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프레시안 독자기고글] '통일 이후' 없는 '통일지상주의'는 비극 |생각이 머무는 너른마당 
 

* 작은 머리 생각 : 글에 대해 100% 공감(특히 사민주의적 변혁-정확히 어떤 말인지 몰라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읽을 만 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노동당원인 것 같네요, 기고자가. 대선 뒤 민주노동당이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는 군요. 민주노동당은 그 당 자체로의 의미보다는 진보당 이후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 형식을 담은 첫 진보정당으로 탄생했다는 의미가 더 클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민주노동당은 지지자이건 아니건 한국사회 급격한 변화(혹은 변혁)에 관심을 두는 이라면 주목할 만한 정치현상 중 하나였습니다. 앞으로도 그럴지는 두고봐야할 일이겠지만요.

   그런데 대선 뒤 분당을 하겠다는 측은 '종북주의' 이외는 분당의 논리를 크게 내세우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국민을 향해 민중을 향해 어떤 대안을 연구하고 논리를 만들어내고자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얘기가 없습니다. 씁쓸. 그래서 국민들이 보기에는 '북한 추종세력이 당내에 많아 같이 정당활동 못 하겠다'는 논리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첫 진보정당을 만든 세력장으로서는 안타까울 정도로 빈약한 목소리같죠. 대중서 <노동자 이야기 주머니> 끝 부분에 나오는 이른바 사회주의 혁명 뒤 이상적 사회가 된 뒤 단병호 할아버지와 아이들 얘기가 현실로 곧바로 될 것이라고 믿지 않아야할텐데요. 이상과 현실의 운동 벽 사이에 존재하는, 그러나 보다 현실에 가까운 정치적 실존체가 바로 정당이 아닐런지...

  또한 '전국연합'으로 대표되는 자주파 일부는 '종북주의는 없다'는 "운동"을 잘 모르는 국민들도 넘겨짚을 줄 알만한 '거짓'을 내뺃곤 합니다. 더욱이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 이른바 사회 진보를 얘기하는 사람이 "솔직히 우리 민족이 핵을 가진 것은 크게 나쁠 것이 없지 않느냐"는 말을 비보도를 전제로 취재과정에서 듣기도 했습니다. '반전과 평화'라는 시대가치로 본다면 그는 쇼비니스트와 다를 바 없는 극히 위험한 사고를 하더군요. 그런 사람이 21세기 우리 시대 한국사회 진보를 얘기한답니다, 참담하게도. 물론 이번 대선이 마치 '종북주의'라는 것 때문에 민노당, 더욱 적확하게 말한다면 한국진보정당 역사가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건 정말 억측이자 궁색한 변명같아 보입니다. "어쩜 한국 사회운동 내 주류 좌파(흔히 PD라고 통칭되는, 요즘은 민노당 내에서 평등파라고 불린다죠. 여기서 우파는 이른바 자주파를 말한다는 군요)의 능력이 그것 밖에 안 된다는 확실한 방증"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더군요. (여기에 조소 한 판. 그대여, 최장집 교수의 말처럼 과연 최소한의 수권 능력이 있는지 돌아볼 지어다.)

  암튼 국가보안법이 아직 있어서 문제이지 제 생각에는 그 주의도 하나의 사상으로 인정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사상의 자유'는 프랑스 대혁명(한국 헌법도 이를 반영하고 기반하고 있다는 의미에서)이 일궈낸 천부인권에 가까운 가치니까요. 문제는 그 주의나 사상, 그것에 기반한 조직과 행동 양식이 한국 사회 내에서 아직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지 검증하는 절차가 필요하겠죠. 그래서 이젠, 아니 더욱이 국민 앞에 맨살을 드러내야하는 정당, 그리고 정당원이라면 최소한 '커밍아웃' 정도는 할 자신이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그러지 않고는 한국 사회에서 사상의 광장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그 때문에 검증할 수 없는 선험적인 말의 성찬과 억지, 그리고 무척이나 낡아보이는 NL-PD라는 도식적인 콩글리시만이 지난 20여 년 가까운 기간처럼 되풀이 되겠죠. 덧말이지만 저는 그래서 '국가보안법'을 증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게 변명이든 뭐든 제대로된 사상의 광장을 만들지 못하는 든든한 주춧돌 노릇을 하니까요. 시사주간지 '시사in' 제17호(2008년 1월 15일자)에 '신좌파의 진화는 이제 시작된다'는 글을 기고한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와 같이 그런 낡은 구도에 염증이 난 이들은 '또다시 사회진보에 대한 말마디'에 끼어들 틈도 없이 쳇바퀴만 돌리면서 돌리고 돌리고 하겠지요. 제 생각에는 그 NL-PD 구도에 들지 않는, 최소한 거기에서 벗어나고픈 우석훈 교수와 같은 이들의 생각이 더 소중해보이던데. 각설하고 제가 한 '말의 난장'보다 훨씬 더 긴 아래글을 봐주3. 보시다가 지치시면 욕이라도 한 판 남기세요. 댓글 가지고 추줍그로(경남 방언으로 더럽게, 아니꼽게, 속 좁게 등의 의미로 쓰인답니다) 어디 고발하거나 수사의뢰하지 않을테니까요. *^^* 

[독자기고]자주파 운동의 대전환을 호소합니다 
  '통일 이후' 없는 '통일지상주의'는 비극 
   2008-01-17 오전 11:37:06

이하의 글은 소위 당 내외 소위 평등파 동지들에게도 해당되는 글이기도 합니다. 신당파가 주장하는 글 내용 중 북한 국가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자신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현재 평등파 중 현실 국가 사회주의 체제를 지지하는 이는 없다고, 돌연 사회주의 사회와 이론은 별도라며 순수 사회주의 이론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보다 더 큰 죄악입니다.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사회 변혁 운동에 헌신하는 분들이 체감하는 세상의 모순과 이치가 어찌 외국에서 한가로이(?) 지내는 자가 관조하는 그것과 같을 수 있겠습니까만, 상황에 따라서는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객관적인 평가와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지들께 감히 고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현실) 사회주의 체제'의 탄생과 실패의 극적인 드라마의 중심지였던 이 곳 러시아에서 말 그대로 국가 사회주의에서 천민자본주의로의 '거대한 전환'을 직접 겪으며 얻는 경험과 지식은 적어도 사회 변혁의 꿈을 버리지 않은 이들에게는 한국의 현실을 멀리 떨어져 볼 수 있는 것 이상의 중요한 무언가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민족주의-국가주의 저항운동의 불가항력을 인정해야
 
  현재 민노당은 대선 패배 이후 탈당과 분당 시도 등 창당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활동가들과 지식인들이 연일 '혁신'을 이야기하지만, 종북을 폭로하는 것 외에는 종북 극복 후의 그 '혁신'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없습니다. 그저 '종북이 있네, 없네'가 논쟁의 내용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서구(와 서구 자본)를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적 세계 지배 질서가 온존하고 있는 현재 세계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지구상 많은 지역과 국가들에서의 민족 해방 투쟁의 가치나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에 근거를 둘 수밖에 없는 투쟁과 운동의 과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국가 간의 경계가 옅어지면서, 중심부 내에도 주변부가 존재하고, 억압과 착취의 경계는 단순한 영토적 구분을 넘어 혼재되어 가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피억압 민족의 민족 해방과 국민(혹은 민족) 국가 건설의 과제가 절실한 인민들이 전 세계에는 아직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전 세계 모든 민족이 민족 국가를 건설하거나 독립 혹은 주권을 획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쿠르드인이나 팔레스타인인, 체첸인, 그리고 이라크인들의 주권 회복 혹은 독립 국가 건설 투쟁을 반제국주의 투쟁까지만 지지하고 그 이상에 대해서는 민족주의/국가주의 허상에 사로잡힌 운동이라며 반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민족 해방 이후 사회주의 혁명'으로의 도식이 의문표로 남거나 사라진 현재 논쟁의 여지는 많이 있지만, 저들에게는 제국주의의 직간접적 지배 사슬을 끓는 틀로써, 또 전체적으로는 무자비한 자본의 통제와 조절의 단위로서 여전히 국가와 민족은 중요한 단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족주의는 반역임에는 틀림없지만,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곧바로 민족주의는 반역이라고 강요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국가주의 혹은 민족주의에 동의하지 않지만, 시장 근본주의자들의 또 다른 모순적 얼굴인 제국주의적 국가 주도적 공격에 대항할 수 있는 틀로써 국민국가적 차원에서의 통제나 조절, 혹은 저항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원칙적으로야 세계 시민, 민중의 저항의 힘에 의한 변혁을 추구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주 자주 국민 국가의 틀 속에서 경제적, 정치적으로 조절하거나 저항을 조직하는 것이 실질적 문제 해결의 작동의 기제가 된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반면, 민족 국가 수립 이후 자본주의 체제의 적극적 일부가 되어 일정 정도 이상의 경제 발전을 이룸과 동시에 시민 사회가 급속하게 보수화되어 가고 있는 소위 반주변부에 위치한 상당수 국가들에서의 사회 변혁의 방향과 내용이 세계화의 광풍 속에서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에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준 제국주의적 모습과 종속적인 모습이 혼재되어 있는 이들 국가들에게 '모 아니면 도' 식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명백한 오류일 것입니다.
 
  그 중 특이한 위치에 놓인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이미 확연히 준 제국주의적 특징을 보여줌과 동시에 분단이라는 독특한 상황과 그로 인한 독특한 종속적 측면이 공존하는 남한 자본주의의 특성상 소위 자주파로 칭해지는 많은 활동가들과 조직들이 제기하는 과제는 일면 타당한 면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세계 10위권을 왔다 갔다 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상층부에 속해 있으면서도 동시에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그 어느 국가보다도 미국의 영향력이 국민 뼈 속 깊이까지 미치고 있는 국가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분단이라는 상황은 언제 어디에서나 민족주의는 우익의 논리라고 일반화할 수 없는 문제의 핵이기도 하고, 그 분단의 한 당사자인 국가 사회주의 북한의 존재는 전 세계에서도 유래 없는 한반도 좌파 운동 지형의 왜곡을 배태한 원인이기도 합니다. 분단은 정당한 복지 비용의 확대 요구 또한 국방비 우선 논리에 묻히게 하는 복지 국가 발전에 있어서의 저해 요인이기도 합니다.
 
  남한 외 수많은 지역과 국가들(심지어는 서구 국가 안에서조차)에서도 저항 이데올로기로서 불평등한 민족적 과제 해결을 위한 이념으로서 민족주의적 혹은 국가주의적 운동들이 존재하기에 이론상 좌파적 이념에 반대되는 민족주의적 이념이 남한에서만 특이한 현상은 아닐 것입니다. 제국주의의 지배를 분쇄하고 민족/국가적 과제를 각종 국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근거하여 추진하거나 이슬람 등 종교에 근거하여 저항하는 것은 역사에서 허다했으며 현재도 그러합니다. 분명 이는 올바른 운동은 아니지만, 그들의 의식 수준과 역사 발전의 단계, 그리고 현실적인 한계 속에서 불가항력적인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무조건 '민족주의=파시즘'으로 몰거나 민족주의가 아닌 것에 민족주의/국가주의 딱지를 붙이는 일부 사변적 원리주의 좌파적 관점에서의 비판은 정당하지 못 합니다. 더군다나 모든 자주파적 운동을 하는 이들을 종북주의로 규정하는 것은 더더욱 정당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통일 이후'를 생각 않는 자주파, 운동의 대전환 필요
 
  그러나 민족/국가적 과제의 해결을 위한 대안을 타국 지배 집단의 구체적 지배 이데올로기에서 찾은 것, 그것을 일국의 저항 이데올로기로 삼은 운동이 운동의 주를 이룬 역사는 남한 외에는 많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즉, 명백히 실패한 국가 사회주의 북한 관료 지배 이데올로기를 남한에서의 저항 이데올로기로, 대안 이데올로기로 삼아 싸워 온 것은 명백한 오류였습니다.
 
  현실 국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국제주의보다는 민족주의나 애국주의, 일국 국가주의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왜곡된 국가 사회주의 지배 집단 지배 이데올로기가 곧바로 민족주의로 등치되어 정당한 타 지역 민족 해방 운동이나 민족적 과제 해결 노력마저 민족주의 비판의 표적으로 만든 데에는 일부 김일성주의자, 주체 사상파의 책임이 큽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일부 종북 주체사상파들의 오래된 어법과 내용이 그대로 비판 없이 주체사상의 '주' 자도 모르는 다양한 자주파 활동가들에게도 수용되어 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종북주의자들은 소수일지 모르나, 그들의 언어와 수사와 논리가 동지들 운동의 상당 부분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일부 활동가들처럼 그러한 사실조차 깨닫지 못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치 교조적 좌파들이 현실 사회주의 실패의 진정한 원인에 대해 회피, 무시, 무지하여 100년 전 주장을 되풀이하듯, 주체사상의 '주' 자도 읽어 보지 못 한 이들이 같은 어법과 내용을 사용하여 운동의 내용으로 삼고 있는 것은 비극 중의 비극입니다.
 
  현재 자주파 동지들은 반미/통일 운동뿐 아니라, 북한 동포 돕기 운동, 한반도를 넘어선 동북아 평화 운동 혹은 보편적 평화/반전 운동, 그리고 심지어는 재일 조총련계 동포와의 연대, 중국 조선족 동포와 구소련 고려인 동포 돕기 운동 등 다양한 운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미 구체적인 사업들이 각 단체의 고유한 사업으로 자리잡고 있음에도 이 모든 운동에는 북한과의 평화와 통일이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고, 북한과의 통일 논의 없는 평화나 연대는 의미가 크지 않은 것으로 비추어지기도 합니다. 그만큼 통일 문제는 한반도에 사는 사람이라면 심지어 극단적인 탈민족주의자들조차 피해갈 수 없는 사안이기도 하며, 세계 평화나 한국의 진보 등 여러 면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통일 문제가 이토록 중요하기에, 통일지상주의적인,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통일 이후를 생각하지 않는 현재의 자주파 동지들의 생각의 대전환을 간곡히 호소하고자 합니다.
 
  거칠게 단순화하자면, 구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은 스스로 실패를 인정하고 시장 경제로의 전환을 선언, 체제 전환을 시도하고 있거나, 시장 경제로의 전환을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그 어느 시장 경제 국가들 못지않은 시장 경제 체제로의 실질적 전환을 하고 있거나, 민중의 피에 기댄 채, 간신히 지배 집단의 수명을 연장하고 있는 세 가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들 중 세 번째인 가장 재앙적인 길을 가고 있는 국가가 바로 북한입니다.
 
  모든 것이 다 드러난 현재,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은 말 할 것도 없고, 북한 체제는 우리의 대안도 아니기에 그러한 통일은 지지될 수 없으며, 통일에 있어서 그 체제를 지지할 세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기에, 이후 통일 방향은 현실적으로는 남한 주도의 천민자본주의가 이식되는 방식의 통일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연방제만이 남한식 천민자본주의를 북에 이식하는 것을 막는 길이라는 주장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 실현 가능성은 둘째로, 과연 연방 주체 간 격차의 해소와 한 쪽 연방 주체의 경제 발전 방향을 어떤 체제 방식으로, 어떤 우월한 방식으로 해결하려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민족끼리 통일하고, 미국을 쫓아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남한은 복지 국가 서독이 아니고,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 모범국이었던 동독이 아닙니다. 동독의 시민들이 2등 시민이라고 느끼는 거시적 차원의 사회 통합 문제에 있어서의 막연한 추상적 묘사 정도가 아닌,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착취와 차별, 불평등의 구조가 만연할 것입니다. 응당 치러야 할 통일 비용이라고 흔히들 언급하는 상식(?) 수준을 넘는 천민 자본주의적 구조가 이제 한반도 북녘에까지 확장될 것을 상상하면 끔찍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이 된다면…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지금과 같은 남한의 천민자본주의 체제를 뜯어 고쳐 바꾸지 않는 한, 통일 후 시장 경제에 익숙하지 못한 북한 주민의 상당수는 빈곤층이 되거나 저임금 노동자화 할 것이고, 작금의 한국 자본의 기업 문화가 유지된다면 기존의 사무직/생산직 차별, 정규/비정규 차별, 지독한 잔업 문화에 더해 북한 출신에 대한 차별과 같은 다층적 착취 구조는 더욱 고착화될 것입니다. 지금도 이주 노동자들이 고된 노동과 차별에 고통 받고 있는 일정 규모 이하의 영세 사업장이나 공장, 각종 자영업, 건설 현장 등에서 현재 이상의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 경우도 허다할 것입니다.
 
  남한의 건설족과 토건족, 투기꾼, 가진 자들, 지배자들, 그리고 각종 기득권 세력들은 북한의 구석구석까지도 개발과 시설 현대화, 경제의 자본주의화라는 명목 하 부동산 소유, 땅 투기 전쟁을 벌이며 추악한 남한의 소유 구조를 더욱 천박하게 전이시키려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특유하게 구조화된 국가의 책임회피적 고용 구조인 자영업 중심적 발전 계획은 사적 소유와 시장에 낯설은 상태로 자영업에 뛰어들 북한 주민을 상대로 한 수많은 사기와 남한의 대 영세 자영업 착취 구조를 그대로 옮겨 놓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업들은 헐값으로 북한의 기업들을 사들이고 북한 저임금 노동자들을 대놓고 착취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그 무엇보다도 기업들에 의한 개발과 투자의 현장들에는 반드시 성매매 접대 유흥업소가 넘쳐 날 것이고, 시장 경제가 요구하는 지식과 기술이 더욱 부족한 수많은 북한 여성들은 이들 업소로 끊임없이 흘러들어 갈 것입니다. 미국과 미군이 만들어 놓은 엄청난 여성 모멸적, 민족 모멸적 구조와 그 장소들에서의 미군 남성들의 난장판만이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같은 한국 민족 남성이 한국 민족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문제, 미군들의 그것에 비해 비교도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규모로 이루어져 왔고 이루어질 것인데 이에 대한 고민이 없음은 심히 유감입니다.
 
  이러한 재앙을 막는 길은 언뜻 보기에 통일과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남한에서의 이주 노동자, 여성 등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며, 복지 체제 확립을 위한 각종 투쟁(성접대비 복지비 전환 투쟁, 토지 및 택지 국유화 투쟁, 부유세 신설 투쟁 등)이며, 무상 교육, 무상 의료를 위한 고소득층, 재벌들의 소득의 상당 부분을 복지로 강제하는 법의 제정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깨달아야 합니다. 이 길이 통일 운동이 진정으로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천박한 기업이나 부동산 투기자들, 기득권 세력들, 가진 자들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네 노동 대중의 의식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존재합니다. 자주파 동지들은 이주 노동자 문제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외국인 문제가 아니라 같은 민족의 문제일 경우 민족주의 운동이 조금 더 민감하다고 가정할 때, 이주 노동자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 조선족 동포들의 문제에 있어서 현재 한국 사회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그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지 동지들도 뚜렷이 목도하고 있을 것입니다.
 
  중국 조선족 동포들은 아직 한국 노동 시장의 극소수만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적개심은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더군다나 대량 실업 상황이나 경제 대공황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같은 동포에게조차 적대적입니다. 만일 북한 동포들이 대규모로 노동 시장에 유입될 경우 그 사태는 짐작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정말이지, 이제 통일 그 자체가 아니라 통일 이후의 사회에 대해 고민하고 현재 한국 자본주의의 천박성을 깨 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한 목표라는 것을 인식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 사회는 단순한 보수화 정도를 넘는 기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근원에는 제로에 가까운 복지 부재의 천민자본주의 체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학벌과 학력 중시, 고시 열풍, 재산 개념으로서의 부동산 투기 열풍, 펀드 투자 열풍, 지나친 가족 중심주의 등 한국 사회에만 고유한 기이한 현상들 모두가 바로 국가 사회 보장을 해 주지 않아 사회가 보장해주지 않는 부분을 개인적 수준에서 각자가 해결해야 하는 데에서 생긴 일종의 사회 보장 대체 자구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체질의 고착화의 결과, 정치적 민주화에는 상대적으로 높은 관심을 가졌던 국민들은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의 역사 뒷면에서는 동시에 극단적인 경쟁 자본주의 체제에 익숙해져 오면서 사회 경제적 민주화, 평등화에 대해서는 강한 저항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복지 등 국가가 당연히 제공해야 하는 것들에 익숙하지 못한 국민들은 모순적이게도 복지를 갈구하면서도 그를 위한 희생이나 기여에 대해서는 강한 저항감을 가지고 있고, 복지의 근간인 사회적 연대나 평등주의에 대한 거부감은 상대적 정치적 민주화 이후에 경제적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일체의 개혁을 거부하는 경향을 보이기까지 합니다.
 
  지난 10년 간 구호와는 달리 기득권으로부터의 양보와 기여를 위한 일련의 개혁들이 이루어지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권력과 부가 확대되고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소위 민주 정부의 처방에 대한 불신은 확대되었고, IMF 구제 금융 사태 이후 세계화의 영향 하 신자유주의적으로 재구조화된 사회 체계에 적응되어 버린 국민들은 기존의 수 십 년 동안의 최악의 복지 부재 사회 속에서 형성된 기형적인 부동산 소득 등 임금만으로 생계가 불가능한 극단적 왜곡된 소득 구조에 더해 주식, 증권, 펀드 등 소위 각종 불로 소득을 좇아 말 그대로 살기 위하여 '금수의 생존 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민노당 지지율이 하락한 것은 후보가 다른 이었더라도 예측 가능했을 것입니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국민 의식 속에서라면 일정 정도의 경제적 발전이 동반될 경우, 그 세련된 방식에 의해 민중의 분노는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되거나, 또 다시 엉뚱한 해결 방안을 찾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단순 보수화를 넘어 극우 파시즘의 전조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합니다. 기존의 계급 차별 뿐 아니라, 이제야 조금씩 문제 제기되고 있는 여성, 학벌, 학력, 지연, 나이, 직업, 장애 등등에 의거한 우리 사회에 고질적인 차별과 배제와 불평등 문제 해결도 후퇴될 가능성이 다분한 상황 속에서, 우리 사회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서구 사회의 오랜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인 타민족 혐오증까지 노골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경고는 일정 정도 타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일이 된다면, 기업과 국가에 의한 착취와 억압과 동시에 일반 노동 대중 내에서조차 갈등과 차별,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민주의적 변혁을 위하여 
 

 새 정부는 어찌 되었든 실용주의를 내세우고 기업의 북한으로부터의 이익 보장에 더 관심이 크기에 북한과의 긴장을 바라지는 않겠지만, 이 명박 보수 정권의 또 다른 한 축은 미국 네오콘 등과 이해관계가 더 깊은 극우 보수 집단이기에 상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대북 관계와 통일 문제 등에 있어서도 미국과 한국 네오콘의 영향 하의 위험한 정책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러나 국지적이든 전면적이든 미국과 이 땅의 극우 세력들의 전쟁 책동이 전면화되지 않는 한, 이제 자주파 동지들은 통일을 위해서, 북녘의 동포들을 위해서, 여러분들이 주장하는 진정한 민족의 번영을 위해서라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운동을 해 나가기를 호소합니다.
 
  시장 없는 사회 체제 실험은 소련에서나 북한에서나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시장의 폭력을 제어하고 통제하는 것은 우리의 임무이며 그것이야 말로 지배자들과 가진 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통일 이후 북녘 사회마저 시장 경제라는 이름하에 남한식 천민자본주의가 이식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실현 불가능한 연방 코리아를 주장하기 보다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북한 인민들의 저임금 노동자화, 도시 빈민화, 그리고 북한 여성의 성매매 여성화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근본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길은 현재로서는 단 한 가지입니다. 북구와 서구 복지 국가에서 실행하고 있으며, 일부 제도는 우리보다 못 한 국가에서조차 실행하고 있는 사회민주주의적 변혁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통일과 반미 투쟁의 열정을 주택, 토지의 공공성 확보, 교육, 의료의 무상 실시, 그리고 이를 위한 부유세 채택 및 공정 과세, 탈세 철저 징수 등이 실현될 수 있도록 싸우는 데로 전환해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이 유지된다면, 통일의 기쁨은 그 순간뿐일 것입니다.
 
  국가가 보장을 포기한 일년에도 수십 개의 점포가 생기고 사라지는 극도로 불안정한 자영업 종사자 수를 유럽 수준으로 줄임과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최하 수준인 사회 서비스업을 유럽 수준으로 올리고, 자영업 중 고소득 전문직 및 유흥업소의 대규모 탈세 처벌, 그리고 교회 등 종교 시설의 세제 혜택 철폐, 그리고 수 조 원에 달하는 기업의 성접대 비용의 복지비로의 전환, 150만 명의 여성들이 옭아 메어져 있는 GDP 5%에 이르는 각종 성산업의 축소, 그리고 이러한 유흥업소 등지에 기생하며 지배자들과 가진 자들과 동맹을 맺고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각종 폭력배들의 축소를 위한 싸움이야 말로 북한 인민들을 현재의 야만적 남한 자본주의의 음지로 내몰지 않게 하기 위한 진정한 '통일 운동'입니다.
 
  일 터지고 난 다음 반대하는 모습은 이제 그만 합시다. 적극적인 남한 자본주의 사회의 변혁을 위한 대안을 향한 싸움으로 전환하는 데에는 동지들의 힘이 절실합니다. 통일 조국의 진정한 희망은 남한 사회 변혁, 그러나 과거와 같은 실현 불가능한 사회주의 혁명이 아닌 사회민주주의적 방식에 의한 사회 변혁으로 남북한 민중의 운명을 도탄에 빠뜨릴 수 있는 기도를 막아 냅시다.
 
  '평양 미인 항시 대기'라는 간판이 한 집 건너 하나씩 버젓이 걸려 있는 거리, '함흥 며느리 절대 안 도망감'이라는 현수막이 버젓이 걸려 있는 풍경, 통일된 나라에서는 북녘 땅에도 이 땅에도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면, 이북 노동자들이 2등 국민으로 차별당하는 꼴을 보지 않으려면 자주파 동지들의 고유한 투쟁의 사회민주주의적 사회 변혁 투쟁으로의 전환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것 다시 한 번 강조하며 동지들의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촉구합니다.  
   
  정다신(필명)/독자

Posted by 늘 축제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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