에서 시 당국의 임금인상 지시를 상인들이 거부함에 따라 직조공 봉기가 일어난 직후에 씌여졌고 그들의 봉기 내내 노래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슐레지엔의 직조공

하인리히 하이네 지음

침침한 눈에는 눈물이 말랐다.
그들은 베틀에 앉아서 이를 간다.
독일이여, 우리는 너의 수의를 짠다.
우리는 그 속에 세 겹의 저주를 짜 넣는다.
우리는 철커덕거리며 베를 짠다.
우리는 철커덕거리며 베를 짠다.


첫 번째 저주는 하느님에게
추운 겨울에도 굶주리며 그에게 기도하였건만
우리의 바람과 기다림은 헛되었다.
그는 우리를 원숭이처럼 놀리고, 조롱하고, 바보로 만들었다.
우리는 철커덕거리며 베를 짠다.
우리는 철커덕거리며 베를 짠다.


두 번째 저주는 국왕에게, 부자들을 위한 국왕에게
우리의 비참한 삶을 본체도 않고
우리를 협박하여 마지막 한 푼까지 앗아가고
우리를 개처럼 쏴 죽이게 한다.
우리는 철커덕거리며 베를 짠다.
우리는 철커덕거리며 베를 짠다.


세 번째 저주는 잘못된 조국에게
이 나라에는 오욕과 수치만이 판을 치고
꽃이란 꽃은 피기도 전에 꺾이며
모든 것이 썩어 문드러져 구더기가 득실거린다.


복은 나는 듯이 움직이고 베틀은 삐걱거리며
우리는 밤낮으로 베를 짠다.
썩어빠진 독일이여, 우리는 너의 수의를 짠다.
우리는 그 속에 세 겹의 저주를 짜 넣는다.
우리는 철커덕거리며 베를 짠다.
우리는 철커덕거리며 베를 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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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프레시안 독자기고글] '통일 이후' 없는 '통일지상주의'는 비극 |생각이 머무는 너른마당 
 

* 작은 머리 생각 : 글에 대해 100% 공감(특히 사민주의적 변혁-정확히 어떤 말인지 몰라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읽을 만 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노동당원인 것 같네요, 기고자가. 대선 뒤 민주노동당이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는 군요. 민주노동당은 그 당 자체로의 의미보다는 진보당 이후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 형식을 담은 첫 진보정당으로 탄생했다는 의미가 더 클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민주노동당은 지지자이건 아니건 한국사회 급격한 변화(혹은 변혁)에 관심을 두는 이라면 주목할 만한 정치현상 중 하나였습니다. 앞으로도 그럴지는 두고봐야할 일이겠지만요.

   그런데 대선 뒤 분당을 하겠다는 측은 '종북주의' 이외는 분당의 논리를 크게 내세우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국민을 향해 민중을 향해 어떤 대안을 연구하고 논리를 만들어내고자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얘기가 없습니다. 씁쓸. 그래서 국민들이 보기에는 '북한 추종세력이 당내에 많아 같이 정당활동 못 하겠다'는 논리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첫 진보정당을 만든 세력장으로서는 안타까울 정도로 빈약한 목소리같죠. 대중서 <노동자 이야기 주머니> 끝 부분에 나오는 이른바 사회주의 혁명 뒤 이상적 사회가 된 뒤 단병호 할아버지와 아이들 얘기가 현실로 곧바로 될 것이라고 믿지 않아야할텐데요. 이상과 현실의 운동 벽 사이에 존재하는, 그러나 보다 현실에 가까운 정치적 실존체가 바로 정당이 아닐런지...

  또한 '전국연합'으로 대표되는 자주파 일부는 '종북주의는 없다'는 "운동"을 잘 모르는 국민들도 넘겨짚을 줄 알만한 '거짓'을 내뺃곤 합니다. 더욱이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 이른바 사회 진보를 얘기하는 사람이 "솔직히 우리 민족이 핵을 가진 것은 크게 나쁠 것이 없지 않느냐"는 말을 비보도를 전제로 취재과정에서 듣기도 했습니다. '반전과 평화'라는 시대가치로 본다면 그는 쇼비니스트와 다를 바 없는 극히 위험한 사고를 하더군요. 그런 사람이 21세기 우리 시대 한국사회 진보를 얘기한답니다, 참담하게도. 물론 이번 대선이 마치 '종북주의'라는 것 때문에 민노당, 더욱 적확하게 말한다면 한국진보정당 역사가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건 정말 억측이자 궁색한 변명같아 보입니다. "어쩜 한국 사회운동 내 주류 좌파(흔히 PD라고 통칭되는, 요즘은 민노당 내에서 평등파라고 불린다죠. 여기서 우파는 이른바 자주파를 말한다는 군요)의 능력이 그것 밖에 안 된다는 확실한 방증"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더군요. (여기에 조소 한 판. 그대여, 최장집 교수의 말처럼 과연 최소한의 수권 능력이 있는지 돌아볼 지어다.)

  암튼 국가보안법이 아직 있어서 문제이지 제 생각에는 그 주의도 하나의 사상으로 인정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사상의 자유'는 프랑스 대혁명(한국 헌법도 이를 반영하고 기반하고 있다는 의미에서)이 일궈낸 천부인권에 가까운 가치니까요. 문제는 그 주의나 사상, 그것에 기반한 조직과 행동 양식이 한국 사회 내에서 아직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지 검증하는 절차가 필요하겠죠. 그래서 이젠, 아니 더욱이 국민 앞에 맨살을 드러내야하는 정당, 그리고 정당원이라면 최소한 '커밍아웃' 정도는 할 자신이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그러지 않고는 한국 사회에서 사상의 광장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그 때문에 검증할 수 없는 선험적인 말의 성찬과 억지, 그리고 무척이나 낡아보이는 NL-PD라는 도식적인 콩글리시만이 지난 20여 년 가까운 기간처럼 되풀이 되겠죠. 덧말이지만 저는 그래서 '국가보안법'을 증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게 변명이든 뭐든 제대로된 사상의 광장을 만들지 못하는 든든한 주춧돌 노릇을 하니까요. 시사주간지 '시사in' 제17호(2008년 1월 15일자)에 '신좌파의 진화는 이제 시작된다'는 글을 기고한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와 같이 그런 낡은 구도에 염증이 난 이들은 '또다시 사회진보에 대한 말마디'에 끼어들 틈도 없이 쳇바퀴만 돌리면서 돌리고 돌리고 하겠지요. 제 생각에는 그 NL-PD 구도에 들지 않는, 최소한 거기에서 벗어나고픈 우석훈 교수와 같은 이들의 생각이 더 소중해보이던데. 각설하고 제가 한 '말의 난장'보다 훨씬 더 긴 아래글을 봐주3. 보시다가 지치시면 욕이라도 한 판 남기세요. 댓글 가지고 추줍그로(경남 방언으로 더럽게, 아니꼽게, 속 좁게 등의 의미로 쓰인답니다) 어디 고발하거나 수사의뢰하지 않을테니까요. *^^* 

[독자기고]자주파 운동의 대전환을 호소합니다 
  '통일 이후' 없는 '통일지상주의'는 비극 
   2008-01-17 오전 11:37:06

이하의 글은 소위 당 내외 소위 평등파 동지들에게도 해당되는 글이기도 합니다. 신당파가 주장하는 글 내용 중 북한 국가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자신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현재 평등파 중 현실 국가 사회주의 체제를 지지하는 이는 없다고, 돌연 사회주의 사회와 이론은 별도라며 순수 사회주의 이론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보다 더 큰 죄악입니다.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사회 변혁 운동에 헌신하는 분들이 체감하는 세상의 모순과 이치가 어찌 외국에서 한가로이(?) 지내는 자가 관조하는 그것과 같을 수 있겠습니까만, 상황에 따라서는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객관적인 평가와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지들께 감히 고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현실) 사회주의 체제'의 탄생과 실패의 극적인 드라마의 중심지였던 이 곳 러시아에서 말 그대로 국가 사회주의에서 천민자본주의로의 '거대한 전환'을 직접 겪으며 얻는 경험과 지식은 적어도 사회 변혁의 꿈을 버리지 않은 이들에게는 한국의 현실을 멀리 떨어져 볼 수 있는 것 이상의 중요한 무언가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민족주의-국가주의 저항운동의 불가항력을 인정해야
 
  현재 민노당은 대선 패배 이후 탈당과 분당 시도 등 창당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활동가들과 지식인들이 연일 '혁신'을 이야기하지만, 종북을 폭로하는 것 외에는 종북 극복 후의 그 '혁신'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없습니다. 그저 '종북이 있네, 없네'가 논쟁의 내용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서구(와 서구 자본)를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적 세계 지배 질서가 온존하고 있는 현재 세계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지구상 많은 지역과 국가들에서의 민족 해방 투쟁의 가치나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에 근거를 둘 수밖에 없는 투쟁과 운동의 과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국가 간의 경계가 옅어지면서, 중심부 내에도 주변부가 존재하고, 억압과 착취의 경계는 단순한 영토적 구분을 넘어 혼재되어 가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피억압 민족의 민족 해방과 국민(혹은 민족) 국가 건설의 과제가 절실한 인민들이 전 세계에는 아직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전 세계 모든 민족이 민족 국가를 건설하거나 독립 혹은 주권을 획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쿠르드인이나 팔레스타인인, 체첸인, 그리고 이라크인들의 주권 회복 혹은 독립 국가 건설 투쟁을 반제국주의 투쟁까지만 지지하고 그 이상에 대해서는 민족주의/국가주의 허상에 사로잡힌 운동이라며 반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민족 해방 이후 사회주의 혁명'으로의 도식이 의문표로 남거나 사라진 현재 논쟁의 여지는 많이 있지만, 저들에게는 제국주의의 직간접적 지배 사슬을 끓는 틀로써, 또 전체적으로는 무자비한 자본의 통제와 조절의 단위로서 여전히 국가와 민족은 중요한 단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족주의는 반역임에는 틀림없지만,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곧바로 민족주의는 반역이라고 강요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국가주의 혹은 민족주의에 동의하지 않지만, 시장 근본주의자들의 또 다른 모순적 얼굴인 제국주의적 국가 주도적 공격에 대항할 수 있는 틀로써 국민국가적 차원에서의 통제나 조절, 혹은 저항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원칙적으로야 세계 시민, 민중의 저항의 힘에 의한 변혁을 추구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주 자주 국민 국가의 틀 속에서 경제적, 정치적으로 조절하거나 저항을 조직하는 것이 실질적 문제 해결의 작동의 기제가 된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반면, 민족 국가 수립 이후 자본주의 체제의 적극적 일부가 되어 일정 정도 이상의 경제 발전을 이룸과 동시에 시민 사회가 급속하게 보수화되어 가고 있는 소위 반주변부에 위치한 상당수 국가들에서의 사회 변혁의 방향과 내용이 세계화의 광풍 속에서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에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준 제국주의적 모습과 종속적인 모습이 혼재되어 있는 이들 국가들에게 '모 아니면 도' 식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명백한 오류일 것입니다.
 
  그 중 특이한 위치에 놓인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이미 확연히 준 제국주의적 특징을 보여줌과 동시에 분단이라는 독특한 상황과 그로 인한 독특한 종속적 측면이 공존하는 남한 자본주의의 특성상 소위 자주파로 칭해지는 많은 활동가들과 조직들이 제기하는 과제는 일면 타당한 면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세계 10위권을 왔다 갔다 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상층부에 속해 있으면서도 동시에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그 어느 국가보다도 미국의 영향력이 국민 뼈 속 깊이까지 미치고 있는 국가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분단이라는 상황은 언제 어디에서나 민족주의는 우익의 논리라고 일반화할 수 없는 문제의 핵이기도 하고, 그 분단의 한 당사자인 국가 사회주의 북한의 존재는 전 세계에서도 유래 없는 한반도 좌파 운동 지형의 왜곡을 배태한 원인이기도 합니다. 분단은 정당한 복지 비용의 확대 요구 또한 국방비 우선 논리에 묻히게 하는 복지 국가 발전에 있어서의 저해 요인이기도 합니다.
 
  남한 외 수많은 지역과 국가들(심지어는 서구 국가 안에서조차)에서도 저항 이데올로기로서 불평등한 민족적 과제 해결을 위한 이념으로서 민족주의적 혹은 국가주의적 운동들이 존재하기에 이론상 좌파적 이념에 반대되는 민족주의적 이념이 남한에서만 특이한 현상은 아닐 것입니다. 제국주의의 지배를 분쇄하고 민족/국가적 과제를 각종 국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근거하여 추진하거나 이슬람 등 종교에 근거하여 저항하는 것은 역사에서 허다했으며 현재도 그러합니다. 분명 이는 올바른 운동은 아니지만, 그들의 의식 수준과 역사 발전의 단계, 그리고 현실적인 한계 속에서 불가항력적인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무조건 '민족주의=파시즘'으로 몰거나 민족주의가 아닌 것에 민족주의/국가주의 딱지를 붙이는 일부 사변적 원리주의 좌파적 관점에서의 비판은 정당하지 못 합니다. 더군다나 모든 자주파적 운동을 하는 이들을 종북주의로 규정하는 것은 더더욱 정당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통일 이후'를 생각 않는 자주파, 운동의 대전환 필요
 
  그러나 민족/국가적 과제의 해결을 위한 대안을 타국 지배 집단의 구체적 지배 이데올로기에서 찾은 것, 그것을 일국의 저항 이데올로기로 삼은 운동이 운동의 주를 이룬 역사는 남한 외에는 많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즉, 명백히 실패한 국가 사회주의 북한 관료 지배 이데올로기를 남한에서의 저항 이데올로기로, 대안 이데올로기로 삼아 싸워 온 것은 명백한 오류였습니다.
 
  현실 국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국제주의보다는 민족주의나 애국주의, 일국 국가주의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왜곡된 국가 사회주의 지배 집단 지배 이데올로기가 곧바로 민족주의로 등치되어 정당한 타 지역 민족 해방 운동이나 민족적 과제 해결 노력마저 민족주의 비판의 표적으로 만든 데에는 일부 김일성주의자, 주체 사상파의 책임이 큽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일부 종북 주체사상파들의 오래된 어법과 내용이 그대로 비판 없이 주체사상의 '주' 자도 모르는 다양한 자주파 활동가들에게도 수용되어 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종북주의자들은 소수일지 모르나, 그들의 언어와 수사와 논리가 동지들 운동의 상당 부분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일부 활동가들처럼 그러한 사실조차 깨닫지 못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치 교조적 좌파들이 현실 사회주의 실패의 진정한 원인에 대해 회피, 무시, 무지하여 100년 전 주장을 되풀이하듯, 주체사상의 '주' 자도 읽어 보지 못 한 이들이 같은 어법과 내용을 사용하여 운동의 내용으로 삼고 있는 것은 비극 중의 비극입니다.
 
  현재 자주파 동지들은 반미/통일 운동뿐 아니라, 북한 동포 돕기 운동, 한반도를 넘어선 동북아 평화 운동 혹은 보편적 평화/반전 운동, 그리고 심지어는 재일 조총련계 동포와의 연대, 중국 조선족 동포와 구소련 고려인 동포 돕기 운동 등 다양한 운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미 구체적인 사업들이 각 단체의 고유한 사업으로 자리잡고 있음에도 이 모든 운동에는 북한과의 평화와 통일이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고, 북한과의 통일 논의 없는 평화나 연대는 의미가 크지 않은 것으로 비추어지기도 합니다. 그만큼 통일 문제는 한반도에 사는 사람이라면 심지어 극단적인 탈민족주의자들조차 피해갈 수 없는 사안이기도 하며, 세계 평화나 한국의 진보 등 여러 면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통일 문제가 이토록 중요하기에, 통일지상주의적인,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통일 이후를 생각하지 않는 현재의 자주파 동지들의 생각의 대전환을 간곡히 호소하고자 합니다.
 
  거칠게 단순화하자면, 구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은 스스로 실패를 인정하고 시장 경제로의 전환을 선언, 체제 전환을 시도하고 있거나, 시장 경제로의 전환을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그 어느 시장 경제 국가들 못지않은 시장 경제 체제로의 실질적 전환을 하고 있거나, 민중의 피에 기댄 채, 간신히 지배 집단의 수명을 연장하고 있는 세 가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들 중 세 번째인 가장 재앙적인 길을 가고 있는 국가가 바로 북한입니다.
 
  모든 것이 다 드러난 현재,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은 말 할 것도 없고, 북한 체제는 우리의 대안도 아니기에 그러한 통일은 지지될 수 없으며, 통일에 있어서 그 체제를 지지할 세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기에, 이후 통일 방향은 현실적으로는 남한 주도의 천민자본주의가 이식되는 방식의 통일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연방제만이 남한식 천민자본주의를 북에 이식하는 것을 막는 길이라는 주장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 실현 가능성은 둘째로, 과연 연방 주체 간 격차의 해소와 한 쪽 연방 주체의 경제 발전 방향을 어떤 체제 방식으로, 어떤 우월한 방식으로 해결하려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민족끼리 통일하고, 미국을 쫓아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남한은 복지 국가 서독이 아니고,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 모범국이었던 동독이 아닙니다. 동독의 시민들이 2등 시민이라고 느끼는 거시적 차원의 사회 통합 문제에 있어서의 막연한 추상적 묘사 정도가 아닌,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착취와 차별, 불평등의 구조가 만연할 것입니다. 응당 치러야 할 통일 비용이라고 흔히들 언급하는 상식(?) 수준을 넘는 천민 자본주의적 구조가 이제 한반도 북녘에까지 확장될 것을 상상하면 끔찍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이 된다면…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지금과 같은 남한의 천민자본주의 체제를 뜯어 고쳐 바꾸지 않는 한, 통일 후 시장 경제에 익숙하지 못한 북한 주민의 상당수는 빈곤층이 되거나 저임금 노동자화 할 것이고, 작금의 한국 자본의 기업 문화가 유지된다면 기존의 사무직/생산직 차별, 정규/비정규 차별, 지독한 잔업 문화에 더해 북한 출신에 대한 차별과 같은 다층적 착취 구조는 더욱 고착화될 것입니다. 지금도 이주 노동자들이 고된 노동과 차별에 고통 받고 있는 일정 규모 이하의 영세 사업장이나 공장, 각종 자영업, 건설 현장 등에서 현재 이상의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 경우도 허다할 것입니다.
 
  남한의 건설족과 토건족, 투기꾼, 가진 자들, 지배자들, 그리고 각종 기득권 세력들은 북한의 구석구석까지도 개발과 시설 현대화, 경제의 자본주의화라는 명목 하 부동산 소유, 땅 투기 전쟁을 벌이며 추악한 남한의 소유 구조를 더욱 천박하게 전이시키려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특유하게 구조화된 국가의 책임회피적 고용 구조인 자영업 중심적 발전 계획은 사적 소유와 시장에 낯설은 상태로 자영업에 뛰어들 북한 주민을 상대로 한 수많은 사기와 남한의 대 영세 자영업 착취 구조를 그대로 옮겨 놓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업들은 헐값으로 북한의 기업들을 사들이고 북한 저임금 노동자들을 대놓고 착취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그 무엇보다도 기업들에 의한 개발과 투자의 현장들에는 반드시 성매매 접대 유흥업소가 넘쳐 날 것이고, 시장 경제가 요구하는 지식과 기술이 더욱 부족한 수많은 북한 여성들은 이들 업소로 끊임없이 흘러들어 갈 것입니다. 미국과 미군이 만들어 놓은 엄청난 여성 모멸적, 민족 모멸적 구조와 그 장소들에서의 미군 남성들의 난장판만이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같은 한국 민족 남성이 한국 민족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문제, 미군들의 그것에 비해 비교도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규모로 이루어져 왔고 이루어질 것인데 이에 대한 고민이 없음은 심히 유감입니다.
 
  이러한 재앙을 막는 길은 언뜻 보기에 통일과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남한에서의 이주 노동자, 여성 등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며, 복지 체제 확립을 위한 각종 투쟁(성접대비 복지비 전환 투쟁, 토지 및 택지 국유화 투쟁, 부유세 신설 투쟁 등)이며, 무상 교육, 무상 의료를 위한 고소득층, 재벌들의 소득의 상당 부분을 복지로 강제하는 법의 제정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깨달아야 합니다. 이 길이 통일 운동이 진정으로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천박한 기업이나 부동산 투기자들, 기득권 세력들, 가진 자들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네 노동 대중의 의식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존재합니다. 자주파 동지들은 이주 노동자 문제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외국인 문제가 아니라 같은 민족의 문제일 경우 민족주의 운동이 조금 더 민감하다고 가정할 때, 이주 노동자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 조선족 동포들의 문제에 있어서 현재 한국 사회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그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지 동지들도 뚜렷이 목도하고 있을 것입니다.
 
  중국 조선족 동포들은 아직 한국 노동 시장의 극소수만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적개심은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더군다나 대량 실업 상황이나 경제 대공황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같은 동포에게조차 적대적입니다. 만일 북한 동포들이 대규모로 노동 시장에 유입될 경우 그 사태는 짐작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정말이지, 이제 통일 그 자체가 아니라 통일 이후의 사회에 대해 고민하고 현재 한국 자본주의의 천박성을 깨 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한 목표라는 것을 인식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 사회는 단순한 보수화 정도를 넘는 기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근원에는 제로에 가까운 복지 부재의 천민자본주의 체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학벌과 학력 중시, 고시 열풍, 재산 개념으로서의 부동산 투기 열풍, 펀드 투자 열풍, 지나친 가족 중심주의 등 한국 사회에만 고유한 기이한 현상들 모두가 바로 국가 사회 보장을 해 주지 않아 사회가 보장해주지 않는 부분을 개인적 수준에서 각자가 해결해야 하는 데에서 생긴 일종의 사회 보장 대체 자구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체질의 고착화의 결과, 정치적 민주화에는 상대적으로 높은 관심을 가졌던 국민들은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의 역사 뒷면에서는 동시에 극단적인 경쟁 자본주의 체제에 익숙해져 오면서 사회 경제적 민주화, 평등화에 대해서는 강한 저항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복지 등 국가가 당연히 제공해야 하는 것들에 익숙하지 못한 국민들은 모순적이게도 복지를 갈구하면서도 그를 위한 희생이나 기여에 대해서는 강한 저항감을 가지고 있고, 복지의 근간인 사회적 연대나 평등주의에 대한 거부감은 상대적 정치적 민주화 이후에 경제적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일체의 개혁을 거부하는 경향을 보이기까지 합니다.
 
  지난 10년 간 구호와는 달리 기득권으로부터의 양보와 기여를 위한 일련의 개혁들이 이루어지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권력과 부가 확대되고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소위 민주 정부의 처방에 대한 불신은 확대되었고, IMF 구제 금융 사태 이후 세계화의 영향 하 신자유주의적으로 재구조화된 사회 체계에 적응되어 버린 국민들은 기존의 수 십 년 동안의 최악의 복지 부재 사회 속에서 형성된 기형적인 부동산 소득 등 임금만으로 생계가 불가능한 극단적 왜곡된 소득 구조에 더해 주식, 증권, 펀드 등 소위 각종 불로 소득을 좇아 말 그대로 살기 위하여 '금수의 생존 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민노당 지지율이 하락한 것은 후보가 다른 이었더라도 예측 가능했을 것입니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국민 의식 속에서라면 일정 정도의 경제적 발전이 동반될 경우, 그 세련된 방식에 의해 민중의 분노는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되거나, 또 다시 엉뚱한 해결 방안을 찾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단순 보수화를 넘어 극우 파시즘의 전조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합니다. 기존의 계급 차별 뿐 아니라, 이제야 조금씩 문제 제기되고 있는 여성, 학벌, 학력, 지연, 나이, 직업, 장애 등등에 의거한 우리 사회에 고질적인 차별과 배제와 불평등 문제 해결도 후퇴될 가능성이 다분한 상황 속에서, 우리 사회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서구 사회의 오랜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인 타민족 혐오증까지 노골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경고는 일정 정도 타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일이 된다면, 기업과 국가에 의한 착취와 억압과 동시에 일반 노동 대중 내에서조차 갈등과 차별,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민주의적 변혁을 위하여 
 

 새 정부는 어찌 되었든 실용주의를 내세우고 기업의 북한으로부터의 이익 보장에 더 관심이 크기에 북한과의 긴장을 바라지는 않겠지만, 이 명박 보수 정권의 또 다른 한 축은 미국 네오콘 등과 이해관계가 더 깊은 극우 보수 집단이기에 상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대북 관계와 통일 문제 등에 있어서도 미국과 한국 네오콘의 영향 하의 위험한 정책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러나 국지적이든 전면적이든 미국과 이 땅의 극우 세력들의 전쟁 책동이 전면화되지 않는 한, 이제 자주파 동지들은 통일을 위해서, 북녘의 동포들을 위해서, 여러분들이 주장하는 진정한 민족의 번영을 위해서라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운동을 해 나가기를 호소합니다.
 
  시장 없는 사회 체제 실험은 소련에서나 북한에서나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시장의 폭력을 제어하고 통제하는 것은 우리의 임무이며 그것이야 말로 지배자들과 가진 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통일 이후 북녘 사회마저 시장 경제라는 이름하에 남한식 천민자본주의가 이식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실현 불가능한 연방 코리아를 주장하기 보다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북한 인민들의 저임금 노동자화, 도시 빈민화, 그리고 북한 여성의 성매매 여성화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근본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길은 현재로서는 단 한 가지입니다. 북구와 서구 복지 국가에서 실행하고 있으며, 일부 제도는 우리보다 못 한 국가에서조차 실행하고 있는 사회민주주의적 변혁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통일과 반미 투쟁의 열정을 주택, 토지의 공공성 확보, 교육, 의료의 무상 실시, 그리고 이를 위한 부유세 채택 및 공정 과세, 탈세 철저 징수 등이 실현될 수 있도록 싸우는 데로 전환해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이 유지된다면, 통일의 기쁨은 그 순간뿐일 것입니다.
 
  국가가 보장을 포기한 일년에도 수십 개의 점포가 생기고 사라지는 극도로 불안정한 자영업 종사자 수를 유럽 수준으로 줄임과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최하 수준인 사회 서비스업을 유럽 수준으로 올리고, 자영업 중 고소득 전문직 및 유흥업소의 대규모 탈세 처벌, 그리고 교회 등 종교 시설의 세제 혜택 철폐, 그리고 수 조 원에 달하는 기업의 성접대 비용의 복지비로의 전환, 150만 명의 여성들이 옭아 메어져 있는 GDP 5%에 이르는 각종 성산업의 축소, 그리고 이러한 유흥업소 등지에 기생하며 지배자들과 가진 자들과 동맹을 맺고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각종 폭력배들의 축소를 위한 싸움이야 말로 북한 인민들을 현재의 야만적 남한 자본주의의 음지로 내몰지 않게 하기 위한 진정한 '통일 운동'입니다.
 
  일 터지고 난 다음 반대하는 모습은 이제 그만 합시다. 적극적인 남한 자본주의 사회의 변혁을 위한 대안을 향한 싸움으로 전환하는 데에는 동지들의 힘이 절실합니다. 통일 조국의 진정한 희망은 남한 사회 변혁, 그러나 과거와 같은 실현 불가능한 사회주의 혁명이 아닌 사회민주주의적 방식에 의한 사회 변혁으로 남북한 민중의 운명을 도탄에 빠뜨릴 수 있는 기도를 막아 냅시다.
 
  '평양 미인 항시 대기'라는 간판이 한 집 건너 하나씩 버젓이 걸려 있는 거리, '함흥 며느리 절대 안 도망감'이라는 현수막이 버젓이 걸려 있는 풍경, 통일된 나라에서는 북녘 땅에도 이 땅에도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면, 이북 노동자들이 2등 국민으로 차별당하는 꼴을 보지 않으려면 자주파 동지들의 고유한 투쟁의 사회민주주의적 사회 변혁 투쟁으로의 전환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것 다시 한 번 강조하며 동지들의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촉구합니다.  
   
  정다신(필명)/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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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동안 성공회대 경제학과 우석훈 겸임교수가 쓴 지난해 하반기 스테디셀러인
<88만 원 세대>란 책을 3분의 2 정도 읽었습니다. 지금도 읽고 있죠. 올간만에 한 두 번 이상 읽어야할 책을 발견한 느낌입니다.

'우리 동네의 변화는 어떻게'라는 생각이 새삼스레 화두처럼 떠오릅니다. 그리고 제가 있는 공간에서 '어떤 답이 도사리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려 합니다. 설 연휴 내내 어디 나가지 않고 '방콕'해서 보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래서 이런 결심을 한 번 해보게 됐습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내 삶의 물질적 기반인 경남도민일보사조차-을 처음에서 처음부터 생각해보자. 내 삶을 '근본에서 되돌아보자'고요.

이런 생각의 단초를 이 책 <88만 원 세대>이 한 것 같습니다. 제 주위에선 현재 우리에게 주어지는 물질적 기반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만이 가득합니다. 어쩜 노조(지부)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제 또한 그 속에 한 명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성찰을 해볼까합니다. 조용히.. 그리고 강렬하게..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생각나는 책 두 권이 있었습니다. 1999년에 출간된 조지 카치아피카스의 <신좌파의 상상력-세계적 차원에서 본 1968>, 2001년 초 출간된 수잔 앨리스 왓킨스, 타리크 알리 공저의 <1968 -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입니다.

우석훈 교수가 <88만 원 세대>에서 말하는 (취업과 최소 명예자본 획득을 위한)바늘구멍의 마지막 세대인 30대 초중반(72년-78년생, 대학을 다닌 이라면 학번으로는 92-97학번)에 제가 끼는 것 같습니다. 우석훈 교수는 이 세대를 한국사회 최초로 다안성 세대로 주목받았지만 IMF구제금융을 맞아 후퇴했거나, 다안성과는 거리가 있는 행보를 한 세대라고 규정하더군요. 그리고 그들을 소비 마케팅이란 관점에서는 'X세대'라는 이름을 지워주고요.

제 생각에도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른바 이 세대 때 대학을 다니며 철학.사회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던, 혹은 학생운동이라는 단어에 물 방울이라도 튀었던 이라면 맑스나 엥겔스, 레닌, 주체사상보다는 오히려 '1968년 혁명' 후일담(에필로그)에 더욱 귀를 기울였으니까요. 참고서적으로 장 보드리야르와 같은 68혁명에 대해 비판적 시각으로, 자본주의에 대해 분석하되 대안은 '없음'으로 마침표를 찍던 이들의 책 한두 권도 읽고. 물론 우리 동네 대학에선 서울과 수도권의 담론생성 시기보다 한 2-3년이 느린 탓인지 그 책이 나올 때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더군요.

암튼 이 책 읽어보고 간만에 서평 아닌 서평도 써보고, 우리 시대에 정말 적확하게 필요한 담론이 무엇인지 나름 재구성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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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초 공부랍시고 할 거라고 서울에 머물 때였음다. 3월말 정도 된 것 같은데, 경희대 정문에서 가까운 관광대학  독서실에서 나와 커피 한 잔 마시고, 담배 하나 피우다가 어떤 느낌이 들더군요. 중학생들이 하교하는 장면, 옆에서 공사하는 거센 소리, 새소리, 갓 잎사귀가 나온 나무들이 어우러지고, 곧 꽃망울을 터뜨리려는 벗꽃. 그 공간에서 소속되지 못하는 부유하는 생물같은 나.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서 글쩍였던 넋두리임다.

표상(representation)-  경희대 한 편에서  
 
  깃발이 날린다
  봄의 염장을 지른 그늘이
  사시나무의 흔들림을 몸으로 감염시킨다 그
  뿐이다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좌에서
  익숙해진 일상의 일상을 반복한다
  전복은 가슴에만 살아있는지 숨겼는지
  재잘거린다
  소리와 소리가 파찰음을 낸다 우에서
  참새-사라지는 반가움-가 담소를 나누고
  종합 강의동을 짓는 파괴적 창조가 운다
  소리친다 모든 소리를 흡수하려 한다

  한계가 봄을 때린다
  지칠 거야 지칠 거야
  한기가 촉수를 뻗는다
  말미잘이 독한 기를 내뿜는다

  택시가 언덕을 헐떡이며
  미끄러진다
  욕하지 마라
  사납금과 일당을 벌기 위해
  배회한다
  기사가 차를 위로한다

  봄이 산란한다
  한 무더기의 지친 이미지를
  지치도록 눈알에 쑤셔 넣는다
  새 천년 삼월의 막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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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에 대한 진지한, 혹은 술자리 평가가 계속 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중앙일보는 권력을 시계추에 비교해 우로 시계추가 대이동을 했다는 '거대한' 평가를 했죠.

대선에 대한 제 짧은 생각을 얘기해보면 이렇습니다. 임영일 전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가 한국의 기업별 노조 체계를 가지고 썼던 표현인 '87년 체제'를 빌어 '87년 체제와 그 체제가 잉태한 세력장의 대몰락'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의 형식적 발전이라는 담론, 또한 '지도' 등과 같은 지식인 중심주의가 물씬 풍겼던 계몽주의적 형식에 연연했던 세력장들이 이번에 국민들에게 제대로 심판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중도든, 좌파(혹은 진보)든,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자든 이른바 1980년 혹은 90년대 초까지 대학을 나온 지식인군 혹은 중산층들 모두 민주주의 내에서 자신의 담론만을 의제화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들 상당수가 노무현 정권, 혹은 민주노동당 내에 포진됐고, 그들은 그들이 선호하는 언어행위로 한국 사회를 정리하고 해석했다고 봅니다.

그 해석과 그 형식에 대한 단죄가 이번 선거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좌파 이야기꾼 김규항씨가 저희 신문사 강당에 와서 한 강연내용이 기억에 남습니다. 김규항씨는 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을 예로 들면서 "그들 중 상당수가 '이미 한국의 민주주의는 완성된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면서 "하지만 그들은 역사 속에서, 아니 그들이 말한 과거의 얘기에 대해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에는 "우린 80년대와 90년대를 관통하면서 단 한번도 형식민주주의의 발전만을 얘기한 적이 없다"면서 "그들과 나 대부분이 당시 '한국사회의 변혁'을 얘기해왔다. 지금 그 때 꿈꾸던 한국사회의 변혁이 한치 앞이라도 이뤄졌나?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역사적인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는 상당한 비판이 묻어있었죠. 아마 대통합민주신당, 혹은   참여정부와 구 열린우리당, 특히 그 속에 있던 개혁 진영이라는 이들에 대한 일갈이라 생각됩니다.

시사저널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기자(언론노조 시사저널 분회 소속)들이 새롭게 창간한 '시사IN'이라는 시사주간지 최근호(16호, 2008년 1월8일자) 커버스토리 기사에 실린 최장집교수와 후마니타스 대표 박상훈 박사(정치학)와의 대담에는 또다른 시각이 있습니다. 일반 국민들의 시각과 정서로 대통합민주신당과 참여정부 등 현 집권세력의 대선참패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인용해보겠습니다.

  [Q: 민주화 20년의 종결인 셈인데, 결과를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는다.

 최장집: 노무현 정부의 패배일 뿐만 아니라 사실상 민주파 세력의 완벽한 패배다. 1987년 민주화 이후부터 첫 번째 궤적이 매듭지어졌다. 한 번 잡고, 한 번 가는 왕복이 일단락 됐다. ....... 이번 선거를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특히 중요하다.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민주주의의 후퇴이며 위험하다는 해석이다. 선거 전에 대통합민주신당이 말했던 것이다. 두 번째는 이번 대선이 정상적인 민줒적 선거 경쟁의 결과라는 관점이다. 나나 박 박사는 후자다. 또한 이번 실패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제대로 된 정당을 못 만든 결과이다.

최장집: 열린우리당이든 국민회의든 정당 스스로 경제 장관을 갖고 철학을 지니고 인적 자원을 구비해야한다. 민주화 이후의 정부를 장악했던 지도자나 세력은 이런 관념이 없었다. 그것이 관료 지배를 가져온 것이다. 경제.행정 부처들, 예산처, 금융감독원 거의 완벽하게 경제관료의 통제 아래 놓여있다. 그들이 민주적인 통제를 벗어나 움직이면 재벌 집단이라든가 사회 상층과 결착될 수밖에 없다.

  박상훈:지지자를 대표해서 대안을 조직하도록 기능적으로 분화된 조직체가 정당이다..... 국민 보고 낮에 일하고, 밤에 대통령한테 보고서 쓰라고 대안을 요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명박 정부를 불러들인 것은 노무현 정부다. 민주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신자유주의와 성장주의라는 나쁜 조합을 만들고 정당화했다. .... 하층 배제적인, 중산층 위주의 민주주의였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새로운 보수적 민주파의 형성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지금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민주파 내부의 기득권층이다. 보통 사람들은 노무현 정부에서 특별히 혜택받은 것이 없는데 왜 정권 교체에 호들갑을 떨어야하는가.]


그럼, 이번 대선 참패의 또다른 한축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노동당은 어떨까요? 그건 담에...

긴 글 읽어주신 분께 급절함다.

2008.01. 03

Posted by 늘 축제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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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간만에 글을 쓰는데 또 란 설명부터 하는 군요. 공동체-풀뿌리, 소비에트, 꼬뮌 등-에 대한 다양한 담론이 아직도 우리 사회 한 구석에 있는 것 같습니다.

갈피를 잡을 수 없지만 그 잡을 수 없는 갈피의 하나로 제가 추측해본 것은 노동이 최소화되고, (자본주의적, 혹은 추상적인 개념의)노동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을 최대화할 수 있는 세상, 공동체입니다. 그 공동체는 흔히 이야기하는 프라이버시(이 개념조차 분자화된 개인으로 해체해버린 자본 혹은 자본중심 사회의 전략일 수도 있겠지만)조차 파괴되는 봉건적 공동체를 말하진 않습니다.


아직 모르겠지만 그런 제 어설픈 지향에 대해 한 번씩 쓸 수 있는 마당이 이 란이었음 함다.  

'노동거부/문화사회를 위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란은?  (0) 2008.04.07
Posted by 늘 축제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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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말인가 정규1집 앨범 <노(怒)>에 <청년폭도맹진가>를 싣고 홀연히 나타나 조선 펑크록을 주창한 밴드 노브레인. 대중들에겐 영화 <라디오 스타>에 나오는 <넌 내게 반했어>로 잘 알려져 있죠.

이 친구들이 지난 9월 정규앨범 5집을 냈는데, 거기에 <come on come on 마산 스트리트여>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최근 마산 관련 노래가 거의 없는데, 참 '방가'하죠.

  저작권 문제 때문에 노래파일은 찾아들으시길. 이해해주시길.....

  이 밴드의 보컬 이성우가 마산 출신입니다. 글고 네이버 검색을 해보니까 마산청강고등학교(현 마산제일고등학교) 출신이고, 노래 가사를 들어보니까 마산 중앙동에 집이 있었다네요.

  노래가사에 마산앞 바닷물을 이른바 '똥물'이라고 하지 않고, 고향에 대한 애정을 담았는지 '콜라빛나는'이라고 한 게 잼 네요.

<come on come on 마산 스트리트여>

내가 태어난 그 곳 마산 스트리트
바닷바람 거친 항구의 도시
특별한 것도 정 갈만한 구석 없어도
난 그 곳을 사랑하네

콜라빛나는 바닷물이 흘러흐르고
아줌마의 구수한 마산 사투리
정든 그 곳을 등지고서 난 떠나왔네
꿈을 가득 안고서

흘러가는 한강의 강물이여
마산항으로 내마음 보내다오

Come on! Come on! 마산 스트리트여!
Come on! Come on! 나의 나의 친구여!
Come on! Come on! 마산 스트리트여!
뛰어올라라!


일가 친척 하나 없는 서울로 와서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나날
싸구려 낡은 나의 기타 함께라면
난 어디든 즐거웠지

몇년만에 찾아간 마산 스트리트
내가 거주하던 나의 집은
아버지의 눈물과 함께 날 떠나갔네
나의 추억과 함께

달려가는 서울행 열차여 워어어
흘러내린 내눈물 닦아주오

Come on! Come on! 마산 스트리트여!
Come on! Come on! 나의 나의 친구여!
Come on! Come on! 마산 스트리트여!
뛰어올라라!
뛰어올라라! Ah Ha!

흘러가는 한강의 강물이여 워어어
마산항으로 내마음 보내다오

Come on! Come on! 마산 스트리트여!
Come on! Come on! 나의 나의 친구여!
Come on! Come on! 마산 스트리트여!
뛰어올라라!
Come on! Come on! 마산 스트리트여!
Come on! Come on! 나의 나의 친구여!
Come on! Come on! 마산 스트리트여!
뛰어올라라!

Posted by 늘 축제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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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었죠.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을 보고 그냥 어설픈 제 느낌만을 옮겨본 넋두리임다. 90년대 학번은 대학을 가자마자 느껴야하는 80년대라는 신화적 공간, 얘기. 딱 그 느낌, 그런데도 아픈 거. 영화 <박하사탕>을 보고 조금은 울고, 조금은 아파하며 술 먹고 한 넋두리였음다. 1은 김영호를 보며, 2는 순임을 보며 내뱉은 지껄임.....

  박하사탕 1* -네게 분노해

  그렇게 내동댕이칠 게
  목숨
  인생 미안 정의내리진 않을게

  우리가
  만남이란 교차로를 지워버린다면
  그래
  너는 거기 난 여기에

  실룩거리지 좀 마
  네 입술의
  영롱함이 너무 안타까운 걸

  네 생의 모든 축조가 손이어야 하니?
  그러지는 마
  단지 조금, 아직은
  넌 살아야 했어

  제 맘대로 굴러먹은 이미지
  그 따위를 패대기쳐 삼킨 후엔 아픔은
  어디에도 제 이름을 발하지 않아
  빛 따위는 더더욱

  겨워
  그 놈 앞에 서면
  잊힌 신화 속에 자랑삼던 무식하나 믿고
  버둥거리던 독기도
  웬걸 소용없어
  무거운 걸
  그나마
  그 앞에서 우리는
  보편이야 한 땀의 위안이지


  말해봐 나지막하게라도
  누리고 싶었다고 조금은
  부끄럼이었다고

  지난
  회상이
  무게가
  때 이르게 식힐 순 없어 네 체온을
  연방 호흡 한 판 겨룰 틈 없이 오늘이
  독점한 오늘이란 말만으로
  우릴 피폐로 쑤셔 박을 순 없듯이

  외치지마 제발 그만둬
  네게 분노할거야 그럴 뿐이야
  그러려고
  그러려고......


    *  김영호에 대한 에필로그


  박하사탕 2*  - 산소호흡기 
 
    삐 - 이 - 익
   삐이익 삐익 삐익 삑
    삐  ∼

  결국은 호흡기도 지쳐 떠나버리네요
  내 미약한 숨소리를 뒤로 한 채

  한 번은 만나야 했겠죠
  이렇게 마냥
  한마디 말을 떨구어버린
  눈물로 대신하네요

  그럴 필요는 없어요
  이미 한 번은 죽었고
  당신은 그 죽음을 이제야 다시
  확인할 뿐이죠

  지난날은 회한어림이 아닌
  우린 허기진 아픔의 서사체 속에
  내동댕이쳐졌을 뿐이죠

  그랬죠
  당신은 나를 향해 두려움을
  내쏘았고
  전 두려움으로 한 번의 죽임을
  당한 거죠

  지쳐버린 당신의 손에서
  봄이 당신께 선사해준 그래서 감사한 듯
  젖어 내린 당신의 눈길을 보았어요

  시간마저 거슬러 오르는 이미지의 노림수를
  살며시 제쳐두면
  당신과 제겐 멈출 수 없는 건 시간이고
  지울 수 없는 건 흩뿌려버린 흔적들이겠죠

  그럴 필요는 없었어요
  당신은 이십 년 전 십구 년 전
  십삼 년 전에도
  지금도 당신이에요

  한번에 지쳐 흘린 당신의 生도
  제겐
  그것마저도 소중했어요

  그래요
  고개 잠근 눈물도 가벼운 반성도 소망스런 되돌림도
  섣부른 외침도 살아가는 지금을 위해
  잠시 미루어야겠죠
  삶은 아름답고 당신조차
  기억 잃은 아름다움의 작은 파편이었으니까요


  *  순임의 못다한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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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가요제’ 왜 스타 배출 못할까?
 

마이데일리 | 기사입력 2007-10-07 11:27 | 최종수정 2007-10-07 11:42

[마이데일리 = 배국남 대중문화전문기자] 6일 열린 단국대 천안캠퍼스에서 열린‘2007 MBC 대학가요제’ 대상의 영광은 ‘Y’를 부른 김예지, 이정임 등 한양여자대학 실용음악과 학생 10명으로 구성된 레게 밴드 B2에게 돌아갔다.


1977년 제1회를 시작으로 올해로 31회째를 맞은 MBC ‘대학가요제’는 한때 스타 가수의 산실이자 인기가요를 양산하는 강력한 출구였다. 하지만 근래 들어서는 스타 가수뿐만 아니라 대학가요제에서 수상한 곡들이 히트하는 경우가 점점 감소하고 있다.


1977년 제1회 MBC 대학가요제 대상곡 ‘나 어떡해’(서울대 그룹 ‘샌드페블즈’)를 작곡한 김창훈은 형 김창완과 함께 산울림을 결성해 스타 대열에 합류했다.


‘비가오면 생각나는 그사람...’이란 노랫말로 시작되는 ‘그때 그사람’을 부른 심수봉은 1978년 제2회 대학가요제에서 대학생다운 참신함이 없다는 이유로 수상하지 못했지만 심수봉은 대학가요제 출전을 계기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30년 가까이 수많은 트로트 명곡들을 작곡하며 노래를 부르는 스타 싱어송 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심수봉과 같은해 ‘대학가요제’에 출전해‘돌고 돌아 가는 길’로 금상을 받은 노사연 역시 곧 바로 대중가요계를 평정하며 스타로 떠올랐다. 배철수, 임백천, 조하문, 구창모, 김학래 등이 80년대 초반까지 ‘대학가요제’에 출전해 스타 가수로 발돋움해 ‘대학가요제’출전은 곧 스타 가수의 등용문같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러한 현상은 1980년대 중후반까지 이어졌다. 1986년 10회 대상 수상자 유열도 참가곡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히트시키며 가요계에 데뷔해 DJ로 활동영역을 넓혀 지속적인 활동을 하고 있으며 1988년 ‘그대에게’를 부른 그룹 무한궤도의 일원으로 참가한 신해철, 신해철과 같은해 참가한 015B의 정석원 등도 대학가요제가 낳은 스타 가수다.


하지만 ‘대학가요제’의 스타 산실 역할을 1990년대 들어 현저히 약화됐다. 1991년 동상을 받은 김경호 등이 대학가요제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높은 인기를 얻는 스타로 발돋움 한 것을 비롯해 1990년대 들어 전람회의 김동률(93년 대상), 캔의 배기성(93년 은상), 빅마마의 이영현 등도 대학가요제와 인연을 맺어 연예계로 진출한 스타들이지만 ‘대학가요제’를 통한 스타 배출은 1980년대 들어 급격히 감소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좀처럼 눈길을 끄는 ‘대학가요제’출신 스타 가수들을 보기가 힘들다. 2005년 열린 29회 대학가요제에서 ‘잘 부탁드립니다’를 불러 대상을 차지한 Ex 정도가 ‘대학가요제’출전이후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가수다.


1990년대 들어 ‘대학가요제’가 스타 배출 창구 역할이 약화되고 근래 들어서는 ‘대학가요제’출신 스타 가수들의 명맥이 끊긴 것은 다양한 원인이 있다. 1990년대 들어 스타 가수들을 배출한 곳은 막강한 자본력과 마케팅력을 가진 연예 기획사이다. 연예기획사가 가수들을 발굴하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하면서 가수 데뷔 창구역할을 했던 대학가요제가 무력화 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또한 조PD처럼 인터넷을 통한 데뷔 등 1990년대 들어 가요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수 데뷔 창구의 확대 역시 대학가요제 출신 스타 가수들의 감소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대학가요제가 가수의 꿈을 갖고 있는 대학생들의 유일한 스타 산실의 역할을 하던 1970~1980년대에는 재능있는 대학생들이 대학가요제 출전을 계기로 가요계에 진출했으나 1990년대들어서는 다른 채널을 통해 가수로 데뷔하는 경우가 더 많아진 것이다.



또한 대학가요제 출신 가수들의 방송사의 전폭적인 지지와 방송기회 부여가 감소한 것도 대학가요제 출신 스타 가수들의 감소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1970~1980년대에는 주최한 방송사 MBC뿐만 아니라 타방송사도 참신성을 갖고 있는 대학가요제 출신 가수들을 음악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오락 프로그램에도 출연시켜 유명성을 확대시켜줬지만 1990년대 들어서는 이같은 현상이 사라졌다.


대학가요제 출신 스타 가수들의 감소의 가장 큰 원인중의 하나가 바로 대학가요제와 참가자의 정체성과 존재의미의 상실이다. 1990년대부터 대안문화와 저항문화가 퇴조하고 대중문화의 폭발이 캠퍼스를 잠식해가면서 대학문화의 정체성 상실은 대학가요제 정체성 상실과 존재의미의 퇴색으로 이어졌다. 대학가요제가 연예계로 진출할 수 있는 통과의례 절차로 전락하면서 대학가요제는 대학의 대중문화화를 촉진시킨다는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대 후반 '대학가요제' 심사위원으로 나왔던 가수 양희은은 “요즘 대학가요제에는 귀를 잡아끄는 노래가 없다. 대중가요와 마찬가지다. 요즘 젊은이들은 남의 것을 조합해서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노래밖에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 것은 요즘 대학가요제의 참가자들이 더 이상 기존 대중음악계와 차별화된 독창성이나 참신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대학가요제 출신 가수들이 스타로 부상하지 못한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작은 머리생각임다 : 대학문화가 예전처럼 마치 대중문화에 대한 저항(counter-culture)의 진지라는 생각을 할 필요는 없겠지요. 요즘 같은 '소비의 사회'에서. 하지만 기존 대학문화에 있었던 최소한의 상상력은 이제 기대하기 어렵다는 데는 동의를 합니다. 동의를 하면서도 그 동의가 찜찜한 동의, 안타까운 동의네요.

  상상하지 않는, 혹은 상상을 망각한 존재에겐 내일이란 그저 동일 시간의 연속과도 다름없을 진데.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이 자본이든, 기득권이든, 지배계급이든지 지금을 지배하는 이들(혹은 것들)이 만든 틀 내에서만 존재해야하는 시공의 연속이랄까요.

  상상력의 빈곤, 창조가 없다는 점에서 대학문화는 박제화된 지가 제법 되지 않았을까요?

Posted by 늘 축제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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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ait 2013.02.05 1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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